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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명언 100가지'.. ♨세상속으...


'희망 명언 100가지'..

 


1.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2. 인생에서 가장 의미없이 보낸 날은 웃지 않고 보낸 날이다.

3.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없이 있을 수 없다.

4. 결국 모든 것은 우스개다.

5. 먼저 자신을 비웃어라. 다른 사람이 당신을 비웃기 전에.

6. 인간은 살아있기 위해 무언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해야 한다.

7.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8. 태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 줄기의 빛이 내게 비춰졌다.

10. 세상 모든 일은 여러분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일어납니다.


11. 당신이 젊은 시절 꿈꾸었던 것에 충실하라.

12.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13.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

14. 위대한 성취를 하려면 행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꿈꾸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15. 불가능이 무엇인가는 말하기 어렵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16. 많은 긍정적 사고를 가진 기업이 부정적 사고를 가진 기업을 인수해 부자가 됐다.

17. 꿈을 기록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던 적은 없다, 꿈을 실현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18. 낙관주의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희망과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19. 지금이 제일 비참하다고 할 수 있는 동안은 아직 제일 비참한 게 아니다.

20. 과거는 지식의 원천이며, 미래는 희망의 원천이다. 과거에 대한 사랑에는 미래에 대한 믿음이 담겨있다.


21. 아마도 인간이 가장 원하는 일들이 가장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일 것이다.

22. 당신이 원하는 것이 당신이 그럴 것이라고 꿈꾸었던 것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되면 상처받게 된다.

23. 꿈은 영혼의 창이라고 하니, 그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영혼의 본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4.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들을 보며 “왜지?”라고 말한다. 나는 존재한 적이 없는 것들을 꿈꾸며 “왜 안돼?”라고 말한다.

25.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긍정주의자인데, 다른 사람이 돼 봤자 별 쓸모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26.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런 희망이 시작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

27. 신이 인간에게 미래를 밝혀주실 그날까지 인간의 모든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28. 삶의 핵심은, 그것도 긍정주의자로 사는 삶의 핵심은 아직 최상의 미래가 도래하지 않았다고 믿을 정도로 순진해지는 것이다.

29. 우리의 문제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므로, 인간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원하는 만큼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벗어나지 못할 운명의 굴레는 없습니다.

30.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솔직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웃는 것이다. 웃음은 수많은 질병들을 치료해준다. 웃음은 아마도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31.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32. 내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는 찾을 수 없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나를 웃게 만든다.

33. 타인을 이렇게도 좋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의 미래가 두렵기 때문이다. 긍정적 사고의 기저에는 끔찍한 공포가 있다.

34. 못 가진 것에 대한 욕망으로 가진 것을 망치지 말라. 하지만 지금 가진 것이 한때는 바라기만 했던 것 중 하나였다는 것도 기억하라.

35.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세상이 모두 꿈속의 현실이라면 어떻겠는가? 아니면 세상에나, 저기 셋째 줄에 앉은 뚱뚱한 남자만 존재한다면 어떻겠는가?

36.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의 재능을 최대한 충실하게 발휘하고, 내 안에 뿌려놓은 씨앗을 키워, 마지막 작은 가지까지 싹틔울 때까지는.

37. 내 마음 속 은은히 빛나는 모든 기쁨을 멈추라. ! 그렇다 해도 희망의 불빛은 밝혀두라.

38.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39. 모든 위대한 것들은 단순하며 많은 것이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 그것은 자유, 정의, 명예, 의무, 자비, 희망이다.

40. 내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정이 되면 내일은 매우 깨끗한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매우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와 우리 손으로 들어온다. 내일은 우리가 어제에서 뭔가를 배웠기를 희망한다.


41. 인생에서 성공하려거든 끈기를 죽마고우로, 경험을 현명한 조언자로, 신중을 형님으로, 희망을 수호신으로 삼으라.

42.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43.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희망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

44. 우리들은 과거에의 집착보다 미래의 희망으로 살고 있다.

45. 보잘것없는 재산보다 훌륭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 훨씬 소망스럽다. 재산을 너무 욕심내지 말자. 재산보다는 희망을 욕심내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46.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

47. 절망으로부터의 유일한 피난처는 세상에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다.

48. 절망이란 어리석은 사람의 결론이다.

49.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태양이 어김없이 솟듯, 참고 견디면 보상은 반드시 있다.

50. 모든 것을 손에 넣으면 희망이 사라진다. 언제나 어느 정도의 욕심과 희망을 비축해두어라.


51. 역경에 처했다고 상심하지 말고 성공했다고 하여 지나친 기쁨에 휩쓸리지 말라. 이 두 가지를 항상 마음에 새겨 두어라.

52.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53. 유머의 부재는 인생을 불가능으로 바꾼다.

54. 내가 보아온 인생 최고의 성공자들은 모두가 늘 명랑하고 희망에 가득차 있는 사람이다. 일은 웃는 얼굴로 해나가고, 생활에 일어나는 여러 변화나 기회가 즐겁거나 슬프거나 남자답게 당당히 맞이해들이는 사람들이다.

55.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

56. 청년시대에는 불안이 있더라도 비관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맞서 싸우고 또한 자기를 지켜라.

57. 잠이 꿈을 주듯, 바다는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58. 장래에 희망을 가져라! 그리하여 전진하라.

59. 지속적인 긍정적 사고는 능력을 배가시킨다.

60.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만의 방향을 따른다.


61. 우리들은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산다.

62. 인내하라, 경험하라, 조심하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63. 비장의무기는 아직 내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64. 내가오르려는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이길이 절벽이 아니기에 나는 이길을 헤쳐나갈수 있다.

65. 사람은 희망에 속느니보다 절망에 속는다. 그리고 스스로 만든 절망을 두려워한다. 무슨 일이 실패하면 비관하고 이젠 앞길이 막혔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어떠한 실패 속에서도 아직 희망으로 통하는 길은 남아 있다. 희망의 봄은 달아나지 않고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굳은 뜻으로 못할 일이 없다.

66. 역경은 희망에 의해서 극복된다.

67. 희망은 인격적이다. 희망은 인정이 많다. 희망은 자기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어머니같이 다정다감한 희망을 피할 이유가 없다.

68. 희망은 일상적인 시간이 영원과 속삭이는 대화이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 나의 일상을 점검하자.

69. 희망은 일생의 어떠한 때도 우리들을 버리지 않는다.

70.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한 인간은 승리를 거두고 계속 전진한다. 신이 만인의 이마에 기록한 말은 희망이다. 힘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용기는 가슴속의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71. 몹시 좌절될 것 같이 여겨지는 사건이 전화위복으로 그 사람의 인생에 최대의 분기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전화위복의 기회는 항상 있다.

72. 방랑자이면서, 신사, 시인, 몽상가, 외톨이이며, 언제나 로맨스와 모험을 꿈꾸죠.

73. 이루어질 꿈도 이루어지지 않을 꿈만큼 불확실할 수 있다.

74. 희망은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75. 새벽이 찾아오지 않는 밤은 없다. 인내와 희망을 가져라.

76. 희망은 가난한 인간의 빵이다.

77. 희망만 있으면 행복의 싹은 그곳에서 움튼다.

78. 평지 위를 걷고자 노력하지만 뒷걸음질만 친다면 그것은 절망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절망의 크기만큼, 발바닥이 보일 만큼 가파른 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므로 뒷걸음질은 오로지 지형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는 것이니 절망할 필요가 없다.

79. 희망과 실제 사이의 갈등이 없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80. 설령 하나의 문이 닫혔을 때에도 실망하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릴 것이다.


81.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 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82. 우리들은 소망해선 안될 것을 가장 소망한다.

83. 어떤 사람의 희망은 미술에 있고, 어떤 사람의 희망은 명예에 있고, 어떤 사람의 희망은 황금에 있다. 그래도 나의 큰 희망은 사람에 있다.

84. 절망하지 마시오. 좋은 것들을 성취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비록 성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낙담하지 마시오. 혹시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도록 노력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시오. 모든 사건의 본질과 사물의 본질을 터득하시오.

85. 위대한 희망이 가라앉는 것은 해가 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인생의 빛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매일 희망이라는 태양이 떠오르게 하자.

86. 희망은 영원한 기쁨이다.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같은 것이다. 노력하는 만큼 해마다 수익이 증가하며, 결코 한꺼번에 다 써버릴 수 없는 확실한 재산이다. 영원히 바닥나지 않는 기쁨이라는 열매를 매일매일 따먹을 수 있는 농장을 소유하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우리는 그 농장을 잘 가꾸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자기만의 농장! 우리는 부자다.

87. 희망은 영원히 인간의 가슴속에 샘솟는다. 인간은 지금은 행복한 일은 없지만, 이제부터 항상 행복하게 될 것을 믿고 있다.

88. 위대한 희망은 위대한 인물을 만든다. 산은 오르는 사람에게만 정복된다.

89. 희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사람은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90.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 희망이 없는데, 노력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노력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목표 없이 일하는 사람은 없다. 골인지점 없이 달리는 마라토너는 없다. 희망을 먼저 가지자. 그리하면 자연히 노력하는 사람이 될 테니까.


91. 희망은 제2의 혼이다. 아무리 불행하다 하더라도 혼이 있으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혼이 있으면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92. 희망이 간혹 거짓말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허풍쟁이라고 매도하지 말라. 그것은 사시사철 우리를 즐거운 오솔길로 안내하며, 평생 동행하는 진실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93. 희망은 가냘픈 풀잎에 맺힌 아침이슬이거나 좀더 좁은 위태로운 길목에서 빛나는 거미줄이다.

94. 평화와 행복만으로 인생이 계속될 수는 없다. 괴로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고, 투쟁이 필요하다. 괴로움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라! 참고 견디며 이겨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희망은 늘 괴로운 언덕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

95. 희망이 부풀어오르는 한 인간은 승리를 거두고 계속 전진한다. 신이 만인의 이마에 기록한 말은 희망이다.

96. 힘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용기는 가슴속의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97.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없는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98. 아깝단 생각은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해 생긴 스스로의 변명이다.

99. 계속해서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100. 희망을 품고 사는 자에게 인생은 마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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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하루만이라도 해보자 > ♨세상속으...

 

<하루만 해보자 >

 

인생은 시간여행이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체험은 기쁨과 깨달음을 만들어준다.
해외여행도 그 중에 하나지만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돈들이지 않고 인생을 확 바꿀수있는 체험도 얼마든지 있다.

01. 입이 찢어질정도로 크게 웃어보자. 순간부터 기쁨의 날이 펼쳐진다.
02. 하루만이라도 색다른 삶을 살아보자.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어 준다.
03. 부부역할을 바꿔서 해보자. 이해와 사랑이 증폭된다.
04. 아내를 힘껏 안아주자. 하루치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다.
05. 남편 출근할 때 문밖에 나가 배웅하자. 신혼기분으로 돌아간다.

06. 쫓기지 말고 1시간 일찍 출근하자. 향상과 발전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07. 부모님 좋아하시는 일을 해 보자. 효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08. 부모님의 젊었을 때 얘기를 해달라고 해보자. 부모님의 얼굴이 활짝갠다.
09. 전화대신 편지를 써보자. 감동은 두고두고 남게 된다.
10. 좋은 말만 사용해 보자. 심성이 달라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진다.

11. 하루 쯤 최대능력을 발
휘해보자. 가운에 큰 변화가 생겨난다.
12. 하루만 '안된다'를 '된다'로 바꿔 보자. 밝은 미래가 펼펴진다.
13. 덕담을 주고 받자. 복받는 삶이 만들어진다.
14. 말수를 줄여보자. 말하기 보다 듣기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15. 싫어하는 음식도 먹어 보자. 입맛도 습관임을 알게된다.

16. 전등 대신 촛불을 켜보자.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17. TV를 끄고 하루 쯤 지내보자.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음을 알게된다.
18. 하루 쯤 신문을 보지 말자. 마음의 오염이 그만큼 줄어든다.
19. 보고 싶었던 책을 사서 읽자.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20. 사다놓고 읽지 않은 책 읽어보자. 자신의 성장을 쉽게 느낀다.
21.  돌다리 두드리기는 그만 하자. 일단 뛰고 보면 별 것도 아니다.

22. 올해 안에 책 1권을 써보자. 자신의 평가를 새롭게 할수있다.

23. 대청소를 해보자. 10년 묵은 체증까지 쑥 내려간다.

24. 가족끼리 역할을 바꿔서 해보자. 이해 못했던 부분도 이해가 된다.

25. 한달에 하루는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날로 정하자. 그 행복이 돌고 돌아 내게로 돌아온다.
26.  마음을 정돈하고 유서를 써보자.  정리된 삶을 살 수 있다.

27. 사랑의 표현을 강하게 해보자. 귀신도 말않으면 모름을 깨닫는다.

28. 같은 길만 가지말고 다른 길도 이용해 보자. 새로운 세계를 체험한다.

29. 하루쯤 남을 평가하듯 자신을 평가하자. 쉽게 변신할 수있다.
30. 미루던 일을 한번 해보
자. 해방이 뭔지를 깨닫게 된다.
31.  하루 쯤 자기 사랑에 열을 올려보자. 자기 사랑처럼 큰 사랑도 없다.

32. 하루 쯤 남의 모범으로 살아보자. 그것이 완성의 길이다.

33. 하루 쯤 안쓰던 손을 사용해보자. 불편을 겪어보면 고마움을 알게 된다.
34. 하루 쯤 남의 좋은 점만 찾아 보자. 행복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된다.

35. 하루 쯤 걸어서 다녀보자. 문명에서 벗어나보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다.
36.  하루 쯤 전화를 끄고 지내보자. 전화없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37. 하루 쯤 남의 눈치를 보지말고 살아보자. 바보처럼 산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38. 하루 쯤 무일푼으로 살아보자. 노숙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39. 하루 쯤 물만으로 살아보자. 물은 생명의 양식이다.

40. 하루 쯤 습관을 바꿔 보자. 운명의 변화가 생겨난다.
41.  내가 아끼던 물건을 남에게 줘보자. 감동과 감격을 함께 맛본다.
42. 스승에게 감사편지를 써보자. 큰 빚 갚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43. 보험을 들어 놓자. 평생 마음 놓고 살 수가 있다.

44. 부부 싸움은 속삭이듯 해보자. 목청높인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45. 수첩에 적어놓기만한 번호에 전화해 보자. 기쁨과 반가움이 공유된다.
46.  헌혈을 해보자. 나하나의 헌혈로 꺼저가는 생명을 살려낸다.

47. 인터넷을 검색만하지 말고 자기 글도 올려보자. 내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48. 나와 다른 신앙도 해 보자. 우물안 개구리가 용이 되는 순간이다.

49. 뒷걸음으로 걸어보자. 앞으로만 걷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우치게 된다.
50. 오늘부터 일기를 써보자. 자신의 삶이 모범답안으로 변하게 된다.
 

피아212 ♪♥

♬ 번안원곡 Original Song 220곡 ♬

래듣기 릭==>>

 

Ace Of Sorrow - Brown & Dana(슬픈 운명/트윈폴리오)ㅇ히 200곡 모음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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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잡아죽였을까?? 유럽의 강남 졸부가 그들이었기 때문. ♨세상속으...

당신들에게 한마디 물어보자.

“만약 강남땅 졸부를 구하려고 그 사람들 갇힌 곳에다 폭탄 떨구겠는가?”

지금 이 한국 사회의 제일 큰 좀벌레이자 불로소득자로서 온갖 비리와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우리 사회의 암적존재인 [강남땅 졸부]...

무식한 주제에, 어쩌다 운대가 맞아 부동산투기나 증권투기 같은 걸로 떼부자가 되어 돈은 많지만, 그 돈을 쓸 줄 아는 방법을 전혀 몰라 마구 향락과 퇴폐산업에만 낭비하면서 국가의 내부를 파먹는 못된 인간기생충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사생아...(과거 월남도 이런 졸부들이 너무 많아 나라가 졸딱 망했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해 누가 폭탄을 떨굴까? 그것도 대공포에 맞을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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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공중정찰사진~!! 이걸 찍었다면 연합군 비행기가 거기까진 너끈히 갈 능력이 잇었다는 말인데?? 왜 폭격은 않고 사진만 찍었을까?? 간단해. 루스벨트도 처칠도 인간기생충인 유태인 졸부 새끼들 구해주기 싫으니까 그렇쥐.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고?

당시 유럽의 유태인들이 현재의 한국 강남땅 졸부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합군측 우두머리인 루스벨트나 처칠도, 일부러 유태인 죽이는 유태인수용소엔 절대 폭탄 떨구지 말라고 조종사들에게 엄명을 내렸기에 유태인 수용소가 폭격으로 불탄 데가 하나도 없는 게 아니겠는가? 우연이 아니다~


만약 미영연합군이 전쟁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폭격했다면? 가스실도 당연히 부서졌을 것이고, 그러면 독일이 유태인들을 그렇게 규칙적으로 잡아 죽인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울래도 대서양장벽 세울 시멘트도 부족한 독일이 어떻게 그 거대한 가스실을 다시 세울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만약 폭격으로 아우슈비츠의 전기철조망이 무너지면? 유태인들은 다 그리로 때는 이때다 하면서 달아나 버렸을 것이고, 그 많은 유태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면 전쟁 중에 병력도 부족한 독일군으로서는 다시 그들을 잡아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걸 루스벨트나 처칠이 몰랐을 리 없는데 왜?

(주 : 결국 알고보면 루스벨트나 처칠, 그들도 유태인학살 공범자? 자루 벌린 놈이나 퍼넣은 놈이나... 자루 벌린 놈이 난 쌀에 손 안댔으니 도둑 아냐 라고 변명하는 꼴?)


[당시 독일 인구의 98%가 아리아인(게르만민족)이고, 2% 정도만이 유태인이었는데 그 2푼밖에 안되는 유태인들이 독일경제에서 차지한 비율은 거의 절반인 45%나 되었다. 독일이 초인플레에 시달리면서 고통스러워할 때, 이 2%의 유태인들은 독일 정계 재계를 몽땅 막대한 돈으로 다 휘어잡고 독일 정치에까지 간섭하기에 이르렀다]


는 사실이다... 이 판에 유태인들을 가만 둘 수 있는 문제일까?

어떻게 뜨내기 유태인들이 이렇게 큰 돈을 벌었을까?

범죄와 나쁜 짓에 손대지 않고, 차별받은 소수민족 출신으로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꼭 정말 요즘 강남땅 졸부처럼 부동산투기와 갖은 사기 등 나쁜 행동으로 돈 벌었을 게 뻔하기에...




한가지 질문을 해보자.


문제) 왜 히틀러는 2차대전 당시에 유태인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몽땅 죽였을까?


이 정답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1) 히틀러가 어렸을 적과 성장할 적에, 유태인들에게 겪은 온갖 구박과 학대의 정신적 피해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여동생이 유태인들에게 겁탈당한 적이 있고(실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도 살면서 유태인들에게 온갖 학대와 구박을 받으면서 많은 착취를 당했기에 미움이 극치에 다다랐기 때문이죠.(이것은 히틀러뿐 아니라, 당시 독일인들 전부가 그랬겠지만)

2) 1차 대전 직후, 하이퍼플레이션(초물가고)에 시달리던 독일에서는, 경제 및 정치 안정을 위해 이지메용의 희생양을 찾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바로 하이퍼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흉이자 독일의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유태인들이 안성마춤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을 공격하자는 게 국민총화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3) ‘시온장로의정서’라는 당시 세계의 베스트셀러... [유태인들의 반기독교 음모론]은 종교개혁의 아버지인 마르틴 루터의 본고장인 기독교인들이 대부분인 독일인들(히틀러도 기독교인)에게 경악스럽고 무서운 경고를 주었죠. 마침 1차대전의 준 엉망진창의 사회에서, 시한부종말론이 설치며(어네스트 앵글리의 종말론 소설 ‘휴거’도 이때 출간) 세상 끝날에 전 세계의 경제를 장악한 유태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인다는 내용은 경악스러웠고 독일인들에게 유태인들은 살려둬선 안되는 적이라고 믿게 하기 충분했습니다.(세계정부와 666 등등 현대의 반유태주의를 표방하는 책들도 이때 시온장로의정서에 의거해 만들어진 책임)

-어떤 사람들은 히틀러가 천주교인인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히틀러도 엄연한 기독교인이다. 천주교 국가 오스트리아 징병은 도망까지 가면서 피한 그가 기독교국가인 독일은 징병도 안했는데 자원해 전쟁에 종군했다는 게 그 증거다. 히틀러가 기독교식 예배를 봤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기독교 국가라는 점이다. 이 독일뿐 아니라, 미국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호주 영국 등등은 다 기독교국가들이다. 기독교 국가들은 [예수님을 살해한 책임이 있는 민족, 메시아를 거부하야 신의 저주를 받은 민족]인 유태인들을 교리상으로도 미워할 수밖에 없다.


4) 예수님을 살해한 음험한 민족, 돈만 밝히고 자기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성품, 특히 1차대전 당시에 [전쟁상인 노릇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대부분 유태인]들이었던 탓에 유럽사람들은 유태인들을 첨부터 미워하고 증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5) 남의 나라에 얹혀사는 붙박이 민족인 주제(당시 유럽은 물론 미국조차 여간해선 유태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에, 막 부동산투기 전쟁무기판매 등 나쁜 짓으로 돈을 벌어 떵떵대는 과거판 강남땅 졸부 유태인들은 누구건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 판에, 히틀러가 나타나 [반 유태주의]를 외치니, 독일 뿐 아니라 모든 유럽인들은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듯한 히틀러의 이론에 크게 찬동할 수밖에요. 히틀러는 필시... 유태인을 죽이거나 추방하는게 장래 자신이 세우고 싶은 [통일 유럽]의 국민총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6) 유태인들은 본인들 스스로의 신앙인 [유태교]를 끝까지 버리질 않고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아(구원주)로 인정하질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질적인 반그리스도적 종교를 악착같이 고수하는 그들을 유럽인들이 미워할 수밖에 없었고, 이슬람교도들도 미워했죠. 그래서 히틀러 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아랍인들로부터 박해받고 배척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등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이 여러 이유들 중, 한 가지 대칭되는 공통적 결론은?

정답은? 당시 유럽의 유태인들이 [서양의 강남땅 졸부]들이었기 때문이다.

생크먼은 나치가 유태인들을 의도적으로 학살하려고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적어도 히틀러가 집권한 몇 년 처음 동안은 나치도 유태인들을 독일에서 내모는 정도로 만족하였지, 죽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아니 발발한 1940년까지도 유태인들을 게토에 가둬두기만 했지 독일은 유태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하진 않았다.

그렇게 유태인들이 불쌍하면, 루스벨트나 처칠 그 놈들 자신들이 좀 미국이나 영국 시민으로 받아주지...

(철저한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 많지? 북한사람들 아프리카사람들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들 돕기 위해 돈 내라거나 아니면 그 사람들을 우리나라 사람들로 받아들이자면 질색을 하며 반대하는 사람들... 왜? 돈이 아깝고, 저 애물단지들 끌어들이면 우리가 망하니까! 나는 애초 그 사람들 불쌍하단 소리 절대 안했으니 필자는 분명 위선자는 아니니까 착각말길!)


하지만 그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

[강남땅 졸부가 이민오겠다면 환영할 나라가 지금 세상엔들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 쉽다. 아이고... 그 못나면서 할 줄 아는 일이라고 밥처먹고 *싸는 것밖엔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쓰레기들... 누가 받아줄까?

물론 돈이라도 왕창 가지고 온다면 얘긴 다르지만...? 문제는?

독일에서는 유태인들이 돈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만약 독일 경제를 몽땅 움켜쥔 유태인들이 다 재산을 갖고 나간다면 독일은 망하고 말게?

그러니, 유태인들은 국외로 이주한데도 돈도 못 가지고 나갔었다.(고작 3달러 수준밖에 가지질 못했다. 지금 물가 수준으로 따지면 300달러 정도?) 아인슈타인도 그랬다. 맨 주먹으로 미국에 가서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돈도 뺏긴 졸부(소위 인간쓰레기 말종)... 수백만 이주한다면? 누가 어서 옵쇼 그럴까? 저 무능력자 놈팽이들이 영국 미국도 조져놓으면 어쩌게?

그래서 영국과 미국은 유태인 이주를 [네버]라고 하면서 질색하였다. 원인도 다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하긴 지금도, [돈도 다 뺏긴 강남 졸부]를 받아주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쉬울 것이다.


생크먼의 주장은,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추방하지 못한 이유는 정작 유태인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없었다는 이유였다.

[주 : 영국은 유태인들이 저희 나라로 망명을 하는데 도움을 주긴커녕, 팔레스타인으로 유태인들을 보내는 데에도 어떤 편의도 제공하지 않았으며(팔레스타인 지역은 당시 영국 식민지라 만약 유태인들 독립국가가 세워지면 영국이 손해므로), 프랑스를 점령한 1940년에 히틀러는 개인적으로 유럽 전역의 유태인들을 아프라카 동해안의 섬나라 프랑스령인 마다다스카르 섬으로 이송하여 거기에 유태인 구역을 만들 계획을 승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은 해상로를 봉쇄해 이들이 마다가스카르로 가질 못하게 만들었다. 독일이 유태인들을 옮기게 해상으로의 길만 빌려 달래도 그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기실, 영국과 미국도 유태인들을 받아들이는 데 너무 소극적이었다. 아니 루스벨트나 처칠도 알고 보면 정도 문제일 뿐, [반 유태주의자]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알고 보면, [실행범이 아닌 묵인범]일 뿐 유태인 대학살에 대해 공범이었다.

드레퓌스 사건 등으로 알 수 있듯, 당시 서양에서는 [반 유태주의]가 일반적이었다. 미국 영국도 정도 문제일 뿐, 독일과 유태인 혐오하고 증오하긴 하등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았기에...

그렇잖고서야, 어떻게 다른 독일의 도시는 작은 건물 하나까지 철저하게도 알뜰히 잿더미로 만든 미군 영국군 폭격기가, 유태인 수용소 아우슈비츠나 쉐브랑카 등은 그냥 놔두고 독일이 스스로 파괴하고 사라질 때까지 그냥 뒀겠는가? 이게 어떻게 우연일까?

(주 : 만약 미영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폭격했다면? 가스실도 당연히 부서졌을 것이고, 그러면 독일이 유태인들을 그렇게 규칙적으로 잡아 죽인다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울래도 대서양장벽 세울 시멘트도 부족한 독일이 어떻게 그 거대한 가스실을 다시 세울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만약 폭격으로 아우슈비츠의 전기철조망이 무너지면? 유태인들은 다 그리로 때는 이때다 하면서 달아나 버렸을 것이고, 그 많은 유태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면 전쟁 중에 병력도 부족한 독일군으로서는 다시 그들을 잡아넣는다는 것은 사실상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걸 루스벨트나 처칠이 몰랐을 리 없는데 왜?)

루스벨트나 처칠도, 결국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엔 [암묵적 동지]였음이 분명하다.
만약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만이 목적이었다면? 루스벨트나 처칠도 동참하지나 않았을까? 그들이 서로 싸운 것은, 유태인의 인권 때문이 아니라 저희들끼리의 영토 및 식민지 분쟁 때문이었지 유태인 학살만은 철저한 공감대가 이뤄진 심리적 동지였음은 확실하다. 히틀러나 루스벨트나 처칠이나...
그러니까, 일부러 아우슈비츠나 쉐브랑카 마이다네크 다카우 등은 폭격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기에 그런 수용소는 폭격맞은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주 : 여기서 루스벨트나 처칠이 전쟁 중 유태인 학살을 분명히 알고서 방조하고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보인다. 다른 도시는 다 폭격했는데도, 유독 인간도살장인 학살 수용소만은 그냥 뒀다는 것은? 의도적인 게 확실한데? 이 수용소의 내력을 다 알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하긴 유태인들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판에, 전 세계에 뻗어있는 스파이들로부터 모든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처지인 초강대국 국가원수인 그들이 몰랐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팔레스타인이나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쫓아내는데 실패한 것은, 영국이 해상로를 장악하고 유태인들의 이송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독일은 그렇잖아도 부족한 병력을 유태인 감시에 계속 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들을 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어쩌면 처칠도 이러라고 일부러 해상수송로를 열어주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상 분명 그렇다고 본다.)

결국 나치에 의해 수백만명 유태인들이 학살당한 일은, 당시 주변국가들의 이기적이고 반 유태주의적 행동 탓에 일어났다는 결론이다. 루스벨트나 처칠도 결국 정도 차이일 뿐, 유태인들을 죽이고 싶었다는 점은 히틀러와 하나도 안 다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퍼넣은 놈(히틀러)이나, 자루 벌린 놈(루스벨트나 처칠)이나 어차피 공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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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채색이 가장 우아하다”, 이 한마디만 기억하라 ♨세상속으...



이 한마디만 기억하라 무채색이 가장 우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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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르조 아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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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 특유의 무채색톤 의상.



브랜드는 무채색이다. 자신의 색채는 빠져 칙칙하지만 주변을 살리는 것. 아르마니는 무채색 옷감에 밝기를 조절해 우아함을 만든다. 생명체는 신비로운 무채색 톤과 함께 회복되어 비로소 살아난다. 아르마니의 무채색 패션은 우리 눈에 담백함과 우아함을 선사한다. “옷은 제2의 살갗”이라고 말한 아르마니는 무채색 톤, 흘러내리는 디자인으로 몸을 은은하게 부각시키면서 고급스러운 매력을 풍긴다.

■ 무채색 경험 

조르조 아르마니(사진)의 무채색은 유년기 전쟁의 상처에서 왔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탈리아 소년 아르마니의 유일한 장난감은 밀가루로 반죽한 인형. 그 칙칙한 인형 속에 볶은 커피 원두를 밀어 넣고 병원놀이를 했다. 그는 말한다. “그 커피 낱알은 내가 찾아내어 치료해야 하는 병.” 전쟁의 비참함을 겪은 어린 아르마니의 눈에 총탄과 폭탄이 살갗 속에 박혀 녹이 슬고 피가 굳어 얼룩진 상처는 영락없는 커피 원두, 핏기 잃은 창백한 사람은 커피 원두를 묻어 둔 회색빛 인형이었다.

그러던 아르마니는 A J 크로닌의 소설 <성채>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의학도가 되었다. 하지만 위생병으로 복무한 이후 그 길을 포기한다. 그리고 백화점 영업과 패션회사의 영업 등을 거치면서 그는 디자이너의 길을 가게 된다. 의학도와 디자이너의 체험이 결합되어 “옷은 제2의 살갗”이라는 그의 독특한 디자인 원칙이 탄생한다. 

살갗을 색으로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빨강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황이나 노랑도 아니다. 무어라 꼭 집어 말하기 힘든 살갗의 색. 거기에 얼기설기 힐끗 보이는 핏줄, 분명 핏빛은 붉지만 살갗에 드러난 핏줄 색깔은 여리고 칙칙한 녹색이다. 보송보송한 잔털도 그 색을 뭐라 말하기 어렵다. 때로 살갗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주근깨와 작은 점들 또한 뭐라 말하기 힘든 색. 그래서 우리의 살갗은 온통 무채색투성이다. 하지만 그 무채색 살갗은 또 다른 무채색 핏줄, 잔털, 점 등과 어우러져 온전히 신비하고 우아하다. 일단 옷을 ‘제2의 살갗’으로 만들려고 한 아르마니. 그의 패션은 같은 소재, 같은 모양의 옷이라도 풍기는 인상이 다르다. 

살갗의 무채색에는 어떤 신비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무채색에 나타나는 ‘평온한 안정감’(무라카미 하루키)과 ‘생명체의 저항력’(괴테)에서 찾을 수 있다. 

■ 닻과 같은 평온한 안정감 

무채색과 ‘평온한 안정감’을 소개하는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 있다. 물건도 아닌데 사람을 무채색이라고 표현한 하루키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다자키 쓰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그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케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목에서 시사하듯 주인공 쓰쿠루는 자신을 ‘무채색 인생’으로 여겼기 때문에 죽고자 한다. 주인공은 사회생활에 당혹감과 혼란을 느끼며 자신을 비정상이라 여기는데, 그게 죽고 싶은 이유였다.

“그러나 쓰쿠루 본인에 대해 말하자면, 남에게 자랑할 만한, 또는 이렇다 할 특징을 갖추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모든 점에서 중용이었다. 또는 색채가 희박했다. (…) 그리고 남은 것은 체념을 닮은 조용한 사색뿐이었다. 그것은 색채가 없는 잔잔한 바다처럼 중립적인 감정이었다. (…) 그리고 얇은 막 같은 것으로 감정을 몇 겹이나 감싸고 마음을 텅 비워 낸 채 한 시간마다 착실하게 늙어 갔다.”(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

무채색 인생. 그것을 하루키는 ‘중용’이라고 했다가 ‘체념’을 닮았다고도 하고, ‘잔잔한 바다처럼 중립적인 감정’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텅 비워 낸 채’ ‘착실하게 늙어’ 가는 인생. 왜 이런 체념적 인생관이 생긴 것일까? 하루키는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를 수없이 겪으면서 상처가 많아지자 많은 사람들이 매사에 체념적 삶의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태도가 바로 ‘무채색 인생’이라 보았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주인공 쓰쿠루에게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아니, 그런 게 아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넌 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면이 있었어. 넌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굳게 딛고 서서 우리 그룹에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배의 닻처럼.”(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 

체념의 삶에 있는 긍정적인 힘.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배의 닻처럼’ ‘평온한 안정감’을 준다. 닻은 거센 물살 속에서 떠내려가 난파될지도 모를 상황에서 폭풍 만난 배가 취하는 유일한 구원책. 그 닻은 깊은 바닷속에서 녹슬어 화려한 색은 다 사라졌지만 배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화려한 색을 체념하고 색채를 잃은 닻(앵커)이 “평온한 안정감”을 준다. 하루키에게 있어서 체념적인 ‘무채색 인생’은 그 사회를 평온케 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된다. 


■ 폐허 속에 무채색으로 꽃핀 안정감 

아르마니도 체념에 익숙한 시대를 살았다. 그가 회사를 설립한 1975년은 유럽의 ‘68혁명’ 이후 대격변의 시대. 이탈리아는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무려 여덟 번이나 정부가 바뀌었다. 더구나 아르마니사가 세워진 도시 밀라노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연일 학생과 민중 시위가 이어졌고, 최루탄 연기로 온 도시는 회색빛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아르마니는 정치와 사회에 체념한 듯 오로지 패션에만 전념했다.

시위와 진압, 절규와 함성, 피와 연기 등의 혼잡과 불안 속에서 회사를 차린 지 1년 만에 아르마니는 첫 패션쇼를 선보였다. 모델들이 입고 있던 옷은 전부 무채색의 회색톤. 하지만 그것은 참석했던 관계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그 옷들은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으로 모든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우아했다. 사람들은 현실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도 무채색으로 꽃핀 안정감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 눈을 단숨에 자극하여 금방 눈에 띄는 색이 있는가 하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희미하게 숨어 있는 색도 있다. 그 숨어 있는 색은 분명 하나인데 무슨 색인지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파랑, 빨강, 노랑이 서로 꿈틀대는 신기한 색이다. 색이 많이 섞일수록 칙칙하고 탁해진다. 색과 색이 칙칙하고 탁해지는 정도를 ‘채도’라고 한다.

그런데 채도가 낮은 무채색은 다른 색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난다. 그렇게 무채색과 어우러진 색을 전체적으로 보면 자신도 모르게 차분해지고 우아한 분위기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평온한 안정감’. 무채색은 다른 색과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무채색은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항상 새로우며 깊은 우물에서 샘이 솟는 것처럼 신선함을 던진다.

아르마니의 무채색과 하루키의 ‘무채색 인생’은 신기하게도 ‘평온한 안정감’을 준다. 사물이나 인생이나 매한가지. 두 사람은 전후 이탈리아와 재해 많은 일본의 회색빛 도시에서 그 무채색 톤으로 안정감을 얻었던 것이다. 


■ 생명의 저항과 물체를 포착하는 권리 

무채색 속에서 ‘생명체의 저항’을 주장한 작가이자 과학자였던 괴테를 살필 차례다. 그는 일찍이 색채 연구를 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채색의 그림이나 유사한 예술 작품들에서 명암이 잘 조절되었을 때 (…) 자신에게 그 어떤 상태가 주어지면 모든 생명체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말없는 저항을 목격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 눈에 어둠이 제공되면, 눈은 또한 밝음을 요구한다. 밝음을 그 앞에 가져오면 눈은 어둠을 요구한다. 눈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동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물체와 대립되는 그 무엇을 자신으로부터 만들어 냄으로써 물체를 포착하는 자신의 권리를 보여준다.”(요한 폰 볼프강 괴테, <색채론> 중)

괴테에 따르면, 무채색에 “명암이 잘 조절될 때 생명체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저항”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동일한 회색이라도 ‘검은색 바탕’에서 밝게 보이고 ‘흰색 바탕’에서 어둡게 보이는 것을 ‘생명체의 저항’이라고 한 것. 그의 보다 놀라운 표현은 이런 저항을 “물체를 포착하는 자신의 권리”라고 한 점이다. 무채색은 눈에 안정감을 주고 이것이 바로 우리 눈이 물체를 인식하는 권리. 요약하자면 회색에 검정이라는 어둠이 제시되면, 눈은 회색을 밝게 느끼는 반면 회색에 하양이라는 밝음이 제시되면 눈은 회색을 어둡게 느낀다. 눈의 이런 방식이 살아 있는 ‘생명체의 저항’이자 ‘물체를 포착하는 권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채색이 신비감을 주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원색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무채색은 색이 분명하지 않은 데서 오는 안정감을 통해 묘한 신비감을 준다. 인간은 무채색(인생)을 다른 색(인생)과 함께 볼 때 무채색이 뒤로 빠지고(희생되고) 다른 색이 돋보이면서 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위 인용문에 나타나듯 인간의 안정감을 위해서 눈이 무채색의 명암 톤을 본능적으로 조절하는 것 자체가 ‘물체를 포착하는 자신의 권리’이자 ‘생명체의 저항’인 것이다. 


■ 가장 유연한 살갗을 위해 버릴 것 

아르마니에게 성공을 던져준 결정적인 제품은 ‘언컨스트럭티드 재킷(unconstructed jacket)’.

이 재킷은 남성 정장의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컨스트럭티드 재킷’의 갑옷과 같은 경직성이 질서와 제도, 권력과 규율을 상징한다면, ‘언컨스트럭티드 재킷’은 나풀거리는 자율에 가깝다. 이 재킷의 특징은 몸을 감싸고 흘러내리며 느슨한 미끄러짐들이 모여서 우아함을 창출해 낸다. 몸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제2의 살갗, 어느새 몸의 형태는 그 살갗으로 근사하게 살아난다. 상처 입은 몸을 치료하려는 아르마니의 의도는 성공이었다. 

아르마니는 말한다.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했어요. 패딩, 인터패이싱, 라이닝…. 그러자 옷은 여성복처럼 고전적이면서도 부드러워졌어요.” 여성복이 남성복 스타일로 바뀌면서 코르셋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부드러운 슬림 스타일이 되었지만, 남성복은 아직 그 단계로 진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남성 정장은 옷감 속에다 아주 많은 심지들을 넣어서 뼈대 역할을 했던 것.

하지만 아르마니는 이 모든 심지 뼈대를 빼낸다. 버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유연한 옷을 선물했던 것. 옷은 한결 부드러워졌지만 전혀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마니는 그 옷을 보는 사람을 물리적 힘이 아니라 ‘생명체의 저항’으로 재무장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무채색은 다른 색 뒤로 물러나면서 그 다른 색을 부각시킨다. 무채색 옷은 흘러내리면서 몸을 돋보이게 한다. 살갗처럼 드러난 깨끗한 ‘생체 라인’이 몸과 얼굴, 의상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 

끔찍이도 몸을 생각했던 아르마니는 의상을 통해 몸을 살려내길 원했다. 몸이 패션에 희생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솟아오르도록 하기 위해 그는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무채색 톤을 과감히 사용했다. 

브랜드는 무채색이다. 동양에서는 먹으로만 그리는 수묵화가 화려한 채색화보다 더 높은 경지를 드러냈다. 자신의 색채는 빠지고 칙칙하지만 주변을 살리는 것. 채도가 낮은 수묵화 톤이 오히려 문양을 더 돋보이게 한다. 

아르마니는 폐허의 빛, 무채색으로 우아함을 만든다. 브랜드는 생명체를 살려 비로소 자기다움으로 빛을 낸다. 하루키의 ‘무채색 인생’이 그러하듯…. 


“문양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어떻게 부각할 것인가, 그것이 색채에 주어진 역할이었다. 색채는 아주 엷고 과묵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문양의 배경을 이루었다.”(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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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세요. ♨세상속으...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는가?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너는 네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는가?'

마르틴 부버가 <인간의 길>에서 한 말이다.

이 글을 눈으로만 스치고 지나치지 말고

나직한 자신의 목소리로 또박또박 자신을 향해 소리내어 읽어보라.

- 법정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보고 물어봅니다.

'나는 내 세상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내 세상 어디쯤에 와 있는가?'

때로는 거세게, 때로는 담담하게 와 닿는 이 질문의 끝에 한 가지의 질문을 더해봅니다.

'나는 내 세상의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마음속의 꿈, 영혼의 북극성을 다시 띄웁니다.

오늘이 최후의 순간인 것처럼.......

 

나는 마치 내 최후의 순간이 찾아 온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최후의 순간이 오게 된다면.. 그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나는 나의 생명의 그릇으로부터 한 방울의 물방울도 모래 위에 떨어지지 않게 봉할 것이다.

나는 과거의 불행, 실패, 쓰라림을 슬퍼하며 단 한 순간이라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나쁜 것이 왔다고 좋은 것을 버려야 한단 말인가?

모래시계 속에서 모래가 위로 흘러 올라갈 수 있을까?

해가 진 곳에서 다시 뜨고 뜬 곳에서 다시 지게 할 수 있을까?

과거의 잘못을 없애고 그것을 바로 고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어제보다 더 젊어질 수 있을까?

지난날의 상처를 다시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미 저지른 죄를 다시 불러서 그때의 고통을 씻어버릴 수 있을까?

아니다. 지난날은 영원히 묻어 버리자.

나는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

나는 마치 내 최후의 순간이 찾아 온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겠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제도 잊고 또한 내일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 확실하지도 않은 내일을 위하여 현재의 이 시간을 허비한단 말인가?

미래는 현재를 앞설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태양은 하루에 두 번 뜨지 않는다.

오늘 이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일을 영위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나의 지갑 속에 미래에 벌 돈을 집어넣을 수는 없다.

미래에 태어날 아이가 오늘 태어날 수 있을까?

미래의 죽음의 그림자가 오늘의 즐거움을 덮어버릴 수 있을까?

내가 전혀 모르는 사실에 대하여 걱정을 할 수 있을까?

반드시 일어날 지도 모르는 문제를 가지고 내 자신을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미래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묻혀 있다.

나는 더 이상 미래에 관해서도 생각하지 않겠다.

지금의 이 순간만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이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다.

나는 오늘을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로 여기며 살아 갈 것이다.

-오그 만디노

 

노여움은 성난 말(馬)과 같다.

나가는 방향 일직선으로 달리며, 그 앞에 가로놓인 모든 것을 해치고, 드디어는 자신도 해를 입게 된다.

-셰익스피어 -

피아212 ♪♥

상처 / 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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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 You Today More Than Yesterday.

피아212 ♪♥

Majones (마조네스 - 아름다운 여행) -자닌토(Jan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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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신기하고 묘한 분위기다

힐링 뮤직 이라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을 한단다

자닌토의 그 푸른 음악 시리도록 푸르다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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