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자유’를 강조하던 대통령다웠다. 자유롭게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자유롭게 해제했으며, 자유롭게 사과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권력을 “우리(?) 당”과 국무총리에게 넘긴다 했다. 그러나 책임지는 자세로부터도 자유롭다. 오늘의 '변명문'에서마저도 그 책임을 ‘거대 야당’과 북한, 중국, 마약, 조폭 등에 떠넘기며 자신은 당당하다고 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 윤석열, 그에게 자유란 이리도 가벼운 것인가? 이것이 그가 그토록 숭상한 “자유민주주의”인가? 그의 영혼은 어디로?

45년 전 부마항쟁 광주항쟁의 장면들 되살린 ‘서울항쟁’의 밤

‘12.3 (친위)쿠데타’라 불러 마땅한 ‘비상계엄’이 12월 3일 22시 25분경 선포됐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엄령을 내렸다 했다. 살얼음판을 걷던 최근 정국의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나로서는 ‘마침내 올 게 왔다!’ 싶었다. 다행히 헌법 77조 1항은 “전시, 사변, 비상사태”에만 비상계엄이 가능하다 했고, 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하면 대통령은 해제해야 한다”고 돼 있어, 야당의 역할이 긴요하다 싶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내가 고3이던 1979년 10월 20일경 경남 마산 일대의 ‘위수령’이 떠올랐고 군인과 탱크가 도시를 장악하던 무서운 풍경도 살아났다. 당시 부산에선 10월 18일부터 ‘비상계엄’이었고 부산대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불붙던 시기였다.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전개된 ‘부마항쟁’, 그 연장선인 10.26 사태로 박정희 군사독재가 끝났다. 영화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에 나오듯,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육사 출신 ‘하나회’ 중심)에 의한 12.12 쿠데타, 그리고 1980년의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그에 이은 5.18~27 광주항쟁까지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부마항쟁이나 광주항쟁이 재현되듯, ‘서울항쟁’이 45년 만에 타올랐다. 22시 30분경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본능적 위기감으로 “국회 집결!” 구호와 함께 셀프-유튜브 방송도 하며 국회 담을 거뜬히 넘었다. 경찰 추산 4천여 시민들과 민주 유튜버들도 국회로 달려갔다. 헬기에서 내린 무장 계엄군이 국회 본청 진입을 시도했으나, 여야 의원 190명들보다 빠르지 못했고 거센 시민 저항에 주춤했다. 그 중 언론인이자 민주당 부대변인 안귀령 씨가 국회 앞에서 특전단의 총을 잡고 “부끄럽지도 않냐?”며 저항한 장면이 외신을 타고 세계로 퍼졌다.

‘권총 든 다섯 살짜리 꼬마’ 같은 권력중독자

다행히 이미 많은 국회의원들이 여의도 본회의장에 모여 (헌법 77조 5항을 근거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상정했고, 즉시 190명 전원 찬성(민주당 153, 국힘당 18, 조국당 12, 정의당 2, 무소속 2, 기본소득 1, 개혁신당 1, 사민당 1)으로 가결했다. 계엄 선포 3시간도 채 안 된, 다음날 새벽 1시경(미국 워싱턴 시계로 12월 3일 오전 11시경)이었다. 미 국무부도 한국 대통령실에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계엄령 해제 표결을 존중하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이에 윤석열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선포한 비상계엄을 불과 5시간 만에(새벽 4시 반) “국회 요구를 수용, 계엄을 해제”한다 했다. 5천만 국민의 87%가 계엄 반대 분위기였으니! 그 3일 뒤(12월 7일) 오전엔 사과문을 내고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 드립니다”고 했다. 또 이제야 영혼이 돌아온 듯, “저의 임기를 포함,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며 몸을 낮추었다. 지난 10월 말, ‘김건희 공천 개입 의혹’과 ‘여론 조작’의 핵심 인물 명태균이 윤석열을 두고 ‘권총 든 다섯 살짜리 꼬마’라며 자기가 “살기 위해 대통령이 됐다”고 한 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제 윤석열은 ‘내란 수괴’ 피의자다.

수천만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윤석열의 5일 천하’는 끝났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친위 쿠데타가 종식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나는 7일의 사과문 발표 때 윤석열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며 ‘바로 지금 대통령 직을 내려놓는다’고 할 줄 알았다. 진심이나 영혼이 없는 사과문….

그러나 과연 이게 끝일까? 전혀 아니다! 여전히 권력중독자들은 권력이라는 중독물을 끊지 못한다. 중독자가 살아 있을 때 사생결단으로 중독물을 철저히 단절하지 못하면, 중독자 자신이 죽어야 비로소 중독이 끝난다. 중독의 냉정한 원리!

양심적 인사들의 고백으로 드러난 살 떨리는 순간들

12월 7일 오후 5시엔 국회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윤석열 탄핵안이 상정됐다. 그날 오전에 있었던 ‘사과문’은 진정한 참회나 반성이 아닌, 오후의 국회 의결이 민주당 의도대로 관철되지 못하게 막는 사전 포석에 불과했다. ‘이제 나는 대통령 놀이를 그만둘 테니, 제발 마누라와 나는 살려 줘!’라는 메시지! 국민의힘 정당(?)은 그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협조했다. 즉, 국힘당 의원들은 똘똘 뭉쳐 민주당 주도의 김건희 특검법과 윤석열 탄핵안을 야비하게 막았다. 절체절명의 본회의가 열리던 도중, ‘긴급 의총’을 열어 100만 시위대의 눈을 피한 것은 국회 표결을 사실상 방해한 행위, 달리 보면 윤석열의 내란죄를 방조, 묵인한 행위다.

홍장원 국정원 1차장 및 김현태 707특임단장의 양심고백에 따르면, 국회에 급파된 대테러부대는 “국회의원이 150명 넘으면 안 된다. 끌어내라”는 지시를 수차례 받았다 한다. 또 계엄 직후 윤석열은 국정원에 전화해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라”고 지시하며 명단을 줬는데, 그 안엔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한동훈 국힘당 대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김민석 최고위원, 정청래 의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양경수 민주노총위원장, 방송인 김어준,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 등이 있었다. 홍 차장과 김 단장은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 공수혁 특전사령관 같은 인격체다. ‘상부 지시 무조건 복종’ 아닌, ‘부당 지시엔 불복종’해야 영혼을 팔지 않은 참사람이다.

그 외 곽종근 특전사령관도 국회에서 자백하길, “대통령으로부터 (비화폰으로) 직접 지시를 받았는데 ‘의결 정족수가 차기 전에 국회 문을 깨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한다. 나아가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도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지시하길 14명 요인들을 체포 후에 수방사 지하 벙커에 가두라 했다”고 자백했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100만 ‘깨시민’들을 배신한 여당 대표와 총리의 야합

12월 10일 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1980년 5월 광주항쟁과 유혈사태를 다룬) <소년이 온다>의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 바로 그 무렵, 한국에서는 약 45년 만에 또다시 유혈극을 소설 아닌 현실로 재현할 뻔했다! 발 빠른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 덕에 조기 진압했다. 그러나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힘만은 아니었다. 앞서 보았듯, 계엄 첫날 밤부터 4천여 시민들이 재빨리 국회로 몰려들어 주권자로서의 능동적 모습을 보였기에, 의원들은 용기를 더 낼 수 있었고, 계엄군과 지휘관들은 사기가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깨시민’의 힘!!!

특검법과 탄핵안이 상정되던 7일 저녁에도, 국회 밖에서는 약 100만의 시민들이 전국에서 상경하여 ‘김건희 특검법과 윤석열 탄핵안 가결!’을 외쳤다. 하지만 제법 추운 날씨에 밥까지 굶으며 전개한 시민항쟁은 아쉽게도 결실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결코 패배가 아니다. 패배라는 표찰은 오히려 쿠데타 세력 쪽에 붙여야 마땅하다.

하여간 그렇게 윤석열의 시간이 끝나는 듯하더니, 이젠 한동훈의 시간이 시작됐다. 국힘당 대표 한동훈과 국무총리 한덕수는 12월 8일 오전, 공동 담화문(한-한 담화문)을 발표했다. 더 이상 대통령직 수행이 어려운 윤석열의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위해 “국민의힘 당 대표와 국무총리의 회동을 정례화”함으로써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며 현재 사태 수습하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이에 (민주당) 우원식 국회의장은 ‘누구 맘대로?’라는 듯, 즉각 반박문을 내고 한동훈-한덕수 공동 담화문에는 “헌법도 없고 국민도 없다”고 비판했다. “권력은 대통령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나아가 맘대로 권력 놀이를 할 게 아니라는 취지로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중단시키기 위한 여야 회담”을 제안했다.

1~2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해 온 권력 중독자들의 조직적 행위

대통령 직무정지, 그렇다! 스스로 물러나든지 아니면 탄핵으로 이 사태를 종식시켜야 한다. 약 3년만 시계를 돌려보라. (명태균 식) 불법적 여론조사에 토대한 부정선거로 권력을 장악한 윤석열, 그 한 사람이 선거 형식을 빌려 탄생하더니 (오늘 개봉 다큐 영화, “내가 정권 잡으면”으로 유명한, <퍼스트레이디>에 나오듯) 실제 대통령은 ‘1+1’로 드러났다(김건희+윤석열). 나아가 도처에 검찰 출신을 기용해 검찰 공화국을 만들었다. 해마다 600조 넘는 혈세로 구성되는 예산을 예사로 낭비하거나 빼돌리는 조직 범죄자들이 만연하다. 동시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다각도로 죽이려 한다. 이 기괴한 행태에 저항하는 야당들과 민주시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깡그리 처단”하려 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제 윤석열의 ‘5일 천하’가 끝나니 한동훈과 한덕수가 다시 ‘대통령 놀이’를 하려 한다. 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은 ‘1+3’이던가?

그러나 갈수록 드러나는 바, 비상계엄은 결코 우발적·즉흥적인 게 아니라 1~2년 전부터 체계적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주요 인사를 감금하고 선관위를 털어 ‘부정선거’ 논란으로 국회를 해산하려 했다. 국회 의결로 계엄이 중단되자 2차 계엄까지 검토했다 한다. 그리고 “TV에서 처음 계엄 사실을 알게 됐다”던 (군 장성들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심지어 오물풍선 원점타격-평양 드론 사태나 우크라-러시아 전쟁 파견병 문제들도 결국은 신판 ‘북풍’ 조작으로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또 윤통은 ‘가짜 출근’까지 하며, 결코 2선으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요컨대, 이번 사태는 단지 특이한 일탈행위가 아닌, 돈과 권력에 중독된 자들이 벌인 조직적 중독 행위(내지 중독 시스템)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중독 행위 내지 중독 시스템을 과연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결코 쉽진 않지만 불가능도 아니다.

중독 시스템 해체의 첫 걸음은 ‘내란 수괴’의 직무정지와 인신구속

첫째, 내란 수괴와 공범들, 즉 민주주의의 영혼 없는 적들을 철저히 단죄함(감형 없는 무기징역)과 동시에 쿠데타 사태의 총체적 진실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검찰에 구속된 김용현 식 ‘자살 소동’이나 ‘나 혼자 다 안고 가기’ 식의 꼼수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특히 이번 기회에 기회주의적인 검찰과 언론을 근본 개혁해, 오직 정의와 민주주의에 헌신하게 해야 한다. ‘법과 양심’을 속이는 검찰보다 ‘공수처-국수본-국방수사단’의 공조를 믿는다. ‘내란 수괴’의 직무정지와 인신구속이 첫걸음이다.

둘째, ‘서울의 봄’에 나온, 12.12 쿠데타의 핵심인 육사 출신 ‘하나회’ 같은 사조직을 근절해야 한다. 이번 사태엔 육사 출신 인맥, 대통령의 충암고 인맥, 대통령의 검찰 인맥, 대통령의 대학 인맥이 주요 배경이다. 윤석열이 노동조합을 상대로 입에 거품을 물며 척결해야 한다던 바로 그 ‘카르텔’의 핵심에 본인이 있었다! 모든 기득권 구조를 타파해야 나라가 산다.

셋째, 대통령을 비롯한 중앙집권식 권력구조를 제대로 분권화하여, 지역이나 마을 단위의 자치조직들이 실질적 민주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보 모슬리는 <민중의 이름으로>에서 “선거 대의제는, 민주적 정부가 아니라 과두정과 관료체제를 확립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래서 예컨대, 마을자치를 기본으로 하되, 전국이장연합회가 나라 전반을 논의하는 구도가 좋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역이나 마을을 구성하는 민초들의 의식이 체계화, 고차화해야 하는데, 나는 이를 위해 한편으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인문학 공부가, 다른 편으로 <녹색평론> 같은 생태주의적 대안 모색이 필수라 본다. 그런 기본 소양이 ‘1’도 없이 오로지 돈과 권력, 자리만 탐하는 광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결국 지옥을 만든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과정이다! 촛불광장의 일상화가 필수다. 이게 이번 사태의 최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