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재표결 끝에 부결되자 방청석에서 지켜보던 해병대원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너희는 보수도 아니다, 보수 참칭하는 쓰레기들!”이라고 외쳤다. 국힘당 출신인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자칭 보수정당이라면서 나라를 지키려고 해병대에 갔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병사의 죽음 앞에 비굴하게 침묵하는 국민의힘은 더 이상 보수도 무엇도 아니다”라는 논평을 냈다.

채상병 특검법을 부결시켰다는 이유로 70년 전통의 ‘보수’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보수 참칭’이니 ‘쓰레기들’이니 하는 험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애국심 가득한 퇴역 해병대원들에게 말이다. 채상병 특검법이 뭐길래? ‘보수’가 뭐길래?

‘보수’ 또는 ‘보수주의’는 상대적 개념이고, 정치·경제·사회 여러 영역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한 두 개 단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대체로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적인 가치와 신념을 지키려는 사상이나 태도’쯤으로 말할 수 있겠다. 자유, 반공, 법치, 시장, 감세, 민영화, 민족, 가족, 애국, 효도, 도덕, 윤리, 예절, 청렴 등등의 단어가 ‘보수’의 연관검색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보수’ 정당, ‘보수’ 정치인들은 기묘하다. 일반적인 보수, 보수주의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예를 들면, 과거 리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등 ‘보수’ 정당이 권력을 잡으면 대체로 국민의 자유는 강화된 게 아니라 억압당했다. ‘보수’ 정당은 우리 민족보다 미국·일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대주의 경향도 있다. 심지어 ‘보수’ 정치인들은 미국 성조기, 일본 일장기가 나부끼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보수’ 집회에도 참여한다. 애국을 강조할 것 같은데 실상 ‘보수’ 정치인들은 거의 대부분 본인이나 자녀들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 이렇게 자기 민족을 가볍게 여기고 군대도 가지않는 보수가 있나?

우리나라 '보수' 정치인들은 보수가 소중히 여길 것 같은 윤리, 도덕, 청렴 같은 가치와도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이 ‘진보’ 정치인의 불법행위나 성추문을 대서특필해서 사람들의 기억에 크게 남아있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예로부터 ‘보수’ 정당 출신 정치인들이 일으킨 부정부패와 법 위반, 성추문이 훨씬 많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 부자 상위권은 거의 다 ‘보수’정치인들 차지다. 부동산 투기도 그들의 특기다. 설마라고? 팩트체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보수’ 정당 또는 ‘보수’ 정치인이 ‘보수다웠던’ 것은 이념적으로 반공주의로 똘똘 뭉치고 경제적으로 시장 만능주의, 사회적으로 가족 지상주의를 옹호한 것 정도다.

이번에 야당이 추진한 채 상병 특검법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병사의 죽음과 수사를 둘러싼 진실을 밝혀내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수’의 핵심 가치인 애국심과 법치주의와 관련된 문제다. 그런데 이런 특검법을 ‘보수’ 정당이라는 국힘당 의원들이 가로막은 것이다. 애국심에 불타는 ‘진짜 보수’ 해병들이 ‘가짜 보수’에게서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해병대원들이 국힘당을 향해 “너희는 보수도 아니다”라고 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발견은 아니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다. 국힘당과 그들의 여러 전신(前身)들 - 자유당부터 새누리당까지 - 은 과거에도, 또한 지금도 일반적인 ‘보수’와 거리가 멀다. 건강한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돈과 권력만 좇아온 한국 '보수'의 일그러진 얼굴이 채 상병 특검법 앞에서 다시 드러난 것 뿐이다.

한국의 정당, 정치인 앞에 ‘보수’ ‘진보’를 잘못 가져다 붙인 데에는 무엇보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이 기사나 칼럼에서 항상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쓰는데, 정확하고 맞는 수식어가 아닐뿐더러 기득권 세력이 정치를 갈라치기해 혐오와 갈등을 키우는데 악용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부패하고 부도덕한 기득권 집단을 ‘보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고 미화해 왔다는 사실이다. ‘가짜보수’가 ‘진짜 보수’를 참칭한 것인데, 언론이 그렇게 한 것이다. 

언론은 자신에게도 ‘보수언론’ ‘진보언론’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른바 ‘조중동’을 묶어 ‘보수’ 매체라고 부른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민족, 애국, 법치, 윤리, 책임 같은 ‘보수’의 가치들을 지키고 실현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과거 이들은 지면을 통해 민족을 배반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을 옹호했으며,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치·정치인들이 권력을 잡고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언론이다. 한국의 ‘보수’ 정당이 ‘보수’가 아닌 것처럼 조중동 ‘보수’언론도 실은 ‘보수’가 아닌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에 붙이는 ‘보수언론’ 수식어는 황당과 뻔뻔 그 자체다. 창간 100년이 넘는 이 매체는 그동안 신문과 방송을 통해 친일·독재·자본 권력을 열렬히 옹호했을 뿐 아니라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악마화를 유포하며 ‘보수’가 아닌 ‘극우’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다. 신뢰도 꼴찌가 그래서 나온 결과다. 조선일보는 이번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서도 “이 사건은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5월30일자 사설)라며 반대해왔다. “너희는 보수도 아니다”라는 해병의 지적은 국힘당뿐 아니라 조선일보에도 해당된다.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정확하고 적절한 이름을 붙여주고 불러주어야 한다. ‘바른 이름’(正名)으로 불러야 실체를 알 수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같은 ‘보수’라는 수식어는 허명(虛名)일 뿐 아니라,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오명(汚名)이다. 그 갈라치기 싸움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가면 뒤에 숨어있는 '가짜 보수'다. 건강한 '보수'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보수도 무엇도 아닌” 언론에 ‘보수언론’이란 잘못된 이름 대신 정확하고 적절한 이름을 찾아줘야겠다. 이름의 후보는, 반민족 언론, 기득권 언론, 수구 언론, 정치언론, 황색 언론, 왜곡 언론, 혐오언론 등 아주 많다. 딱맞는, 가장 좋은 명명(命名)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