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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Red Baron full movie voa

영화

Red Baron full movie(click)

제1차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정찰기로만 사용하던 비행기가 전투기로 등장하고 공중전이 생겼다.

1차세계대전에서의 공중전은 그야말로 웃기는 전투였다. 요즘전투기들은 락온과 함께 버튼을 누르면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정확히 표적을 초전박살을 냈다. 하지만 1차대전은 초창기에는 조종사가 권총이나 돌을 가지고 탑승하여 옆에 적기가 지나갈때 돌을 던지거나 비행하다 말고 일어나서 사격을 하곤했다.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거기서 발전하자 사수와 동반하거나 동체에 기관총을 설치해서 사겨할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비행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비행하지 않고 사격을 할수 있을까?

물론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어쩔수 없었던 것이다.

개전 초기 비행기는 육군에겐 두려움에 대상이었다. 너무 빨라 총으로는 맞추기 힘들었기 때문에 격추시키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전투기들이 늘어 났고 공중전 또한 늘어 났다.

그당시 하늘의패자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독일군소속 만드레프 폰 리히트호펜.

그의 별명은 붉은 남작인데 이유는 진홍색으로 칠한 포카 Dr 1전투기에 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

그는 공식적인 격추기록만 80기(비공식 격추기4기) 이다.그리하여 붉은남작은 독일군의 정신적 지주이자 연합군을 두려움에 떨게했다. 그가 보여주었던 고급기동은 연합군 조종사들이 보고 혀를 찼다고 한다. 그렇게 하늘을 지배하던 자도 불사조는 아니었다. 출격중 출처를 모르는 사격에 의해서 격추되어 비행기와 함께 화려한 삶을 마감했다. 리히트호펜이 처음부터 조종사는 아니었다. 이제 그의 일생에 대해서 얘기 하겠다.

 

 

(붉은 남작)만드레프 폰 리히트호펜[Richthofen, Manfred von, 1892.5.2~1918.4.21]

1차대전을 통털어 가장 위대한 에이스로 기억되는 만프레드 폰 리히토펜은 세상사람들에게는 에이스의 진수이자 전설의 대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존재는 단순히 80기라는 최고의 격추기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독일공군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그리고 실전에서의 유능한 지휘관으로서 이룩한 업적으로 인한 것이었다.

 

프러시아의 근간을 이룬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리히토펜은 장남이 군대에 입대한다는 귀족사회의 전통에 따라 프러시아의 제국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이후 그의 군생활은 기병대로 시작되었다. 이후 기병대는 이때까지 가장 중요한 지상전력으로 인식되었으며 일반인들의 선망이 되는 화려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자 기병연대는 이 화려함에 종말이 왔음을 통감해야 했다. 서부전선에 배치된 기병대는 얼마안가 시작된 참호전에 휘말려 급히 땅을 파고 방어진지를 구축해야 함으로서 그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후 그의 군생활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보급장교로 일을 해야 했는가하면 다시 동부전선으로 배속되어 러시아군을 상대로 하는 정찰기의 관측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이때 정찰기를 타본 리히토펜은 점차 항공기간의 전투에 매혹되고 있었다. 후에 알바트로스 C 복좌기를 타고 관측수의 임무를 맡았던 리히토펜은 후방석의 기총으로 러시아군의 파르망기를 명중시켜 격추시켰다. 이것이 그의 첫승리였으나 이 기록은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공인되지 못했다.  

 

 

[1916년 전투 조종사로 시작할 무렵의 리히토펜 - 이때 그의 나이 23세였다.

 

이 승리이후 공중전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리히토펜은 동부전선에서 그의 친구이자 고참 조종사인 쥬머 소위에게 부탁하여 조종기술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하늘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열의에 불타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자 많은 시도를 했다.

 

 

이후 지지부진한 조종사로서의 생활을 하던 이 젊은 청년은 동부전선을 시찰중이던 오스발트 뵐케를 만나는 것으로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독일 공군의 선구자로 새로운 전투비행부대인 야스타를 창설하기위해 우수한 조종사를 선발하던 뵐케는 한눈에 이 열의에 불타는 조종사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곧 리히토펜은 서부전선에서의 제공권을 쟁취하기 위한 야스타 2 중대에 배속되었다. 1916년 9월 17일 뵐케는 그와 함께 신예 전투기 알바트로스 D II기로 비행할 4명의 조종사를 선발하여 초계비행하였는데 이때 뵐케의 야스타에는 전의에 불타는 신참 조종사 리히토펜이 섞여 있었다.

 

이날 우연히 연합군의 FE2c 전투기 편대와 조우한 야스타 2는 곧 전투를 시작했다. 긴장한 리히토펜은 긴장한 나머지 너무 일찍 방아쇠를 당기는 실수를 했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적기 한 대의 후방에 따라붙어 사격을 가하여 명중시켰으며 적기는 나선강하로 추락해갔다. 이전에 비공인 격추를 경험한 리히토펜은 적기를 따라 강하하여 전과를 인정받기 위해서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부서진 적기의 잔해와 근처에 쓰러져 있는 영국 조종사들을 확인한 리히토펜은 동료들의 증언으로 드디어 첫 번째의 공인 격추를 인정받았으며 기쁜 마음으로 금은방에서 은트로피를 주문하여 자축했다. 

 

[저돌적인 모습의 하늘의 에이스 리히토펜 - 그는 오스왈드 뵐케와 막스 임멜만의 뒤를 이어 불루맥스 훈장의 3번째 수상자였다. ]

 

 이때부터 리히토펜은 주당 1기를 격추시키는 무서운 격추 레이스를 시작했다. 1916년 10월 17일 그의 스승인 오스왈드 뵐케가 35기의 대 격추기록을 수립하던 날 리히토펜도 6기째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날무렵 뵐케는 40기의 격추기록을 수립했다. 그러나 10월 28일 뵐케는 영국의 레이노 호커 소령이 이끄는 영국 전투기 편대와 교전 중 비행사고로 사망했다. 이 비행사고가 리히토펜기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면서 리히토펜은 마음 속으로 큰 충격을 받았으나 그의 공중전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이미 스승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이어받아 독일 공군을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11월 3일 뵐케의 장례식이 있던 날, 리히토펜은 한 대의 적기를 격추시켜 그의 스승을 애도했다. 그리고 1916년 11월 23일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알바트로스 D.II 5기로 이루어진 편대를 인솔하여 초계비행중이던 리히토펜은 우군의 2인승기들이 영국의 DH2 전투기 편대에게 추격당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즉시 구원에 나섰다. 이 영국 편대는 바로 레이노 호커 소령이 이끄는 편대였다. 리히토펜은 알바트로스 D.II의 우수한 비행성능을 이용하여 끈질긴 공중전 끝에 호커를 격추시켜 전사하게 했으며 이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독일의 최고  에이스중 한명이 되어 갔다.

 

이후 야스타 2가 해체되고 야스타 11로 재구성되면서, 1917년 초봄 뵐케의 뒤를 이어 받아 야스타 11을 지휘하게 된 리히토펜은 우수한 조종사들을 그의 야스타로 모집했다. 당시 영국은 우수한 조종사들을 전군에 분산시켜 미숙한 조종사들을 이끌도록 했으나 독일군은 우수한 조종사들을 따로 모아 엘리트 전투비행대를 구성했다. 야스타 11은 전쟁전기간을 통해서 널리 알려졌던 베르너 보스, 칼 쉐퍼, 칼 알레멘뢰더, 부르노 뢰느저, 커트 월프등의 최고의 조종사들이 소속되었다. 리히토펜의 동생 로타 리히토펜도 이 야스타 11에 소속되어 형과 함께 싸웠다.

 

야스타 11은 에이스들이 자신의 개성에 따라 기체를 화려한 원색으로 도색했으며 리히토펜은 자신의 기체를 붉은 색으로 칠했다. 이후 리히토펜의 기체는 붉은 색으로 도색되게 되었다. 영국 공군은 이 야스타 11의 원색 기체들을 '날으는 서커스단'이라 불렀는데 사실 이 별명속에는 무서운 전투력이 숨어있는 전쟁 전기간을 통털어 가장 무서운 전투기 부대로 기억되게 되었다. 야스타 11은 철도를 이용해서 전선의 곳곳에 출몰하여 영국 전투기들을 격추시켜 나갔던 것이다.

 

[1917년 4월 - 피의 4월을 주도했던 알바트로스 D.III기의 조종석에서 Jasta 11의 멤버들과 함께한 사진, 40기를 격추한 에이스 이자 리히토펜의 동생 로타 리히토펜의 모습도 보인다. (맨앞에 앉아있는 사람) ]

 

 

1917년 4월, 영국에게는 참으로 재난의 시기였던 '피의 4월'기간동안, 신예 전투기 알바트로스 D.III로 재무장한 야스타 11은 도처에서 영국의 구식 전투기들을 몰아내었다. 피의 4월이 끝날부렵 그는 52대의 격추기록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황제의 초청을 받았다. 금발의 미남인 리히토펜은 독일의 우상이 되었다. 여성들은 그의 사인을 받으려고 아우성이었으며, 그를 부러워한 다른 귀족들이 앞다투어 전쟁에 참전을 하게 되었다.

 

이후 독일공군은 야스타 4, 6, 10, 11을 통합하여 리히토펜을 지휘관으로 하는 야크트케슈바더 1 (JG 1)이 창설 되었다. 이 부대의 조종사들의 평균연령은 21세, 편대장들의 평균연령은 25세로서, 멤버 하나하나가 모두 내노라하는 전투력을 자랑하는 독일공군의 정예중의 정예였다.

 

이후 계속 승승장구하던 리히토펜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영국 제 20 전투비행단과 교전중에 기관총 탄환이 좌측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의식을 잃은 리히토펜은 그의 기체가 추락하기 바로전에 의식을 찾아 간신히 불시착했으며 이후 병원에 입원하여 1917년 7월까지 전선에 복귀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부하이자 최고 에이스중 한명이었던 칼 알레멘뢰더가 영국해군의 레이먼드 콜리쇼가 지휘하던 검은 비행단과 교전 중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당시 검은 편대가 사용했던 솝위드 3엽기는 비상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과 교전했던 대부분의 독일 조종사들이 알바트로스보다 이 영국 기체들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영국측은 이 솝위드 삼엽기를 더 개량하지 않았으며 영국해군항공대에서만 주로 사용되었다.  

 

[드디어 배치된 꿈의 기체 - 포커 Dr.I 삼엽기, 뛰어난 공중 기동성을 자랑하는 기체였으며 1918년의 대규모 근접 공중전에 매우 적합한 기체였다. 특히 수평방향으로 러더만을 사용하여 뱅크를 전혀 주지 않고 턴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후 독일측은 이를 능가하는 새로운 기체의 개발에 열을 올렸으며, 리히토펜이 복귀할 무렵 포커 Dr.I 트라이데커(삼엽기)가 배치되기 시작했다. 작고 호전적인 이 솝위드 삼엽기를 타본 리히토펜은 이 기체가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한 공중전에 매우 적합한 기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이 기체가 귀신같은 기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절찬했다.  

 

1917년 8월 드디어 신예 포커 삼엽기가 배치되었으며 9월 2일 리히토펜은 그의 60번째 격추기록을 포커 삼엽기로 수립했다. 리히토펜은 이 포커 삼엽기가 확실히 연합군기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공중 전력은 독일군이 생각했던 것처럼 만만치는 않았다. 새로운 솝위드 캐멀, SE5a등이 꾸준히 증강되고 있었으며 공중전은 점점 치열해져 갔다. 그리고 JG-1의 우수한 조종사들도 하나 둘 공중전에서 전사하고 있었다. 야스타 11의 커트 월프가 영국 전투기들과 교전중 전사했으며, 연합군의 일부 조종사들이 리히토펜보다 더 뛰어난 에이스라고 인정했던 베르너 보스도 영국의 56 비행대대와의 처절한 전투 끝에 전사했다.

 

전반적으로 전세가 연합군측으로 기울어가는 이 어려운 시기에도 리히토펜은 꾸준히 적기를 격추시켜 나갔으며 독일의 수뇌부는 이 하늘의 영웅을 우상화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언론은 연일 그의 전과를 대서 특필 했으며, 그는 독일 국민에게는 신비한 하늘의 붉은 남작으로 숭배를 받았다.

 

 1918년 4월 20일 드디어 전인미답의 80기 격추를 기록하면서 불사조의 전설을 계속할것처럼 보였다. 연합군들은 이때까지 그를 '붉은 악마', '붉은 기사', '붉은 남작'등의 별명으로 불렀으며 이 붉은 기체를 조종하는 조종사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과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리히토펜이 조종하는 붉은 삼엽기는 곧 100대의 격추기록을 돌파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치 않았다.

 

[붉은 남작의 출격 - 항상 그의 숭배자들이 비행기를 에워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8년 4월 21일 리히토펜이 적기를 찾아 그의 편대를 이끌고 출격한후에, 출격기들이 하나 하나 귀환하고 있을 무렵, 리히토펜 편대의 슐츠 중사가 돌아왔다. 그는 기체에서 뛰어 내린후 넋이 나간 모습으로 '영국의 캐멀기들과 교전중에 붉은 남작이 격추 되었다. 아마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놀라운 말을 남겼다. 누구도 믿지 않았으나 리히토펜의 붉은 삼엽기는 해가 다 저물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날의 교전에서 리히토펜을 격추시킨 것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으나 치열한 교전중에 그의 뒤를 추격하여 격추시켰다고 주장하는 영국 제 209 비행대대의 브라운 대위가 가장 유력하다.  

 

[ 붉은 남작의 격추자, 영국의 브라운 대위의 사진 - 붉은 남작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가 리히토펜을 격추시켰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는 부하 메이소위가 조종하는 캐멀기가 붉은 삼엽기에게 ?i기는 것을 보고 후방으로 접근하여 사격을 가했으며 저공 비행중이던 이 삼엽기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지상에 격돌하여 불타 올랐다고 보고했다. 이후 이 삼엽기의 조종사가 리히토펜임이 밝혀지자 영국은 브라운대위를 리히토펜의 격추자로 발표했다. 그는 연합군 조종사의 추도속에 버탱글이라는 작은 마을에 안장되었다. 리히토펜이 격추된 다음날 한 영국군 조종사의 그의 죽음을 알리는 애도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독일군 진영에 떨어뜨리고 돌아갔다.

 

그러나 독일측은 그가 공중전중 전사한 것이 아니며 저공비행중에 지상에서부터 가해진 기관총 사격으로 리히토펜이 피격된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어떠했든 간에 리히토펜의 죽음은 단지 한명의 에이스가 전사했다는 것을 떠나 전 독일군과 독일국민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기록한 공인 격추기록 80기는 이후 엽합군과 독일군 양측에서 모두 최고의 기록으로 전쟁이 끝날때까지 아무도 이에 이르지 못했다.  

 

 [브라운이 보고한 격추 보고서 - 당시 상황이 잘 서술되어 있다.]

 

게다가 그는 가장 무서운 전투조종사였으나, 잔인한 조종사는 아니었다. 그는 적기가 추락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더 이상의 사격을 가하지 않았으며, 이로인해 많은 연합군 조종사들이 피격후에도 살아날 수 있었다. 리히토펜의 전사소식을 들은 몇몇 연합군 조종사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모든 조종사들이 하늘에서 리히토펜을 만나지 않게 된것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리히토펜이 포로로 잡혔더라면, 그와 악수 한번하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후 7년이 지난 1925년 리히토펜의 유해가 기차에 실려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전 독일에 조기가 계양되었으며 독일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다시 애도했다. 베를린이 생긴이래 가장 긴 장례행렬이 그의 관을 따랐고, 베를린 군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때 독일의 힌덴부르그 대통령이 첫삽을 들어 그가 독일의 최고 전쟁 영웅이라는 것을 알렸다.  

 

패전의 실망과 허탈감 속에서도 그의 존재는 독일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리히토펜을 동경하여 항공단에 입학했다. 훗날 이들이 독일 공군 재건의 주역이 되었다.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 같은 2차대전의 유명 에이스도 리히토펜을 동경하여 공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1940년 전격전 직후 프랑스의 한 비행장을 접수한 JG 2 소속의 Bf-109E, 리히토펜을 상징하는 R자가 새겨져 있다.] 

 

이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러 독일의 재군비가 시작될무렵 히틀러의 지시를 받은 괴링은 다시 한번 이 붉은 남작을 우상화 했다.

 

그리고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전 유럽을 석권하며 하늘을 누볐던 루프트바페(독일공군)의 최정예 부대였던 JG 2에는 '야크트게슈바더 리히토펜'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고  JG 2의 모든 Bf 109E 전투기에는 리히토펜을 상징하는 부대마크인 'R'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의 후배들은 이 위대한 선배의 이름을 단 부대에 속하게 된 것에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현재까지도 리히토펜은 독일뿐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불사조의 투혼을 가진 위대한 에이스로 항공전사에 길이 기억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붉은 남작은 전설의 존재이다. 그를 기념하는 Jagdgeschwader Richthofen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다. 사진은 R자를 새기고 붉은 남작을 기념비행하는 독일 공군의 F-4F 팬텀]

 

 

 

 

 

 

 

 

 

그리고 앞으로도 항공전사의 서두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영웅, 리히토펜이라는 불사조의 전설은 영원할 것이다!~

 

"내가 날고 있는 고도보다 낮게 날고 있는 적기는 그것이 후방기총좌가 없는 단좌기라면,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다."

- 리히토펜이 공중전에서 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그의 야스타에게 남긴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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