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2년 3개월 만에 1%대를 기록했다. 수출과 건설투자, 정부와 민간 소비가 성장을 견인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에서 예상보다 성장률이 높았으나 국제 유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안심하기엔 이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4분기 부진에 따른 기저 효과가 일정 부분 반영된 데다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성장세 지속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직전 분기 대비) 속보치는 1.3%를 기록했다. 2021년 4분기 1.4% 상승 이후 가장 높은 분기 성장률이다. 분기 성장률은 지난 2022년 4분기 반도체 등 주력 제품의 수출이 급감하며 성장률이 0.3% 뒷걸음질 했다. 한 분기 만인 지난해 1분기 반등했고 2분기(0.6％), 3분기(0.6%), 4분기(0.6%) 연속 플러스 성장을 유지했다.

1분기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은 건물과 토목 건설이 늘면서 건설 투자가 2.7% 뛴 것이 주요 요인이었다. 수출도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0.9% 성장했고 민간 소비는 음식·숙박 등 서비스와 판매가 모두 늘어 0.8% 뛰었다. 정부 소비도 0.7% 늘었는데 총선 이전에 적지 않은 재정이 풀린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양호한 기상 여건과 일부 사업장의 마무리 공사 진행 등으로 공사가 늘면서 건설 투자 성장률이 큰 폭의 플러스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주요 항목별 기여도를 보면 건설투자 등을 포함한 민간투자가 0.6%포인트 높아졌고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 수출도 0.6%포인트 올랐다. 민간 소비는 0.4%포인트, 정부 소비는 0.1%포인트 높아져 성장률 상승의 요인이 됐다. 반면 정부투자는 0.1%포인트 줄어 총선 관련 재정지출 등을 포함한 정부 소비와 합산하면 정부의 1분기 성장률 기여도는 0%라고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업종별 성장률은 건설업이 4.8%로 가장 높았고 전기·가스·수도업이 1.8%로 뒤를 이었다. 화학제품·운송장비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1.2% 성장했고 서비스업은 도소매·숙박음식업 등이 0.7% 늘었다.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소득(GDI) 증가율은 2.5%로 실질 GDP 성장률을 웃돌았다.

한국은행은 “1분기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 당시 성장경로를 웃돌았으나 민간 소비는 지난해 계속 증가율이 낮았던 데다가 전년 동기 대비로는 아직 1.1% 늘어난 정도라 완전히 회복 국면에 들어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은 “건설투자도 작년 4분기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았던 기저 효과의 영향이 있다”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불확실성이 여전히 상정돼있고, 건설 수주·허가 면적·착공 면적 등 건설 관련 지표들이 그동안 안 좋았기 때문에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다시 부진한 흐름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한국은행 분석과 달리 기획재정부는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에 선명한 청신호”라는 정반대 해석을 내놓았다. 기재부는 25일 백브리핑 참고 자료에서 “재정에 의존한 성장이 아닌 민간 주도 성장의 모습은 내수가 반등하며 수출-내수의 균형 잡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률 전망에 대해서도 “분기별 변동성은 있겠지만 수출 개선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 회복세도 점차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재부는 1분기 순 수출 기여도가 4개 분기 연속으로 플러스를 기록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4분기 연속 플러스는 2000년 이후 3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양호한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기재부가 한국은행이 발표한 성장률 속보치에 대해 별도의 설명자료를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것도 한국은행과 거의 반대되는 견해를 피력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5분기 만에 1%대 성장률로 올라선 지표로 만회해 보려는 속셈이 읽힌다.

하지만 부동산 PF 부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데다 유가와 환율이 급등락하는 등 대외 불확실성까지 커지고 있어 견고한 성장 기조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축은행과 증권사, 캐피탈,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권을 넘어 은행들로 신용 경색이 확산할 조짐도 보인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시중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은 0.51%로 전월 말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2019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 대출에서 연체율 상승 폭이 컸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0.59%로 1월 말 0.50% 대비 0.09%포인트 상승했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10%포인트나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부동산 대출 부실 여파로 한국이 그림자 금융이 약한 고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부동산 위험노출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은행권이 보유한 부동산 그림자 금융 규모는 926조 원으로 전년의 886조 원보다 4.5%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10년 전 대비 4.2배 증가한 액수다. 비은행권의 대출 연체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어 그림자 금융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다는 게 블룸버그통신의 분석이다.

지난해 성장률이 1.4%까지 떨어져 기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데다 반도체 수출이 회복 중이라 올해는 2%대 성장률을 달성할 수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대체로 비슷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복병이 너무 많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들썩이고 있고 미국이 금리 인하 시점을 미루면서 원 달러 환율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과 한계기업 증가, 고물가와 고금리에 따른 민간 소비 둔화 등도 위험 요인이다. 고작 1.3% 성장률에 “우리 경제의 성장경로에 선명한 청신호”라는 한가한 말을 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