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28일 0시를 기해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종북세력이 이 나라를 장악하게 할 수 없다며 색깔론을 앞세운 '거야 심판'을,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국정 파탄으로 점철된 검찰독재의 종식에 중점을 둔 '정권 심판'을 각각 전면에 내걸고 4·10 총선일까지 13일간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를 펼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이나 미성년자, 공무원 등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나 단체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날인 4월 9일까지 공직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후보자와 그 배우자, 직계존비속, 후보자와 함께 다니는 선거사무장·선거사무원 등은 후보자 명함을 배부할 수 있다. 또 후보자와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등은 자동차와 확성장치를 이용해 공개 장소에서 연설할 수 있다(확성장치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사용 가능).

27일부터 시작된 재외국민 투표는 4월 1일까지 해외 115개국 220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재외 유권자는 14만 8000여 명이다. 정당 및 후보자 정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재외선거 홈페이지와 외교부, 재외동포청, 각 공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의 사전투표는 4월 5∼6일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판세는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여야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양당 선대위 등에 따르면 지난 26일 기준 전체 254개 지역구 가운데 승리 가능성이 큰 '우세' 지역으로 국민의힘은 82곳, 더불어민주당은 110곳을 각각 꼽았다.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인 강동형 광주대 초빙교수(전 서울신문 상무)는 27일 시민언론 민들레 기고문을 통해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의석을 포함해 110석 달성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반면 민주당 지역구 의석수는 21대 총선 결과와 비슷한 160석 안팎,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 비례 의석을 포함한 범야권의 의석수는 190석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 총선 D-15 판세는…민주당 지역구 160석 이상 가능

여권은 이번 총선을 '종북세력'과의 대결로 규정하며 이념 전쟁으로 프레임을 짠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있다"며 "반국가세력들이 국가 안보를 흔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인요한 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 선대위 회의에서 "이념과 사상은 전쟁을 치러서라도 지켜야 할 부분이 있다. 너무너무 중요한 선거"라며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겨냥해 "왜 선거가 중요하냐면 이·조(이재명·조국)의 심판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미 지난 19일 중앙선대위 발족식 때부터 "이번에 지면 윤석열 정부는 집권하고 뜻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끝나게 될 것이고, 종북세력이 이 나라 진정한 주류를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한 위원장은 27일 경기 수원 유세에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는 자기를 위해 정치하고 자기가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정치한다. 복수하기 위해 정치한다"며 특유의 네거티브전을 전개했다.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 겸 공동선대위원장의 '긴급' 지시로 '더 이상 이 나라를 범죄자들과 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란 문구의 정당 현수막을 내걸도록 전국 시·도당에 주문했다가 수도권 출마자들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긴급' 철회하기도 했다. 장동혁 사무총장은 취재진에게 "(민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려는 세력을 국회에 끌어들이려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런 것에 방점을 두고 홍보하는 방법도 있지만, 한동훈 위원장이나 저는 여당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국민께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색깔론이 뜻대로 잘 안 먹히자 정책 제안으로 노선을 일부 선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 위원장은 27일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을 발표했다. 중원인 충청권과 서울 '한강 벨트' 표심을 동시에 공략해보겠다는 카드로 풀이된다. 그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 완전한 세종시 이전으로 여의도 정치를 종식하고, 국회의사당을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시민들께 돌려드리겠다"며 "여의도와 그 주변 등 서울의 개발 제한을 풀어서 서울의 개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개발론을 내세웠다.

민주당은 4월 10일을 '윤석열 정권 심판의 날'로 규정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충북 현장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지난 2년, 국민은 윤석열 정권에게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줬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참을 만큼 참았다"며 "하지만 돌아온 것은 민생 경제 몰락, 민주주의 파괴, 미래 실종, 그리고 평화의 위기뿐이다. 이제 국민은 '못 살겠다, 심판하자' 이렇게 명령한다"고 밝혔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심판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민의 더 나은 삶,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겠다"면서 "윤석열 정권이 파탄 낸 민생을 다시 살리겠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재건하겠다.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파괴된 민주주의를 반드시 다시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또 "4대 경제 강국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며 "민생을 회복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끊임없이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기본사회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출생 기본 소득으로 부모의 양육 부담을 덜고 성인이 된 자녀의 자립을 위한 기반 마련 ▲모든 세대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기본 주택으로 전국민 기본 주거 실현 ▲청년들이 빚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대학 무상교육으로 교육의 기본권 보장 ▲간병비 건강보험료 적용을 비롯해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확대로 국민의 의료비 경감 ▲어르신들의 하루 한 끼를 챙기기 위해 주중에는 경로당에서, 주말에는 단계적으로 바우처 형태의 식사 지원 등 내용을 담고 있다. ☞ 민주당 총선 공약 '기본사회 5대 정책'

아울러 민주당은 국회의원에게 무노동·무임금 원칙 적용, 국회 교섭단체 구성 요건 완화, 대통령 부인의 국정 관여 차단, 대통령 인사 검증권의 국무총리 이관 등을 골자로 한 총선 정치개혁 정책도 발표했다. 김민석 상황실장은 여의도 중앙당사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다음 국회에서 제1당이 되면 현재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정부‧여당처럼 정치를 갈등과 싸움의 공간이 아니라 상생하고 일하는 공간으로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상생 국회 ▲일하는 생산적인 국회 ▲제왕적 대통령 견제 ▲정당·숙의 민주주의 심화 등 정치 개혁 방향과 세부 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측면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그는 27일 고향인 경남 거제시를 찾아 이번 총선에 출마한 민주당 변광용 후보를 격려했다. 지난 24일에는 사저가 위치한 경남 양산갑 이재영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찾아 "양산갑 최초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돼달라"고 응원한 바 있다. 28일에는 사저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고, 29일에는 부산 사상구를 찾아 배재정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기로 했다.

공천 배제에 반발해 한동안 잠행했던 친문계 핵심 임종석 전 비서실장도 백의종군 차원에서 선거 지원에 뛰어들기로 했다. 임 전 실장은 선대위에서 별도의 직책을 맡지 않고 '한강 벨트' 등 수도권 격전지와 부산·경남의 '낙동강 벨트'를 중점 지원하면서 경북과 강원 등 민주당 험지에도 출격한다는 계획이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8일 오전 서울 중성동갑 전현희 후보의 캠프 출정식부터 참석하는데, 이 자리에는 이재명 대표도 오기로 해 두 사람의 만남에도 눈길이 쏠린다.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가 파괴력을 발휘하며 이번 총선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 조국혁신당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국 대표는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을 통해 권력기관 개혁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감사원, 기획재정부 등이 다시는 독재의 도구로 준동하는 일이 없도록 22대 국회에서 기필코 '불가역적인 개혁'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해 검찰을 공소제기 및 유지 기능만 행사하는 '기소청'으로 전환 ▲국민 눈높이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소배심제' 도입 ▲2022년 대선 직전 여야가 합의했던 중대범죄수사청을 비롯한 전문수사청 설치 ▲행안부 설치 경찰국 폐지 ▲국정원이 국내 정치 개입 및 민간인 사찰을 하지 못하도록 국정원의 신원 검증 기능 전면 재검토 ▲감사원이 정치적 목적의 감사를 하지 못하도록 회계감사와 직무감찰 범위 명문화 및 사무총장 권한 축소 등 방안을 열거했다.

조 대표는 "4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날"이라며 "실로 나라의 명운이 달린 선거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이번 선거에 임하겠다. 검찰독재를 조기에 종식하고 조국을 혁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