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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가보고싶다...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 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주요 내용은 신과 계약을 맺은 모세의 이야기로, 모세5경으로도 불린다.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바벨탑, 노아의 방주 등 익숙한 성경 이야기가 모두 토라에 담겨 있다.

↑ 통곡의 벽에는 종이가 꼬깃꼬깃 박혀 있다. 신에게 '소원을 들어 주십사'하는 일종의 청탁서다


시대를 넘나드는 진보주의자
Galilee갈릴리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신'은 누구인가. 유대인은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줄 메시아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지만 기독교인은 그 메시아가 바로 부활한 '예수'라 말한다. 메시아를 예수라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예수의 굴레에서 벋어날 수는 없다. 서구문명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서력기원西曆紀元을 따르기 때문이다. 역사는 예수가 탄생하기 전Before Christ·BC과 예수가 탄생한 후Anno Domini·AD로 나뉜다. 2013년 역시 예수가 태어난 그 해를 기점으로 시간을 기록한 것이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그는 인간의 세월까지 쥐락펴락하나. 나는 부활한 예수가 아니라 약자를 몸소 품었던 박애주의자, 인간 예수를 만나고 싶었다. 갈릴리Galilee로 간 이유다. 갈릴리 호수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갈릴리 일대의 명소로 향한다. 갈릴리는 예수가 어부 베드로를 만나고, 회당에서 설교를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인 바로 그곳이다.

8가지 복을 설교했다는 팔복교회Church of The Mount of Beatitudes의 입구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Let anyone who thirst come to me and drink whoever.목이 마른 자는 내게 와라 그리고 누구든지 마셔라" 나는 'Whoever누구든지'라는 단어에 꽂혔다. 당시 병자, 귀신 들린 자는 신의 율법을 어긴 '더러운 존재'로 간주됐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여성은 또 어떠한가.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남성에게 종속돼 자유의지 없이 살았다.

그러나 예수는 병자, 귀신 들린 자, 여성 등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예수가 첫 공생애3)를 보낸 가버나움Capernaum에는 예수의 기적이 가득하다. 예수 덕분에 소경은 눈을 뜨고 중풍 걸린 환자는 일어나 걸었다.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에게 도전하는 예수의 행보는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십자가를 들어야 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길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게 형을 받고 십자가를 짊어진 지점, 피땀으로 얼룩진 예수의 얼굴을 닦아 준 베로니카를 기념하는 장소 등을 하나씩 훑고 지나면 마지막으로 예수가 사흘 후 부활했다는 무덤이 나온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어리석은 인간을 대신해 십자가를 졌다는 그는 내게 아름다운 진보주의자로 기억될 것이다.

3)공생애公生涯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가 30세경 공식적으로 활동한 기간을 일컫는다. 그는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하고,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는 시험을 받는다. 공생애 동안 첫 번째로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었다.

↑ 기독교인은 부활한 예수를 메시아라 생각한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야르데니트Yardenit

↑ 갈릴리의 가버나움에서 예수는 가난한 자를 위해 기적을 행했다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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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vs 영덕 ‘대게 싸움’…“살 많은게 원조라예” 가보고싶다...

[울진=글ㆍ사진 박동미 기자]"같은 바다에서 잡힌긴데 뭐가 다를라꼬? 원조가 어딨겠나, 굳이 따지자면 통통하고 맛 좋은 게 원조인기라."

울진 후포항의 한 횟집에서 영덕이냐, 울진이냐는 진부한 '대게' 토론이 또 시작되려는 찰나. 대게 찜 접시를 나르던 횟집 사장님이 '정답'을 알려줬다. 대게는 그저 '살 많은 게' 원조다. 2000년대 한류열풍을 주도한 드라마 '대장금'에서 울진 대게가 등장하면서, 영덕과 울진간의 '원조 대게' 싸움이 본격화됐다. 사실, 게는 같은 바다에서 잡힌다. 배가 영덕 강구항 등으로 들어가 위판되면 '영덕 대게' 이고, 울진 죽변ㆍ후포항으로 들어가면 '울진 대게'이다. 여전히 '대게' 하면 영덕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있지만 요즘엔 대게잡이 배가 울진에 더 많으니, 수적으로는 울진이 앞서고 있는 셈. 영덕 상인들도 울진까지 와서 게를 사갈 정도라고 한다. 같은 바다에서 잡힌 게들이 이산가족이 되어 다른 항구로 들어온다. 맛 역시 다를 이유가 없다. 그래도 울진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또 물을 게다. "어디가 원조예요?"

▶울진 대게축제…"게살 바르러 갑시다"

=음력 설이 지나면 대게 속살이 차오른다. 점점 맛이 난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하다. 그뿐이랴. 필수아미노산과 핵산이 풍부한 고단백ㆍ저칼로리 식품이다. 성장기 어린이부터 환자의 영양식까지 어디든지 환영받는다. 대게잡이 배는 보통 20㎞ 이상 떨어진 바다로 나간다. 수심 200~300m 지점에 서식하며 돌아다니기 때문에 우선 '감'으로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게 필수다.

서울 등 도심에서는 비싸서 못 먹고, 또 없어서도 못 먹는다. 4~5시간을 달려 울진까지 갔다면 대게를 실컷 먹는 게 남는 거다. 영덕이냐, 울진이냐는 토론은 대게 찜 접시가 나오자 사라졌다. 먹음직스러운 대게 앞에서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대게도 쇠고기처럼 부위별로 맛이 다르다. 어떤 이는 다리살을, 어떤이는 몸통살을 좋아한다.





음력 설이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대게 철이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울진 대게들이 입맛을 자극한다.

매일 오전 8시에는 죽변항과 후포항에서는 대게 위판장이 열린다. 수십만 마리 대게들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위판장에 깔린다. 행여 다리 하나라도 잘못 밟을까 구경꾼들은 조심한다. "저쪽 게는 빼라"는 경매사의 외침에 바닷가 여인들은 "이것까지 빼면 남는 게 뭐 있나" 더 큰소리로 응수한다. 아낙네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10마리씩 겹치고, 좌우로 다시 10줄씩 정렬한다. 옆집 위판이 빨리 끝나야, 우리집도 위판을 한다. 시간이 오래되면 게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위판장의 사람들은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서로 일을 돕는다.
울진에서는 오는 28일 '울진대게와 붉은 대게축제'를 개최한다. 메인 행사장은 울진 최남단 후포항 한마음 광장. 대게를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게 빨리 먹기, 게살 발라내기, 대형 게살 김밥만들기 등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대게보다 저렴한 붉은 대게는 주로 가공식품용으로 많이 판매되는데, 후포항 인근에는 붉은 대게 가공공장도 많다. 축제 때 이를 무료로 맛볼 수도 있다.

또 후포항 위판장에서 즐겁게 구경했던 대게 경매를 일반인들도 체험해 볼 수 있다. 3월 1일~3일 오전 11시 후포수협 위판장에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붉은 대게 특별경매전'이 열린다. (054)787-1331

관동팔경 감상하고 온천욕으로 피로 풀고…눈도 마음도 '호강'

=문어 위판도 볼만하다. 후포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구산항에서는 매일 오전 6시 문어 위판이 열린다. 어부들의 망을 빠져나온 문어들이 몸부림친다. 서두르면 다시 바다로 갈 수 있을까. 그러나 안착한 곳은 저울게 위. 구산리를 방문한 날 가장 비싸게 팔린 건 '사람도 잡아 먹을 것처럼' 컸던 울진 참문어. 무게가 20㎏에 육박해 경매가도 40만원을 넘겼다.

울진은 대게뿐만 아니라 문어도 유명하다. 대게 찜 요리를 해주는 횟집에서는 대부분 문어숙회도 판다. 입찰 중인 한 상인에게 어떤 게 '상품'이냐는 질문을 했더니 "다리 8개가 다 있는것"이라는 '정답'이 돌아왔다. '울진 vs 영덕' 원조 싸움에 '살 많은 게 원조'라는 대답만큼이나 정직하다. 또 머리가 너무 흰 것보다는 거뭇거뭇한 게 싱싱한 녀석이라고 한다.





오전 8시, 울진 후포항의 풍경. 하루에도 수만~수십만 마리 대게가 이곳에서 위판된다.

대게 찜에 문어 숙회만 맛보고 돌아와도 울진여행은 보람차다. 하지만 '맛' 기행 못지않게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북동쪽 끝 나곡해수욕장부터 남동 거일리어촌체험마을(원조대게마을)까지, 동해안을 따라 울진 탐방이 가능하다.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찾는 죽변항은 예부터 그림 같은 풍광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곳에서도 대게 위판장이 열리는데, 남쪽의 후포항과 쌍벽을 이룰 만큼 아침마다 대게를 가득 실은 선박들로 활기를 띠는 곳이다. 또 죽변항에는 SBS드라마 '폭풍속으로'의 세트장이 마련돼 있다. 인근 대나무숲 산책로를 지나면 100년 동안 동해의 불을 밝힌 죽변등대(경상북도기념물 제 154호)도 볼 수 있다.

관동팔경(8개의 동해안 명승지)에 속해있는 망양정과 월송정도 울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망양정은 7번 국도를 따라 죽변항 아래로 20여분을 달리면 나온다. 월송정은 문어 위판이 열렸던 구산항 아래에 위치해 있다.

울진 북쪽 끝과 남쪽 끝에는 온천도 있다. 북면의 덕구온천은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온천으로, 1년 내내 섭씨 43도의 온천수가 솟구쳐 나온다. 중탄산나트륨이 함유된 알칼리성으로, 수질도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신라시대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온정면의 백암온천은 갖가지 화학성분이 들어있는 방사능천으로 신경통, 피부병, 위장병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 내력으로 들어간다면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신선계곡과 불영계곡도 둘러보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첩첩산중이 끝없이 이어진다. '울다지쳐 울진' 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도.





울진에 가면 대게 찝 외에도 문어 숙회와 물회를 꼭 맛보아야 한다. 구산리에서 새벽 6시부터 문어 위판이 시작된다. 33가지 재료가 들어가 매콤달콤한 '슬러시 물회'.

◇울진 가는 길


*자가운전:중앙고속도로 풍기ICㆍ영주IC → 36번 국도 → 울진 → 후포항 한마음광장, 동해고속도로 동해IC → 7번 국도 → 울진 → 후포항 한마음광장, 대구포항고속도로 포항IC → 7번 국도 → 후포항 한마음광장



주제 : 여가/생활/IT >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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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더 향기로운건 커피 때문이다 가보고싶다...

강릉 바다를 더 향기롭게 만드는 게 커피다.

강릉 바닷가의 풍경을 쫓아 헌화로에서 아들바위까지 북상하다 보면 커피향이 흐르는 작은 해변들을 지나게 된다. 지금은 강릉항으로 불리는 경포대 바로 아래 안목항. 강릉 커피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강릉 안목항 '커피 해변'에 자리한 '엘빈'의 2층 테라스. 따스한 커피를 마시며 동해바다와 백사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다

일명 '커피해변'으로 불리는 안목항에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커피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한적한 바닷가였던 이곳은 10여년 전 여러 배합의 커피를 내놓는 커피 자판기가 늘어서며 강릉의 명소가 됐다. 한때는 커피 자판기가 100여대에 달했으나,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대신 원두를 직접 볶고(로스팅), 뜨거운 물을 내려서 커피를 만드는 드립 커피점이 많이 생겼다.

프랜차이즈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커피 장인'들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다. 커피커퍼, 산토리니, 엘빈 등이 이 해변에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안목 해변의 커피 전문점은 대부분 2층 야외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이곳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놓고 바다와 백사장을 바라다볼 수 있다.





왕산면 '커피뮤지엄'에서 선보이는 핸드 드립 커피.

주문진항 바로 아래인 연곡해변도 커피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연곡해변에는 드립 커피점으로 명성이 자자한 카페 '보헤미안'이 있다. 강릉이 지금 같은 '커피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커피명장 박이추씨가 운영하는 가게다. 재일교포인 그는 1980년대 한국에 커피를 필터에 내리는 드립 커피를 처음 소개하기 시작한 1세대 바리스타다. 1988년 서울 혜화동에 커피솝을 열고 바리스타 일을 시작한 그는 2000년 강릉으로 내려와 '보헤미안'을 열고 제자를 양성했다.

박씨가 강릉에 올 무렵 다른 장인들도 이곳으로 몰려들며 강릉은 전국 최고의 커피명소가 됐다. 인구 22만명의 중소도시인 강릉에 현재 커피 전문점이 300여 곳이며, 이들 매장이 창출하는 연간 부가가치는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왕산면 '커피뮤지엄'의 로스팅 기계.

안목항에서 시작한 '커피커퍼(cupper)'는 왕산면의 외진 산골에 커피농장도 차렸다. 온실 속 농장에서 국내 최초로 상업용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 박물관인 '커피뮤지엄'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은 다양한 커피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로스팅에서부터 분쇄·추출에 이르기까지 커피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핸드 드립 추출법과 터키 커피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커피공장을 갖춘 '테라로사'도 빠트릴 수 없는 커피 명소이며, 명주동의 '봉봉방앗간'과 커피 전문서적을 읽을 수 있는 그 옆의 '명주사랑채'도 들러볼 만하다.





하슬라 아트월드의 야외 전시물.

정동진에서 들렀던 '하슬라 아트 월드'도 커피 명소로 꼽힌다. 하슬라는 '해와 밝음'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로, 삼국시대에 강릉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야외 조각공원과 미술관으로 꾸며진 예술공간이지만, 이곳 주인이 박이추씨에게 배운 커피맛도 뛰어나다. 정동진 바다와 그 옆을 흐르는 해안도로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도 갖추고 있다.

겨울 바다와 커피는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차가운 백사장을 걷고 나서 마시면 향긋한 커피의 온기가 순식간에 온몸에 퍼진다. 마주 앉는 이와의 대화도 한층 더 정겹고 따스해진다.

강릉=글·사진 박창억 기자daniel@segye.com

서울에서 자동차로 출발할 때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나들목이나 옥계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정동진역까지 가는 기차는 오전 7시10분부터 오후 11시15분까지 운행한다. 경포해변 주변에 호텔·리조트가 많지만, 일출을 감상하려면 정동진역이나 모래시계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게 좋다. 심곡항·금진항에는 민박집이 몇 곳 있다. 강릉역 근처 '성원식당'(646-0219)은 곰치국이 일품이며, 사천면 사천진 포구의 '진보수산'(644-1712)은 물회로 유명하다. 정동진박물관 입장료는 성인 5000원. 하슬라 아트월드 644-9411, 보헤미안 662-5365(연곡점)·646-5365(경포대점), 커피뮤지엄 655-6644, 테라로사 648-2760, 봉봉방앗간 070-8237-1155, 명주사랑채 640-4807, 엘빈 65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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