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딧세이

부제목이 없습니다.



  • today
  • 2
  • total
  • 58971
  • 답글
  • 460
  • 스크랩
  • 399

블로그 구독하기



<역발상의 기술>중에서 독서메모

*어떤 영리한 투자가가 초기 2기통 엔진의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자동차가 시속 15마일의 속도로 한바탕 신나게 달리고 난 뒤 그는 그 기계가 어떻게 그렇게 달릴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가솔린 덕분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즉시 스탠더드 오일 사의 주식을 엄청나게 사들였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사가 가솔린을 계속 판매하면서 앞으로도 사업을 지속할 테지만, 초기의 많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중도에 낙오될 것임을 알았다. 그는 이렇게 자동차를 두고 무엇이 잘못될지 걱정하는 대신 무엇이 좋을지 생각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10년을 무사히 보내고 싶다면-그리고 인생을 만족스럽게 향유하고 싶다면-고통을 줄이고 행복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문제에 대해 "무엇이 좋을까"라고 묻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사고방식 전체를 바꿀수 있다.

 

*일단 신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으면 부조리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성은 그 곳에 도달할 수없다. 오로지 시간만이 신념을 헤칠 수 있다. ..........개인은 군중의 일부를 이루자마자 자신의 힘을 이루고 있던 정신적 능력의 대부분을 상실한다. ...어쨌든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전제에서 집단의 전제로 바뀐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집단의 전제가 개인의 전제보다 덜 가혹하다고 할 만한 이유는 없다. 사실을 보자면 그 반대가 옳은게 틀림없다. ......사회적 대변화는 언제나 위로부터 일어났으며, 아래에서부터 일어나지는 않았다.

 

*주식을 굴리는 일만큼 힘든 일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주식으로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말로 돈을 버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원래부터 돈을 버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1.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돈을 버는 재주가 있다. 이런 재주는 정말로 타고 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재주가 없다면 아예 싹 다 잊어버리기 바란다. 내 생각에 세상에는 돈을 버는 머리와 그렇지 않은 머리가 있는 것같다. 2.한가지 더 말하자면 다양한 인간적 특징이 별 노력없이 부자가 되는 유쾌한 길을 막고있다. 공포 희망 탐욕 소망적 사고 등의 감정적 약점을 말하는 것이다.

 

*군중은 옳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면 언제나 틀린다. 이 말은 약간 빈정대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좀 온건한 어조로 얘기하자면 군중은 추세의 종점에서 틀리며 추세가 진행중일 때는 대개 옳다.

대중은 추세를 떠받든다. 주식시장이 하락세일 때보다는 상승세일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추세를 떠받든다. 예컨대 주가가 하락하면 대중은 금세 기가 꺽인다. 하락세가 계속되면 대중이 매도세가 커진다. 마침내 바닥 근처에서 '모든 희망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주식을 투매한다. 하지만 이때는 사실 매물을 사들여야 할 적기다.

누군가는 이 예를 보고 사람들과 반대로 행동한다는 간단한 공식을 만들면 쉽게 돈을 긁어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인간적 특성들을 잘 다루어야 한다. 인간으로서 지니는 특성들은 끈덕진 방해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에서의 게임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조급함이다.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top


역발상의 법칙의 단점에 대해 독서메모

역발상 법칙의 중요한 단점에 대해 말해보자.<중략> 어떤 경제추세에 대해 사전에 어떤 시각을 갖고 있으면 단순히 확증을 위해 역발상적 사고에 기대는 경우가 흔하다. 정신적으로 대단히 훈련이 잘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내린 결론을 입증하기 위해 역발상적 사고들을 왜곡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지지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가 경제 예측을 하고 조언을 할 때 자기 사견대로만 한다면, 그는 객관적인 평가나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든 객관적인 조언을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누구든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비개인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중략>

다른 사람들의 예측과 조언, 편견에 대해 다룬 글들은 무수히 많지만 거기에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따라서 여러분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종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최고의 조언자는 자기 자신이며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한다.

<역발상의 기술, 험프리 닐, 이레미디어>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top


파레토의 법칙 독서메모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는 파리에서 이탈리아인으로 태어난 뛰어난 엔지니어였다. 그가 발견한 '소득분포'는 파레토의 법칙으로 알려지게되었고, 이 법칙을 표현한 그래프는 파레토 곡선으로 알려지게되었다.

칼 스나이더에 따르면 파레토의 법칙은 이런 것이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차지할 수록, 많은 소득을 차지한 사람의 수는 더 많아지며, 소득이 감소하면 이처럼 감소한 소득을 받는 사람의 수는 매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증가한다."

파레토의 법칙에서 중요한 기본개념은 부유한 계층이 가장 많은 나라는 또한 모든 인구의 생활수준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교해 생각해보면, 이 개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게다가 상위 집단의 수입이 오랫동안 감소하면 바닥까지 이르는 모든 집단의 수입이 감소한다. 고소득 집단의 규모축소가 그 아래 집단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고 말하는게 맞을 것이다.

일반적인 복지는 많아진 부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많아진 빵부스러기에서 비롯된다. 식탁을 치우고 모든 사람이 함께 여물통에서 식사를 한다고 복지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역발상이 기술. 험프리 닐. 이레미디어>



주제 : 증권 > 주식

▲top


밤으로의 긴여로 독서메모

 

**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자신을 잃고

마는거야./p72

 

**

길지 않으리/다우슨

 

길지 않으리, 울음과 웃음.

사랑과 욕정과 증오는.

우리. 죽음의 문 지나고 나면

그것들, 우리에게 더는 없으리니.

 

길지 않으리. 술과 장미의 시절도.

어느 어렴풋한 꿈에서

우리의 길 잠시 나타났다, 이내

어느 꿈속에서 닫히리니.

 

**

전 안개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거죠.

이동네 다른 집들도요.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요.

저 항구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땅 위에 있는

느낌조차 없어졌어요.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익사한 것처럼.

유령속의 유령이 되어있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세상에 인생을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생은 고르곤

셋을 합쳐놓은 것과같아요.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 버린다는 그 괴물들 말예요.

 

**

취하라/보들레르

 

늘 취해 있어라. 다른 건 상관없다. 그것만이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눌러 땅바닥에 짓이기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거든 쉼 없이 취하라.

무엇에 취하냐고?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마음대로. 그저 취해있어라.

그러다 이따금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가 풀밭에서나, 그대 방의 적막한 고독 속에서

깨어나 취기가 반쯤 혹은 싹 가셨거든 바람에게나, 물결에게나, 별에게나

새에게나,  시계에게나, 그 무엇이든 날아가거나, 탄식하거나, 흔들리거나,

노래하거나, 말하는 것에게 물어보라. 지금 무엇을 할 시간인지 그러면 바람은,

물결은, 별은, 새는, 시계는 대답하리라. '취할 시간이다! 취하라. 시간의 고통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거든 쉼없이 취하라! 술에든, 시에든, 미덕에든, 그대 원하는 것에.'

 

**

시나라/다우슨

 

밤새 내 가슴 위에서 그녀의 따뜻한 가슴이 고동

치는 것을 느꼈네.

밤새 내 품에서 그녀는 사랑과 잠에 취해 누워

있었네.

돈으로 산 그녀의 붉은 입술의 키스는 정녕

달콤했지만

잠에서 깨어 먼동이 트는 것을 보자

난 쓸쓸했고 옛사랑이 그리웠네.

시나라여! 나 그대에게 충실했네, 내 방식대로.

 

**

전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었어야 했어요.

갈매기나 물고기였4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예요.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된거죠!

 

**

시인의 소질이라고요! 아뇨, 유감스럽게도 전 노상 담배 구걸이나 하는

인간들과 다를 게 없어요. 그런 인간들은 소질조차도 없죠. 그냥 습관만 든거지.

방금도 아버지께 하고싶은 말은 따로 있었는데 그 근처에도 못갔어요.

그냥 더듬거린 것 뿐이에요. 전 기껏해야 그 짓이나 하고 살겠죠. 살아남는다면 말예요.

그래도 최소한 충실한 사실주의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말 더듬기는 우리 안개인간들에겐 타고는 웅변술이니까요.

 

밤으로의 긴 여로/유진 오닐/민음사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top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1/프로이트 독서메모

제3장 농담의 경향성

 

농담은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어서 특별한 의도에 사용되지 않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그것은 <경향성>을 갖는 농담이 된다.

특정한 의도를 갖는 농담만이 그것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위를 거스르는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테오도르 피셔는 경향성을 갖지 않은 농담을 <추상적> 농담이라 불렀지만,

나는 그것을 <악의없는> 농담이라고 부르고 싶다 /p122

 

농담의 본질을 이론적으로 조명하는데 경향적 농담보다 악의없는 농담이,

심오한 농담보다는 내용없는 농담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악의도 없고 내용도 없는 언어농담은 농담의 문제를 우리에게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줄 것이다./p126.

 

나는 우리가 어떤 의도에 대한 고려없이 무엇을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기관을 필요불가결한 욕구충족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이 쾌락을

목표로 작업하게끔 하며, 그 고유한 행위에서 쾌락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것이 모든 미적 표상작용에 깔려있는 조건이라고 추측되지만, 이를 주장하기에는

나는 미학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그러나 나는 이미 얻은 두가지 통찰에 기초해

농담이란 정신적 과정-지적과정과 그밖의 과정-에서 쾌락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위라고 주장할 수 있다. /p129.

 

악의없는 농담이 자아내는 쾌락의 효과는 대부분 온건한 것이다. 주로 뚜렷한

만족감, 가벼운 미소가 청취자들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의 전부이다.

 

농담 자체가 목적이 아닐 때, 즉 악의없는 것이 아닐 때 그것은 단 두가지의

경향성에 이용되며, 이 두의도는 하나의 관점에서 통합될 수 있다. 즉 그것은

공격이자 풍자, 방어를 위한 <적의있는> 농담이거나 노출을 위한 <외설적>농담이다.

/p130.

 

음담패설은 성적인 자극을 주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겨냥하며, 그 사람은 음담패설을

들음으로써 음담패설을 하는 사람의 흥분을 깨닫게 되어 스스로도 성적으로 흥분된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흥분 대신에 수치심이나 낭패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적 흥분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흥분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일 뿐이다.

음담패설은 원래 여성을 겨냥하며, 유혹의 시도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만 있는 자리에서 어떤 남성이 음담패설을 하거나 듣는데 만족할 때,

여기에는 사회적 장애 때문에 현실화될 수 없는 원초적 상황이 더불어 상상되고

있는 것이다.음담패설을 듣고 웃는 사람은 성적인 공격을 보는 관객처럼 웃는다.

 

음담패설은 그것이 겨냥하는 이성을 발가벗기는 것과 거의 같다. 음담패설은 외설적인

말을 통해 공격받는 사람에게 해당 신체부위나 행위를 생각하도록 강요하면서,

공격자 자신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적 노출을 보는 즐거움이

음담패설의 원초적 동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131

 

여성이 빨리 그런 자세를 취하기를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방어적으로 반응할

경우에는 다르다. 이 경우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말은 음담패설로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성행위로 발전하는 것이 저지된 성적 공격은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면서,

여성에게 그것을 드러냈다는 사실에서 쾌락을 끌어낸다. 이때 성적 공격은 장애물에

마주친 모든 리비도적 흥분이 그러는 것처럼, 그 성격을 바꾸게 된다. 그것은 노골적인 적의를 띤 잔인한 것이 되며, 장애물에 맞서기 위해 성적 충동의 사디즘적인 요소에 호소한다.

 

음담패설의 일차적 조건은 여성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여성의 완강함은 단지 유예를 의미할 뿐 더 이상의 노력으로도 전망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 여성이 그런 저항을 행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경우는 다른 남자, 제삼자가 같은 자리에 있을 때이다. 이때 여성이 곧바로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제삼자는 음담패설의 전개에 가장 큰

의미를 갖게 된다. /p133.

 

이렇게 해서 음담패설이 노리는 계층은 점차 여성대신에 관중 청중이 된다.

음담패설은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미 농담의 특징에 접근한다.

 

경향적 농담은 일반적으로 제삼자를 필요로 한다. 농담을 하는 사람 외에도

적대적이고 성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는 사람, 그리고 쾌락의 생성이라는 농담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제삼자. 

 

음담패설에서의 세사람도 똑같은 관계에 놓여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욕구충족이 여성 때문에 저지되고 있다는 느끼는 인물의 리비도적

충동이 상대방에게 적대적 의도를 드러내면서, 당초에는 훼방꾼이었던 제삼자에게

자신의 동지가 되도록 촉구한다. 음담패설적인 언사로 인해 여성은 제삼자앞에서

발가벗겨지고, 청중으로서의 제삼자는 이제 별 비용들이지 않고 자신의 리비도를

충족시키면서 매수되는 것이다. /p134

 

우리는 문화와 높은 수준의 교육이 억압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심리적 상태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유전적 소질에서도

기인할 수 있는 이 변화 때문에 다른 때는 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 받아들일

수없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모든 심리적 힘을 동원해 부정된다. 원초적인 향유의

가능성이 문화의 억압작용 때문에 이제 우리 내부의 검열에 의해 배척되면서

상실되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심성에서 전면적인 포기란 아주 어려운 것이어서,

경향적 농담은 이 포기를 취소하고 상실된 것을 다시 획득할 수단을 제공하고

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세련된 음담패설의 농담을 듣고 웃을 때,

우리는 조야한 음담패설에서 농부를 웃겼던 것과 똑같은 내용에 대해 웃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경우에 농담은 같은 원천에서 나오지만, 우리는 조야한 음담패설에

대해 웃을 수 없을 것이며, 그에대해 부끄러워하거나 역겹게 느낄 것이다.

농담의 도움을 빌어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것이다./p136

 

이제 우리는 농담이 <적대적인> 의도에 대해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인지

연구하려 한다.  처음부터 우리는 똑같은 조건에 부딛치게 된다. 이웃에 대해

적대적인 충동은 성적 충동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유년기나 인류문화의 유년기에서도

똑같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그에대한 억압은 계속 발전되어 왔다.

 

유년기에는 여전히 적대적 성향이 강하지만, 더 높은 인격문화는 우리에게 욕설을

하는 것이 품위에 어긋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p137

 

 

투쟁 자체가 여전히 허용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싸움의 수단으로 사용해서 안되는

것들의 수요는 엄청나게 증가 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유지에 관심을 두는 상관없는

제삼자의 방해로 인해서 적대성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이래로,

우리는 성적 공격성과 아주 비슷하게 새로운 비방의 기술을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기술은 제삼자 역시 우리의 적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적을 하찮고 저열하며 경멸스러운 인물,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만듦으로서 적을 이겼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즐기게 되며,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제삼자는 그 웃음을 통해 그 즐거움을 입증해 준다.

 

이제 우리는 적대적 공격에서 농담이 수행하는 역할을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농담은 우리가 반대되는 장애물 때문에 큰 소리로 떠들거나 의식적으로 말해서는

안되는 적의 우스꽝스러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제약들을

피하면서, 닫혀졌던 쾌락의 원천들을 개방하게>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농담은

쾌락 획득을 미끼로 청취자가 엄격한 검토없이 우리편을 들도록 매수한다. /p138

 

비방이나 모욕적인 말대꾸가 외부의 상황때문에 저지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어서,

경향적 농담은 권위를 내세우는 높은 지위의 사람을 공격하거나 비판할 때 아주

특별히 선호된다. 이 때 농담은 권위에 대한 거부, 권위의 압력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p140

 

우리는 생명의 단축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에 결속시키고,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아주 긴밀하게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구가 내세우는 주장을 부당하게 충족시켜서도 안되며, 그것을 충족되지 않은

채로 놔두어야 한다.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이 계속 지속될 때 비로소 사회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개인적 욕구들이

그런 방식으로 유예되거나 다른데로 이전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최종적인 해결책이란 없다.

 

냉소적 농담의 공격대상이 되는 제도 중에서 결혼만큼 도덕적 지침의 완강한 보호를 받는

중요한 제도,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공격받는 제도도 없다. 대부분의 냉소적

농담은 결혼제도를 겨냥하고 있다. 성적 자유에 대한 요구만큼 은밀한 요구도 없을

뿐더러 문화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성의 영역에서 강력한 억압을 행사하려고 시도해

왔다. /p147

 

나는 이제까지 다룬 경향적 농담의 종류들, 즉 노출 혹은 외설적인 농담, 공격적(적대적인)

농담, 냉소적(비판적, 신성모독적) 농담에 네번째 부류이자 가장 드문 새로운 농담을

보태고 싶다. 그것의 성격은 다음과 같은 훌륭한 예를 통해 해명될 수 있다.

 

두 유대인이 갈리치아 역의 열차에서 만난다. 한사람이 묻는다.

<어디가니?>

<크라카우>

다른 한 사람이 벌컥 화를 낸다.

<이런 거짓말쟁이가 있나! 넌 크라카우에 간다고 말하면서 네가 렘베르크에 간다고

내가 믿기를 원하겠지. 하지만 난 네가 실제로는 크라카우에 간다는 걸 안다고.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는거야?>

 

두번째 사람은 자신의 실제 여행 목적지인 크라카우에 간다고 말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첫번째 상대방의 반박되지 않은 주장에

따르면 그의 상대방은 진실을 말할 때 거짓말을 한다. 그는 진실을 거짓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농담의 더 진지한 형태는 진리의 조건에 대한 물음이다.

이 농담은 다시 하나의 문제를 지시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개념의

불확실성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그 진술이

듣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해되는가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이때 그것은

진리인가?...그런 농담들이 공격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나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자체, 우리의 사변적 재산의 확실성이다. <회의적 농담>이라는 명칭이

그에 대한 적절한 이름일 것이다. /p153-154.

 



주제 : 개인 > 일기/일상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