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속철이 생기면서 엄하게 통일호 열차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 날이군요.
    이미 오래 전에 통일호 열차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비둘기호의 전신인
    보통열차와 관련된 詩 한편으로 청춘의 연 그 만남의 장을 마무리 합니다.
 

    

 
 
           ☆ 중앙선 보통 열차 ☆
 

           중앙선 보통 열차
           맞아, 공화국이 몇번인가 바뀌고
           시간을 공간으로 단축하는 지금.
           열등한 인간들만 타는 듯 분위기의
           삼등 열차란 이름 보다야
           그럭 저럭 보통 사람들
           위안이나 삼으라고.
 
           중앙선 보통 열차는
           산과 강과, 마을과 생활과, 울고 웃는 삶
           삶들을
           종횡 좌표로 축척하는 지도처럼
           평행선으로 배열하여 딱딱한 자리 위에
           셋씩, 셋씩, 넷씩 얼굴들을 흩어 놓았는데
           간혹가다 모르는 척, 두 얼굴도.
 
           중앙선 보통 열차를 타면서
           나는 묘한 버릇들을 가지기 사작했는데
           그건 이런 거야.
           저기 창문을 내다보고 있는
           세살쯤 되었을까, 반짝이는 호기심에서
           나의 백지를 펼치었던 기억
           이젠 복잡한 선들로 가득차 버리고.
 
           중앙선 보통 열차를 탈 때마다
           나는 나의 모습들을 찾는 버릇으로
           여기저기 얼굴들을 살펴보게 되는 거야.
           현재의 나의 일그러진 표정들도 있고
           과거의 추억들
           그리고 미래의 다양한 가능태.
           앞에도 뒤에도 나로 꽉 메우고 말아.
 
           중앙선 보통 열차를 탔는데, 오늘도
           묘한 버릇이 또 발동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겨 버렸어,
           어디서도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거야.
           앞에도, 뒤에도, 옆에 까지, 아니 창문 밖 산과 들과 하늘에 까지
           얼굴, 얼굴, 얼굴들로 모든 것이 눈을 깜박이고, 깔깔대며 웃고
           내가 앉은 옆자리를 비집고, 앉았던 그 자리마저
           앗아 앉은 너라는 계집 때문에.
                                                 198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