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쇠 고리 ☆
 
 
           그대가 준 열쇠 고리에
           잘그랑 잘그랑 하나, 둘, 셋.
           나의 열쇠들이 꿰어 있다, 서랍을 잠그고 때로 열고 하는.
 
           첫 번째 열쇠로 나의 책상을 열어 본다.
           거기,
           다 써버린 필기구 껍질의 과거
           중단된 언어의 한 획
           생활의 자질구레한 소음 각종.
  
           두 번째 열쇠는 나의 머리 속 사념을 열어
           흐트러진
           인생 공식의 산만함.
           플라톤에서 성큼성큼 현대 그리고
           어젯밤 포장마차에서 삶을 짓 씹고 있던 친구 녀석의 그것까지
           역사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있는 笑話(소화)들
           잊혔다 생각났다 하는 주변의 여러 이름.
           거기,
           규칙없는 신경의 조합으로 한 껏 널려서.
 
           또 하나 열쇠의 속삭임
           어느 문을 열까?
           여기저기 아무데도 없는
           어려운 기억들을 떠듬떠듬
           열려라! 열려라!
           조그만 문의 방항음 삐그덕.
           두려움의 한 발자욱이 호기심의 문틈으로 찍혀질 때
           어디서 많이 본듯도 한 풍경.
           그치만 미지의 우주에 내 팽겨쳐진 원자의 설레임같은
           망설임과 신비를 안고 한 발자국.
 
           탐색의 시선을 조명하듯
           시의 한 구절 한 구절.
           책의 어떤 갈피에 끼여있던 꿈.
           빗방울이 늦가을의 낙엽에 투영했던 이야기들
           갈망과의 갈등 그리고
           상자 하나.
           팻말 속에는
           [판도라의 상자]
           역사 속에 감춰진 것을 찾았을 때의 전율을 잠그고.
           열어 보고 싶다.
           무엇, 무엇,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열쇠 고리에는, 열쇠 고리에는
           하나, 둘, 셋.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는 소리 잘그랑 잘그랑 꿰어.
           행복이 미처 빠져 나오기도 전에
           닫혔다는 신화가 팻말 속에서
           나의 기대를 꼭꼭 잠그고 있을 때
           희롱하듯 열쇠 고리는 
           마지막이란 언어를 잘그랑 잘그랑 꿰어 웃다.
                     1982.11.10,  1982.11.20 새벽2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