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픔 ☆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이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
           바로 내가 느끼는 슬픔.

 
           거목 그루터기에서 나눈 찻잔의 온기,
           가슴에 와 닿는 따스한 여운.
           소중한 우리들의 역사를 한장 한장 넘기며,
           간간이 주고 받은 이야기들.

           빛과 낙엽과 불꽃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간직할 소중한,
           나에게의 충고.

           당신이 밤새워 접은 시험지 한 모퉁이가
           뚝뚝 떨어지는 눈물로 젖어드는 것을 보며,
           강한 듯하면서도 무척이나 연약한 마음을 읽은 것.

           장미 한송이를 불현듯 당신의 생각으로 꺽은 후
           혹시나 한 잎 한 잎 입김에 불어 날릴까 보아,
           내 심상이 하얗게 빼어 물릴까 해서, 또는
           내 넋의 불꽃이 연기로 사그러들까 해서 
           건네주기 망설였던 가로.

           가로를 걸으며 항상 느꼈던 슬픔,
           이제 한 모퉁이를 돌면 안녕이란 가느다란 음성이 떨리는 그 곳.
           더 이상 올라갈 수 없기에 되돌아 내려와야만 하는 현실의 장벽.

           이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 감정과 사색을 둘러친
           우리 추억의 편린들, 그리고
           한 줄에 꿰인 구슬처럼 내 가슴에 흐르는 비애.

 
           당신의
           가장 소박한 현실도 될 수 없다는 것.
           바로 내가 느끼는......
                                           1982.10.31  


                      [이룰 수 없는 사랑(엄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