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림을 하나 보도록 하자. 아래의 그림은 달러/원 환율과 종합주가지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림 1>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주가가 하락하고, 반대로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면 주가가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반적인 경제 이론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은 늘어나고 수입은 줄어들어 경제성장률이 상승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경제의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빠뜨린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달러/원 환율은 한국 경제의 ‘체온계’

달러/원 환율의 상승 국면에 주가가 하락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 번째는 한국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달러/원 환율이 한국 경제의 상황을 보여주는 일종의 ‘체온계’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에 돌아오긴 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그 이후의 주가 폭락 사태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기에 항상 한국 경제의 상황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국가신용등급이 A2 등급(Moody’s社 기준)까지 상승해, 19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신용등급 수준(A1)을 거의 회복하는 등 한국 경제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세계 금융시장의 역사를 살펴보면, 외국인이 한국 경제를 계속 주시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1970년부터 1999년 사이에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는 28개국에 이르며, 이들이 겪은 외환위기의 횟수는 무려 98차례에 이른다. 28개 나라 중에는 아르헨티나 등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핀란드(1973년, 1982년, 1991년, 1992년)와 덴마크(1971년, 1973년, 1979년, 1993년) 등 선진국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한국을 제외하면, 28개 나라 모두 첫 번째 외환위기 이후 평균 3~5년 뒤에 두 번째 외환위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¹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국을 그냥 ‘선진국’으로 봐줄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이미 한국 주식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이라 가정하고, 한국 경제를 관찰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살펴볼까. 경제성장률 등의 다양한 경제지표가 있긴 하지만, 그러한 지표는 공통적으로 발표의 ‘주기’ 문제를 지니고 있어 경제의 현재 상황을 신속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결국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러/원 환율이 경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물가가 안정되고 경상수지가 잘 관리되고 있는 경제의 통화가치는 상승할 것이며, 반대로 물가가 불안하며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나라의 통화가치는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보유하고 있는 우리 주식의 달러 환산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일단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처럼,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에 문제가 생길 때 달러/원 환율이 이유 없이 오르기 시작하면 일단 먼저 행동한 후에 생각하게 될 것이다. 즉 이른바 양떼행동이 시작되는 것이다.²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원화와 주식을 팔아 두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양떼행동이 항상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금융시장에 생긴 사소한 문제가 항상 ‘양떼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투자자는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도, 또 그렇게 단기적으로 행동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투자자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일제히 자금을 인출한 1980~83년과 1997~2002년, 그리고 2007~2008년의 공통된 특징은 세계 경제 가 심각한 불황에 접어들었을 때다. 그렇다면, 왜 선진국의 불황이 개발도상국에서의 자금 인출로 연결되는가.

그 이유는 선진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개발도상국 경제도 곧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되어 더 안전한 자산(예를 들어 ‘달러 표시 국채’)으로 이동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설명과는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인출 사태로 인해 개발도상국 경제가 더 큰 충격을 받는다고 설명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로 달러/원 환율의 상승은 주식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투자자가 선진국 경기를 비관하고 달러 표시 자산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일 때, 달러/원 환율에 이상 징후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달러/원 환율의 상승으로 인한 득(수출 증가 및 수입 감소 효과)보다 선진국 경기의 둔화와 외국인 투자 자금의 회수로 인한 충격이 훨씬 더 커지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좋을 때 원화 강세 출현

결국 달러/원 환율의 상승은 금융시장 참가자에게 이중의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 내부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해외 경제의 여건이 나빠진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물가와 경상수지의 이상 징후는 금방 발견할 수 있지만, 해외 경제 여건의 악화는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달러/원 환율이 한 달 사이에 50원 이상 올랐는데, 경상수지나 물가 등 국내 경제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런 현상은 아마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서 출현했을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계절적인 외환 수급의 변화로 달러/원 환율이 변하는 경우다.

매년 4~5월에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는 현상이 반복되는데, 이는 외국인 투자자가 12월 결산법인의 배당금을 본국으로 송금한 데 따른 것이므로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달러/원 환율의 상승이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 등 핵심 경기변수의 악화 속에 나타났다면, 달러/원 환율의 상승 및 주가 하락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경제의 여건이 악화될 때 달러화에 대한 투자자의 선호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달러/원 환율은 한국 경제의 현재 상황과 세계 경제의 여건 변화를 측정하는 유용한 ‘체온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달러/원 환율의 이런 특성은 주식시장 참가자에게 앞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서 살펴본 것처럼, 달러/원 환율만 볼 것이 아니라 미국 ISM 제조업지수 등의 핵심 경제지표를 함께 살펴본다면 미래의 위험을 미리 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와 세계 주요국의 실질 정책 금리를 비교한 <그림 1>을 보면 미국과 유럽에 비해 한국의 실질 정책 금리 수준이 훨씬 낮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9월 말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상승해, 미국(-1.5%)이나 유럽(-0.2%)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실질 정책 금리는 -0.2%로 화폐 가치의 안정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중앙은행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홍춘욱(KB국민은행 파생상품영업부 이코노미스트, cuhong@kbstar.co.kr) 일러스트 김상인






주 1 카민스키와 레인하르트(1999)의 논문 ‘2가지 위기: 은행 위기인가 경상수지 위기인가?’ 참조.
주 2 ‘양떼행동(Herd Behavior)’이란 양 떼의 움직임에서 딴 용어로, 다른 사람 모두 틀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중화된
        정보를 신뢰하고 독자적으로 수집한 개별 정보를 무시할 때 나타나는 집단 행동을 의미한다.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무시하고 대신 일반적인 정보에 따라 행동할 경우, 사람들 대부분이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대해 함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속한 집단은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없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그 집단의 정보의 질(Quality)이 떨어져 대중의
        행동에 따라 최악의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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