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지은이 ㅡ 류시화

잿빛 떡갈나무 꼭대기마다

불그스름하게 떠도는 불길

세상은 온통 아네모네로 파랗게 물들고

구름은 은빛에 취해 흘러간다.

입김이 흐를 때마다 가물거리는 별빛이

나무 꼭대기를 넘어 이끼에 떨어진다.

먼 곳에는 금빛이 어리는 듯도 싶어

네 눈에는 네 세계가 그렇게도 커 보인다.

그러나 너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춘다

깊숙한 숲 속이다 발목 아래 빽빽이 들어찬

어린 풀숲사이로 흉한 모습하나 나타난다.

기다랗게 코가 하나 자란다.

활기찬 풀숲을 뚫고

흡혈귀처럼 응시의 눈초리를 마구밀어 붙이는 줄기

이 새하얀 줄기에서 발톱이 돋아나 다시 누군가를...

-카로사 "체험" 중에서-

살며시 입 언저리에 모인 조락

숲에서 깊은 침묵이 흐른다.

이제 곧 유령처럼 한 마음이 가라앉으련다.

외로운 사람은 지금 목자가 되어

밤이 깃든 오솔길을 내려갈 게다.

거룩한 것 앞에 눈을 열며

가만히 나무그늘을 짐승이 기어 나온다.

파란 냇물이 곱게 흐르고

저녁 하늘에 구름이 한가한 시간

넋마저 천사의 침묵에 잠긴다.

무너져 내리는 무상한 영상.

-G.트라클의 "생명의 넋"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