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오늘은 벳부에서 오전관광과 유후인에서의 오후 관광으로 계획이 짜여 있다. 그래서 아침시간이 조금 넉넉하다. 느긋하게 올라간 식당은 10층. 오이타 홋케쪽이 하카다 홋케보다 식당이 나은 것 같다. 이것저것 나오는게 더 많은 쪽이 더 좋은 곳이라는 단순한 생각.

아침으로 주섬주섬 담은 것들. 낫토가 보인다.

테이블을 돌다 보니 낫토가 있다. 낫토... 쉽게 먹을 수 없다는 그 유명한 아이템이 아닌가. 뜯었더니 노란 콩이 수십개 들어 있었다. 첨부된 간장과 양념을 넣어서 휘적휘적 비볐더니 사진으로 보았던 끈끈한 실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나오키씨의 설명에 의하면 생계란 한알과 마요네즈를 첨부하는 쪽이 더 좋다고 했지만 그건 고수의 말이고. 일단은 기본으로 가보자라는 생각에 여기서 스톱. 한 수저 퍼서 입안에 넣었더니 미끈미끈한 것이 혀에 닿는 촉감이 영 아니다. 가까스로 한 통을 다 먹기는 했지만 맛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으윽... 다른 낫토는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들었지만 생콩도 아니고 잘 익은 콩도 아니고 미끈미끈 날콩의 느낌은 별로다.

그렇게 배부르게 아침을 먹으니 일단은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배부르고 등 따시면 그게 최고다.

벳부는 오이타에서 한 정거장. 우측 창가로 보이는 바다가 근사한 느낌이 들었다. 역에 내리니 바람이 휭휭, 날씨가 싸늘하다. 벳부에서의 여정은 다케가와라 온천에서의 모래찜질과 다케자키산의 원숭이 공원이다. 해달을 볼 수 있다는 마린 팰리스는 비싸서 제외했다. 해달은 보노보노로 충분하니까.

먼저 원숭이를 보러 가려고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 갔으나 바람이 더 세지고 약하게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춥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감기에 걸릴거라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온천으로 돌렸다. 아빠는 요리사에서도 나온 유명한 모래찜질의 온천.

이부스키보다는 못하지만 이부스키에 안가는 사람들은 여기서 하는 것도 추천한다는 이야기도 들은만큼 기대가 컸다. 고풍스러운 일옥(우리나라 가옥이면 韓屋이고 일본 가옥이니 日屋)이 눈에 띄여서 갔더니 죽와온천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쓰윽 들어가니 만화에서는 600엥이었는데 현실은 780엥이다.

다케가와라 온천 정문이다.

모래찜질장 내부. 내가 이날의 첫번째 손님이었다.

한글 휴일 안내. 카운터에도 한글로 된 주의사항이 있었다.

 돈을 내고 들어가니 아줌마급 할머니들이 계신다. 이미 창피함이라던가 이런 것은 초월한 몸. 옷을 벗고 타월 한장으로 가리고 내려가니 조그만 욕탕의 물로 몸에 먼저 뿌리란다. 물을 뿌리고 나니 적당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 누우라고 해서 누웠다. 모래를 온 몸에 덮어주는데 그냥 미지근했다.

좀 더 뜨거웠으면 좋을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일본인? 한국인? 한국인이라고 말했더니 "안녕카세요" 라고 말을 하신다. 그래서 "곤니찌와"라고 대답을 해드렸다. 뭐 어쨋거나 인사말이니까 상황에 맞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꾸 말을 거는데 발음이 어떠냐고 하시는 것 같아서 "카" 가 아니라 하히후헤호의 "헤"라고 말을 했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정확히 발음을 하신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다른 분에게 카가 아니라 하라는구만~ 이라고도 하신다. 또 말을 거시는데 일본어는 잘 하느냐, 여행 왔냐등등의 질문을 마구 하신다.

귀로 들리는 것은 어떻게 어떻게 들리지만 혀로 표현되는 것은 절반도 안된다. 할머니의 질문 공세에 그냥 씨익 웃어주면서 눈을 감았다. --V

한 십분쯤 됐을까? 시계를 가리키며 그만 하고 일어나란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어쩌랴. 일어나서 모래를 씻어내고 조그만 탕에 들어가 모래찜질 하는 다른 사람들 구경하다가 몸을 말려 다케가와라 온천을 나섰다. 오오. 해가 떴다. 바람도 줄고 눈보라도 안내린다. 원숭이님의 얼굴을 구경하라는 뜻이로구나!

포스가 느껴지는 원숭이님의 얼굴.

원숭이 무리 C 조의 보스다.

500엥을 내고 올라가자 입구에서부터 원숭이들이 뛰어 다닌다. 하하... 진짜 원숭이다. 원숭이 해에 진짜 원숭이들을 보니 좋구나. 새끼 원숭이부터 어른 원숭이까지 수십마리가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하가 털을 골라주며 놀고 있는 걸 가까이서 보니 꽤 즐거웠다. 그리고 일본에서 본 최고의 미인인 원숭이 공원의 안내원 아줌마. 말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므하하.

설명하며 자꾸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이거 밖에 건지지 못했다.

오이타로 돌아오니 유후인으로 가는 보통열차가 3분 후에 있단다. 잽싸게 타니 덜컹 덜컹 느릿느릿 간다. 졸다가 눈 뜨고 졸다가 눈 뜨고 하니 어느새 유후인. 여기가 그렇게 좋다는 온천휴양지라고? 일단 하카다행 6:30 열차의 지정석을 끊어놓고 길을 나섰다.

유후인 역을 나서면 시야를 집중시키는 유후다케

좌우로 쫘악 늘어서 있는 상점들, 중앙에는 듬직한 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일요일이라 그런지 차들로 도로는 꽉 막혀 있다. 배가 출출해서 둘러보니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1팩에 500엥. 서울랜드에서 1팩에 2000원짜리 맛없는 타코야키를 먹은 적이 있어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건 기대이상이었다. 크기도 훨씬 컸고 듬뿍 뿌린 양념소스에 또 듬뿍 얹어주는 가쯔오부시에 놀랐다. 그리고 한입 베어물자 입에 가득차는 그 맛..... 오사카에는 집집마다 타코야키 틀이 있다는데 오사카의 타코야키는 이것보다 맛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하지만 이정도로 유명한 먹을 것은 대개 그 맛이 비슷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한끼 식사로도 충분한 타코야키 8개를 먹어가며 밀리는 차 구경을 하며 금린호를 찾아갔다.

주위를 구경하면서 찾아간 금린호는 별 거 아닌 조그만 호수였다. 잉어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물은 맑았지만 깊어 보이지도 않았다) 왔다갔다 하는 오리 4마리가 제일 인기였다. 그리고 수면 위를 맴도는 아지랑이 비슷한 연기. 호수물을 만져보니 약간 미지근했다. 물이 미지근해서 그 온도차로 인해 수증기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인기 최고였던 오리 4형제. 금린호 주변이 모두 이 녀석들의 영토였다.

따로 놀던 1마리.

여기가 바로 시탄유. 수질은 단순온천수(그냥 뜨겁기만 하다는 소리다)

호수 주위를 반바퀴 도니 시탄유라는 간판이 보였다. 오호 여기가 그 노천탕이라는 시탄유! 입구에는 200엥이라는 요금통이 서 있었다. 요금 받는 사람도 없으니 돈을 안넣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정당하게 쓰자는 생각에 200엥을 넣고 들어가니 조그마한 욕탕이 가운데 있고 그 앞에 조그만 탕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조그만 탕이 바로 노천탕이다. 시탄유 옆에서 보면 안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보이고 시야를 가리도록 식재된 나무 사이로 관광객들이 보였다.

바람이 차면 물 속에 푸욱 담그고, 뜨거우면 나와서 몸 식히고 들어갔다 나왔다 이 탕 저 탕 왔다갔다 그렇게 이 곳에서 3시간 동안 놀았다. 사용료는 200엥이었지만 200엥 정도는 두번이라도 낼 수 있을만큼 기분좋게 온천을 했다. 일요일에 오후 3시간 동안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용했고 그 중에 주민인듯한 할아버지가 3명이고 나머지는 다 외부인이었으니(서양인 2명 포함) 평일에는 거의 시탄유를 쓰는 사람은 없는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평일에는 더 느긋하게 할 수 있다는게 아닌가. 한 겨울의 시탄유. 유후인의 시탄유는 정말 강력 추천이다.(여성분은 제외... 유후인의 다른 온천을 찾아보세요 ^^)

저 연기가 보이시는가.

그건 그렇고 처음 금린호를 볼 때 호수면 위에 연기가 휘익~ 바람에 날리는게 신기했는데 시탄유에 들어가있자니 시탄유 물이 호수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호수 위에 날리는 연기는 시탄유에서 목욕한 사람들의 목욕물에서 생긴 연기라는 소리다. 음하하. 목욕하고 나오니 "물이 따듯해!" 라던가 "재밌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나는 전혀 신기하지 않았다. 호수 물이 왜 따듯한 건지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약간 피곤했지만 호수를 한바퀴 돌고 길가에 서 있는 이런 저런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내려왔다.(고원 구경도 좋겠지만 온천에 너무 있었기에 패스했다...) 작고 예쁘장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게들을 보며 역시 이쁘게 꾸며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고양이가게나 강아지가게처럼 관광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을 보며 특화된 가게는 어디에서나 자생력을 가지는게 아닐까라고 느꼈다.

그리고 들어간 도토리 마을... 지브리의 물건들을 보면서 마구마구 지르고 싶은 마음이 물밀듯이 몰려 왔으나 가까스로 헤엄쳐 나왔다. 여기서 질렀으면 카드로 했어야 하는데 아마 타격이 매우 컸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지브리 스튜디오가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유혹을 뿌리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이도 이제 서른 중반인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뽐뿌를 느끼다니... 큰일이다.

뽐뿌에 시달렸던 도토리 마을의 커다란 네코버스와 토토로.

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녀석들. 이거 이외에도 지그소퍼즐도 강력한 적이었다.

원래 오늘은 숙박이 없는 날로 일정에는 야간열차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남큐슈로 가지 않는 나는 잘 곳이 필요하다. 미리 부탁드렸던 후쿠오카의 여행박사 쪽에 전화를 거니 김인태 지점장님께서 예약을 해놓았다고 말씀해 주신다. 약간의 지체 끝에 김지점장님을 만나 예약해 놓으신 클리오 호텔에 숙박을 했다.

오호... 튤립호텔에 비교할만한 크기다. 넓은 침대, 넓은 욕조. 역시 큰 방이 좋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옆에 있는 요도바시 카메라 쇼핑센타에 있는 회전초밥집에 가서 몇개 집어 먹었지만 폐점시간이 되어서인지 맛도 그다지 없었다. 쇼핑센타를 구경해보니 역시 최고의 프라모델은 건담이었다. 수많은 건담시리즈들. 예전같았으면 혹했겠지만 이제 모델러의 꿈은 접은 지 오래라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리고 구석에서 발견한 패왕의 알, 진홍의 베헤리트는 꽤 마음에 들어 하나 샀다. 조금 비싸긴 했지만 (1200엥) 열어보니 만족할만한 질감이다.

드디어 내일은 한국에 돌아가는 날이다. 시간은 오전 뿐. 무얼해야 가장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1월 10일. 오늘도 5시에 눈이 떠졌다. 알람시간까지 뒤척이다가 일어나 씻고 일정을 생각하다가 아침을 건너뛰고 구마모토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침밥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구마모토성과 스이젠지를 조금이나마 여유있게 볼 생각이었다. 시간표에 나온대로 6:44에 출발하는 SSL을 타고 하이키 역에 도착, 6:55에 하이키역을 출발하여 8:33에 토스역에서 아리아케를 타서 구마모토로 가는 계획이었다. 이렇게 하면 9:29에 구마모토에 도착 가능했다. 이 계획이라면 오후 1시에 아소로 가는 기차를 탈 때까지 4시간하고도 몇십분. 이정도면 택시 안타고 전차타고 다니면서 구마모토 관광이 가능했다.(택시비가 없다는 것이 이런 생각을 하게 한 원인이었다. 여행을 다닐 때에는 풍족하게 가지고 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무래도 많이 가지고 다니면 행복할거다.)

새벽의 하우스텐보스역. 약자로 HTB라고 하더라.

아침도 안먹고 가는 나를 전송하는 튤립호텔 직원에게 인사해주고 하우스텐보스역까지 걸어가서 열차 탑승, 6:50에 하이키역에 도착했다. 6:55에 하이키역을 출발하는 보통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있는 플랫폼에 열차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7:10에 역무원에게 물어봤지만 뭔 소린지 모르겠다. 시간표를 보자 7:28에 출발하는 미도리 4호를 타라고 말해준다. 그정도는 나도 안다구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6:55에 출발하는 열차가 왜 안왔냐는거라구요. 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다시 플랫폼으로 걸어갔다.

셀프로 찍으며 놀던 사진 중의 한장.

기다리는 시간동안 셀프타이머로 사진을 찍으며 놀다보니 건너편 0번 노리바에 미도리 열차가 들어왔다. 그리고 곧 내가 있는 4번 노리바에도 미도리 2호가 들어왔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열차를 타려던 차에 어째서 2번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탈 열차는 미도리 4호였다.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엉뚱한 승강장에서 왜 열차가 안오는거야! 라고 투덜거리고 있던 거였다.

시계를 보니 7:26. 방울소리 나게 뛰어 기관사에게 토스역에 가냐고 물어보니 간단다. 그러면서 특급열차인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큐슈레일패스를 보여주니 알았다면서 어서 타란다. 자리에 앉아마자 덜컹거리며 기차가 출발했다. 황당해서 숨이 가쁜 차에 옆에 있던 사람이 담배를 피워문다.

"이런 빌어먹을 놈이 감히 열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여기는 일본. 열차에 흡연차량이 따로 있는 나라다. 조용히 일어나서 금연차량으로 이동했다.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였다면 행복하게 담배를 피워물고 "일본은 좋은 나라야. 아직까지 흡연차량이 남아 있다니~~" 이러면서 일본 예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니 열차시각표를 잘못 읽고서는 엉뚱한 승강장에 서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아까 지나갔던 보통열차를 타야했던 것을 멍하니 그냥 보낸게 아닌가. 일찍 가려고 밥도 안먹었는데 잘못 보는 바람에 40분을 까먹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속을 썩여봤자 쓸모가 없는 법.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하우스텐보스여 담에 보자꾸나. 튤립호텔이여, 다음 번에는 꼭 아침을 먹어주마! 토스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한번 더 닭고기 우동을 먹어주고 열차를 탔다.

구마모토역에 도착한 것은 10:11. 전차를 타고 구마모토성 앞에 내려서 걸어 올라갔다. 가등청정의 흉상이 서 있는 곳을 지나자 튼튼해보이는 성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입장료 500엥을 내고 들어가자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계단이 몇개나 되는지 세다 보니 웅장해 보이는 천수각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도 춥지않아 땀이 약간 배었다.

               가등청정의 동상. 이 사람은 일본의 위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적국 장수...

                                      돌 하나 하나에 번호를 매긴 다음 복원공사를 하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보이는 천수각.

닌자 복장을 하고 있는 총각이 보여 사진을 찍자며 옆에 갔더니 차고 있던 칼을 뽑아 포즈를 취해준다. 이왕이면 나도 같이 포즈를 취했으면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겠지만 버튼 누르고 뛰어오니 어떤 포즈를 잡아야 하나라는 생각은 할 틈이 없다.

닌자와 함께. 왠지 기뉴특전대 포즈를 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천수각. 벚꽃이 피었을 때의 천수각 사진은 꽤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

성문 앞에 서 있는 병사 옷을 입은 소년들과 사진을 찍고 나오자 이미 시간이 11:30. 스이젠지까지 가려면 걸어 내려가서 전차도 타야하고 또 걸어야 하는데 열차시간까지는 1시간 30분 밖에 안남았다. 부지런히 내려가서 전차를 타고 가다가 스이젠지 코오엔 마에에서 하차했다.

윽... 내리고보니 또 잘못내렸다. 쿠마모토 성에 가는 전차역이 쿠마모토 성 앞(쿠마모토 죠 마에)이었는데 그게 머리에 남았는지 수전사공원(스이젠지 코오엔)에서 내려야 하는걸 스이젠지 코오엔 마에(수전사 공원 앞)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이미 시간은 12시. 다시 전차타고 가서 걷다가 구경하고 스이젠지 역까지 걸어오려면 돈은 돈대로 버리고 보는 것도 제대로 못볼 것이 뻔했다. 바보짓은 연타로 하게되는 것인지 오늘 아침부터 왜 이런다냐....

어쩔 수 없이 스이젠지 역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13:07에 탈 아소3호를 타기 위해서였다. 이왕 그른 것... 점심이나 여유있게 먹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까지 걸어가다 쿠마모토 명물이라는 카라시 렌콘(매운 연근 : 연근에 겨자를 넣어 살짝 튀긴 것으로 술안주로 좋다고 한다 - 아빠는 요리사에서는 연근에 명란젓을 채워 살짝 튀기는 것으로 변형이 되어 요리로 소개되었다)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 100~300엥으로 크기에 따라 구분되어 있었는데 아직 가게를 안열었다. 문 앞에서 어기적거리고 있었는데 옆 출입구에서 나온 아가씨가 나를 쳐다 보더니 물건 사실 거냐고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손님왔다고 벨을 눌러 사람을 불러주었는데 사람이 나올 때까지 5분정도 기다리다 인기척이 나서 쳐다보았더니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다. 웃으면서 문을 열어주길래 큼지막한 300엥짜리 렌콘을 샀다. 언제 다 먹지? 더구나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카라시 렌콘을 주머니에 넣고 역에 도착했다.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눈에 들어온 가게 하나. 모든 메뉴를 300엥에 드립니다라는 종이가 붙어 있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보통 한끼에 600 ~ 800엥인 것에 비하면 반값밖에 안되기에 부담없이 열고 들어가 중화덮밥과 탕수육을 시켰다. 맛은 평균 수준은 되었지만 역시 가격이 싼 만큼 양은 적었고 먹고나니 소비세는 별도였다. 그러면 그렇지. 싸고 푸짐하고 맛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

이윽고 스이젠지 역에 들어온 아소 3호. 덜컹거리며 아소역에 도착하자 시골마을이다.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인데 이정도면 심하잖아라고 생각했더니 실제로 관광객이 다니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되었단다. 그래도 그렇지. 아소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이건 역보다 더 심하다. 정말 관광객이 오기 시작한 것이 얼마 안되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구비구비 굽어진 도로를 따라 올라간 아소산 정상.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내려오기로 하고 표를 1장만 끊고 탔다.

이런거 타고 올라간다. 덜컹대고 안내양 아가씨는 뭐라고 종알종알 대는데 귀에 들리는 것은 일본어구나라는 것 뿐.

화산가스가 심해서 분화구는 보지 못했지만(실제로 분화구가 보이는 날은 몇일 안되고 아주 매우 엄청 무지하게 운이 좋은 사람만 가능하단다. 그리고 분화구까지 케이블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운이 좋은 쪽에 속한다고 한다) 그래도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 오르는 것을 보니 밑에 무언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이 연기를 헤치고 괴수가 나타났으면 했다. 피할 곳이 있냐고?

이런 벙커들이 여러개 있었다.

쿠워어어어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괴수라도 등장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특촬물에서나 나오는 거고, 남은 시간동안 화산분지 탐험에 나섰다. 바람이 불어 꽤 추웠지만 조그만 돌덩이들이 띄엄 띄엄 흩어져 있는 검은 색의 대지를 걷자니 마치 화성이라도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을 걸었다.

이 길의 끝에는 이런 돌탑이 있었다.

느긋하게 아소산 서역까지 걸어내려오니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일행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난로를 쬐고 있었다. 딸과 함께 여행을 왔다는 분들은 일주일짜리였다. 숙소도 오이타의 홋케호텔이었으니 벳부까지는 같이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남큐슈쪽으로 가신다고 했다. 나도 가고 싶은 남큐슈... 이브스키의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모래찜질을 하고 싶긴하지만 남쪽으로 갔다가는 아무리해도 경비가 모자르다.

그렇게 아소산을 탐험하고 내려오니 어둑어둑해졌다. 오늘의 잘 곳은 오이타의 홋케호텔. 오이타 명물이라는 닭고기 튀김 정식은 별로 특이하지 않았다. 다만 닭고기 튀김을 밥 반찬으로 먹는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을까?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불고기나 갈비찜 외에는 밥 반찬으로 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생각났다. 대부분 고기로 배를 채우고 나중에 입가심으로 밥이나 냉면을 먹으니 말이다.

오이타는 하카다보다 좀 더 남쪽지역이다 보니 제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이국적인 분위기였지만 이미 어두워진 상태다 보니 정확하게 무언지는 모르겠다. 홋케 호텔에 도착해서 들어가지 않고 호텔 주위를 한바퀴 돌다보니 왠일로 "놀다 가" 라는 아저씨들이나 "마사지 하고 가" 라는 언니도 있었지만 나는 가난한 여행객... 마사지 할 돈이 있으면 곱배기를 먹었을거야 언니! 라고 속으로만 대꾸해주고 이상한 생각 들기 전에 호텔로 들어가서 체크인. 구석에 마음대로 쓰세요라는 컴퓨터가 있길래 눌러봤더니 일본 윈도우 XP다. 한글지원이 안되긴 했지만 네이버에 들어갔더니 오.... NHN에서 50만원 수익이 나 있었다. (지금 이걸 쓰고 있는 시점은 다시 -30만원이다. 푸하하)

기쁜 마음에 아사히 캔맥주를 하나 뽑아 들고 올라갔다. 이번에 묵게 된 방의 전 투숙객은 흡연자였는지 방안에 담배냄새가 매캐하다. 창문 열고 가져간 향수 칙칙 뿌려놓고 씻고 나왔더니 살 만 하다. 샤워하며 빨은 세탁물 널어놓으니 다음부터는 꼭 금연실로 신청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와 함께 먹은 카라스 렌콘은 꽤 특이한 안주였지만 맥주 한 캔에 300엥짜리 연근 하나는 너무 많았다. 연근만 따로 집어먹었더니 코가 찡~~ 남은 것은 아쉽지만 쓰레기통으로 직행. 아빠는 요리사에 나온 쿠마모토의 고집쟁이들만 먹는다는 명란젓을 연근에 넣은 튀김은 따로 만들어 먹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셋째 날이 저물었다.

구마모토는 말고기 육회로 유명하다. 잡아먹은 말을 위한 위령비인 것 같다.

아소산 명물이라는 유황 파는 아저씨들. 물론 안 샀다. 라면을 한 그릇 더 먹고 말지.

1월 9일 오전 5시 30분.기상.

 아침형 인간을 실천하던 것이 일본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이럴때 한마디. 아침형 인간은 쭈욱 계속 되어야 한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반신욕을 했다. 땀을 내면서 다리를 주물렀더니 종아리가 약간 묵지근 하던 것이 풀렸다. 방을 치우고 짐을 싸고 오늘 하루의 일정을 조정했다. 다이자푸 텐만구 구경 후에 후츠카이치 시에서 온천, 그리고 나가사키로 가는 것으로 일정을 짰다.

아침식사는 만족스러웠다. 빵과 샐러드, 소시지, 토마토 쥬스등 이것저것 먹으면서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로 나오자마자 시커먼 가래가 나왔다. 하카다 공기가 깨끗하게 느껴졌지만 실제로 그렇게 깨끗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하지만 어제 서울 거리를 이정도로 돌아다녔다면 한번 뱉고 끝날 일이 아니었을게다.

하카다역에 도착 후 역무원에게 물어 후츠카이치시역(二日市驛)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오전 8시 18분 출발 오무타행이다. 다자이푸에 가는 길은 하카다역에서 JR을 타고 후츠카이치시의 니시테츠(西鐵)역에서 갈아타는 것과 니시테츠 후쿠오카 역에서 사철을 타고 바로 가는 길 2개였지만 나는 갈아타는 쪽을 택했다. 홋케호텔에서 니시테츠 후쿠오카 역까지 걸어가는 거나 후츠카이치역에서 니시테츠역까지 걸어가는 거나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JR 후츠카이치역에서 내린 다음 편의점 앞에서 껄렁하게 있던 동네 양아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촌스러운 것이 분명할 청년들이 있길래 길을 물었다. 쭈욱 내려가다가 기차길이 나오면 따라서 가라고 말해준다. 10분정도 한적한 중소도시를 느끼면서 길을 걸었더니 니시테츠 역이 보였다. 사철은 KRP가 사용이 안되므로 표를 끊어야 했는데 어디다 돈을 넣어야 되는지 몰라 역무원에게 갔더니 따라나와 친절하게 알려줬다. 무사히 다자이푸역에 도착.

이것이 바로 다자이푸 텐만구의 정체다. 원숭이도 기도하면 합격시켜주는 영험한 신사!

 다닥다닥 붙어있는 가게들을 보면서 올라갔다. 우리나라 명승지에 있는 토산품가게와 비슷했지만 뭔가 달랐다. 아마도 조금 고풍스럽고 깔끔해 보여서일까? 특산품인지 밀가루로 찐빵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었다. 이미 아침을 두둑히 먹고 나왔으니 그냥 쳐다만 보고 만다. 먹으면 맛있을텐데. 식도락의 여행이라는 것도 배가 고파야 먹을 수 있다는 한계를 깨달았다.

도리이를 지나 소동상을 봤다. 머리를 만지면 똑똑해진다는데 이거야말로 어디를 만지면 애가 생긴다는 속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그냥 지나쳤다. 텐만구에 들어가는 구름다리 앞에서 고양이 한마리가 털을 고르고 있었다. 하얗고 까만게 꼭 예전에 기르던 놈 같아서 만져봤더니 의외로 애교가 많다. 안고서 일본에 와서 처음 만난 고양이 기념으로 한 방 꾸욱.

텐만구 경내에 들어가자 무녀(라기보다는 매점 아가씨 느낌의) 아가씨도 보고 사진도 찍었다. 이왕이면 같이 찍고 싶었지만 왠지 물건파는 주술력을 빼앗는 것이 될 것 같아 그건 넘어갔다. 보통 사람들은 밖에서 동전 던지고 기도를 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는 사람들은 제관에게 직접 말해서 비는 것 같았지만 나야 알 바 아니다. 신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 아니지 않은가.

선뜻 찍게 허락한 무녀 아가씨. 하는 일은 부적등의 무구를 파는 매점 아가씨?

신사 참배객들, 우리나라 사람들도 꽤 많이 기도하고 간다고 한다.

신사에 꼭 있는 신목들. 기본이 천년수령이라고 적혀 있어서 부러웠다.

어쨋든 경내를 한번 쭈욱 돌아보고 텐만구의 주인인 스가하라노 미치자네공의 일생을 하카다 인형으로 만들어 전시했다는 인형관에 들어갔다. 텐만구에 가셨으나 미처 인형관에 들어가지 않은 분들도 많으실텐데 후쿠오카 웰컴카드를 쓰시면 150엥으로 입장. 150엥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전시관이었다.

1. 어릴 때부터 남달라서 5세에 매화의 노래를 지어 불렀고 11세에 시를 지었다.

2. 어머니는 아들이 공부잘하도록 매일 관음보살에게 기도.

3. 소시적부터 궁술을 배워 26세에 백발백중의 궁사로 이름을 드높였다.

4. 33세에 문장박사가 되어 나라에 학문의 기반을 세웠다.

5. 39세에 명외교관이 되어 외국에서 사신이 왔을 때 시를 지어 사신을 감동시켰다.

6. 42세에 시코쿠에 발령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7. 56세에 궁중 시대회에서 우승하다.

8. 57세에 다자이푸로 귀양.

9. 유배 3년, 59세에 사망. 시신을 안락사(安樂寺)로 옮기던 중 시신을 운구하던 소가 멈춰 움직이지 않아 현재의 자리에 태재부 천만궁을 지음.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위인과 그다지 차이나는 것이 없다. 이쪽은 신으로 추앙받지만 우리쪽은 보통 사람이라는 것 뿐?

인형관을 구경하고 나오자 우리말이 왁자지껄하게 들렸다. 세계청소년봉사회인가 하는 단체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견학 와 있었다. 조용하던 경내가 일시에 떠들석하게 변했다. 시끄러워진 경내를 벗어나 구석으로 나오니 신사 부설 유치원이 있었다. 반바지에 반치마,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 것을 생각하더라도 대단해 보였다. 하긴 일본은 일부러 겨울에도 반바지와 반치마를 입힌다고 하던가? 역시 애들은 멀리서 쳐다보는 것만으로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고묘젠지로 발길을 돌리다가 다시 역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회 도중에 신사를 향해 기도하는 유치원생들.

전철을 타고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에 도착 다시 JR 후츠카이치역으로 걸어갔다. 역에 다다르니 온천은 차로 10분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그럼 걸어가야지. 열심히 걷다보니 고젠유(御前湯)과 하카다유(博多湯)이 나왔다. 하카다유는 100엥이라 조금 쌌지만 이왕이면 후츠카이치시의 재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 200엥인 고젠유로 들어갔다. 오호... 많이 왔다가는구나... 한글로 된 가격표며 욕탕에 들어가자 금연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표지판도 보였다.(금연 밑에 조그맣게 no smoking 이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코인락카도 10엥이라 싸서 좋았고 탕에 들어가 더운 물에 몸을 담그니 어허 좋다. 남탕 밖에 조그마한 정원 비슷한 것이 있어 찬 공기로 몸을 식힐 수 있어서 이 또한 좋았다.

고젠유

하카다유

큐슈온젠무라에는 가보지 못했지만(노천탕이 있다지만 500엥이라고 하니 이쪽이 더 좋을지도) 이쪽 온천을 택한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들어갔다 나왔다 1시간을 했을까 고젠유를 나와 나가사키로 가기 위해 역으로 돌아갔다. 미도리 창구로 들어가 여기서 나가사키를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토스역에 가서 나가사키행 카고메로 갈아타면 된다고 한다. 열차를 타서 나가사키에 가서 무얼 볼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와 토스에끼데스"라는 말이 들려 후다닥 내렸는데 토스역 전 역에 내렸다. 생각해보니 쯔기와를 못들은 것이다. 다음 열차를 타서 토스역에 도착해보니 나가사키행 카고메는 1시간에 1대씩 다니고 있었다. 1시간을 손해 본 셈이다.

이왕 늦어버린 것 아빠는 요리사에서 맛있다고 나왔던 토스역의 6번 노리바의 닭고기 우동을 먹기로 했다. 마침 내린 곳이 5~6번 노리바여서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이 곳의 우동은 모두 닭고기 우동을 베이스로 했기 때문에 무엇을 먹어도 닭고기가 들어 있었다. 새우튀김 우동을 시켰는데 새우튀김은 별로였지만 짭짤한 우동국물은 맛있었다. 그리고 이 가게에는 고추가루통이 옆에 놓여 있었다. 팍! 팍! 팍! 뿌렸더니 더욱 맛있는 우동이 되었다. (참고로 토스역은 6번, 기타큐슈의 고쿠라역은 8번이 맛있다고 나온다. 고쿠라역은 가지 않아서 못 먹어봤다)

토스역의 6번 플랫폼에 있는 우동가게

닭고기 우동. 가격은 290엥.

이러구러 시간을 보내던 중에 하얀 카고메가 도착했다. 자유석을 갔더니 자리가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뭐라 그러면 미안하다고 하자고 마음먹고 지정석으로 갔다. 나가사키 까지 가는 동안 깨우는 사람 없이 잘 자면서 갔다. 운이 좋았을까? 다른 열차 지정석을 타면 꼭 표검사를 하던데? 중간에 이사하야역에서 서길래 내려서 운젠지옥을 볼까 마음 먹었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서 포기하고 그냥 나가사키로 직행했다. 미도리 창구에 가서 버벅거리고 있으니 역무원 아가씨가 하우스텐보스행 열차시간표가 적힌 종이를 준다. 아이고 이뻐라. 활기차게 인사를 해주고 나와 시계를 보니 4시다. 시간이 없으니 원폭자료관과 평화공원만 보기로 하고 전차를 탔다. 서양관쪽으로 가면 빨리 갈 수 있는 것을 표지판 따라 빙 돌아 올라갔다. 원폭 자료관에서 우라카미 성당의 모조품과 원자폭탄 팻맨을 몰래 찍고 나와 그라운드 제로, 평화공원을 구경했다.

원폭자료관에 있는 우라카미 성당의 부조품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된 원자폭탄 Fat Man.

평화공원의 기념동상이 의외로 커서 놀랬다. 아마 조그마한 동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조금씩 내리던 비가 조금 굵어졌고 이미 어둑해졌기 때문에 부랴부랴 내려와서 저녁을 먹으러 시안바시(사안교) 쪽으로 가는 전차에 몸을 실었다. 물론 나가사키 명물이라는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역시 아빠는 요리사에서 소개된 천천유(天天有)라는 가게를 찾아서였다.

여기가 바로 천천유.

가게는 조그마했고 벽에 짬뽕, 볶음밥, 중화덮밥 등과 함께 교자를 먹으면 1000엥이라는 메뉴가 붙어 있기에 짬뽕+교자를 선택했다. 교자만두는 실망(기름이 줄줄 흘렀다...)했지만 짬뽕은 담백한게 먹을 만 했다. 우동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꽤 많이 틀렸다.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묘하게 고소한 맛이 남았다. 참기름 맛일까? 국물까지 쭈욱 마셔주고 나가사키 역으로 돌아와 하우스텐보스행 열차를 탔다. 파란색 보통열차 sea side liner 약칭 ssl을 타고 1시간.

하우스텐보스역에 도착해 다시 창구로 가서 구마모토행 시간표를 얻은 다음 튤립호텔까지 걸어갔다. 오늘 꽤 많이 걷는구나. 체크인하고 올라가보니 오! 홋케호텔보다 방도 넓고 욕조도 넓다! 자판기로 가서 기린맥주를 한 캔 사서 목욕하면서 마셨다. 아사히 맥주보다 맛있는 느낌이다. 내 입맛이 특이한 걸까?

 일본어로 더빙된 아마겟돈을 보면서 내일의 일정을 짜고 더블침대에 누으니 왠지 서러웠다. 하우스텐보스도 일부러 뺐으니 다음에는 하우스텐보스를 보면서 침대를 같이 써야겠다는 욕망이 불끈 불끈 솟아올랐다. 무하하하. 이렇게 둘째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