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내집에 들렀다

촉촉히 내리는 봄비는

누런 하늘의 먼지를 말갛게 씻겨 주기라도 할 듯

쉼없이  흘러 내리고

일요일 문화센터를 다녀온 남편과 딸아이는 피곤 한지

저 마다의 휴식 방법을 찿는다

남편은 침대에서

딸아이는 TV가 있는 작은 방에서

나는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모처럼  저마다 시간을 갖게 됨이 얼마나 기쁜지.....

시간 재촉의 선수인 남편은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우리를 재촉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급기야   화까지 내면서

쯧쯧

저건  못 고칠 것 같네

내가 이해하고 넘어 가야지 하고 참으며  오히려 편하다

돌아와서는 조금 미안해 하는 남편을 보고 좋아하는 비빔국수로 접심을 차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화지 한 장이 펼쳐져 있다.

어쩌면 저리도 고운지   감히  붓을 댈수가 없을 것 같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가슴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인 물소리는  뺨을 따라 흐른다,

부끄럽게 살아 온 지난 시간들이  숨을 곳을 찿느라 우왕좌왕 난리를 부린다,

숨으면 뭐해,   

도망치지 못한  옷자락이 문틈에 끼여 있는걸...

괜히 숨었나 보다,

 나올때  더 부끄러울것 같다.

이따,

모두 돌아가고 나면  그때 나갈까?

 "엄마!   왜 남자어른들은  이마에 줄 무늬가 있어요?"

   처음엔    무슨 얘긴지 몰랐다. 뭐라고?

 창밖을 보던 내가 얼른 시선을 거두고 인희를 쳐다 보았다.

 "아빠도 이마에 줄무늬가 있잖아"

 "아~  그건 생각을 많이 하면 주름이 생기는 거란다"

 "아하 그렇구나, 엄마 저도 생각을 많이 했더니 주름이 생겼어요.

 손바닥만한 얼굴을 내민다,

 운전하던 남편이 뒤를 돌아 보며 웃는다.

 경사길로 접어들며 남편이 핸들을 꺽자

 몸이 한쪽으로 쏠린 인희가 소리친다.

"아빠는 우리 아기 다치면 안된다면서  자기가 왜 그래?'

 남편과 나는 서로 쳐다 보았다.

 이제 다 키웠구나. 할 말도 다하고 싶은게 대견 하다.

 며칠 전에 강아지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 예삐가 쉬를 했어요" 하길래

"으응 그럼 잠지 닦아주었니? " 했더니

" 아니 예삐는 남자여서 아빠처럼 탈탈 털면 되거든요" 한다

 얼마나 웃었을까.  남편에게 얘기해 주니 앞으로 조심해야 겠다고 한다.

 거실에 신문이 널려 있어 인희가 뛰어 오다 넘어졌다.

 "괜찮니? 안 다쳐서?" 우리 부부가 놀라 쳐다보니

" 착한 요술 할머니의 도움으로 다행히 죽지는 않았어요" 한다.

 세상에~~~~~~

 오전에 읽어 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에 나오는 대목이다.

 책읽기는 워낙 좋아 하는 편이라 하루에 10권 남짓 책을 읽어 주는데

 표현력과 어휘력이 또래에 비해 남 달라서 기대반, 걱정반이다.

 어제는 '폼페이 마지막 날' 을 읽어 주었더니

 화산 폭발이 어떤 것이며 왜 폭발 하는지 궁금해 해서

 인터넷에서 화산 폭발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 주고

 블록을 높이 쌓고 그 밑에 집과 사람들을 종이와 모형으로 펼쳐 놓은 뒤

 산이 무너져 집과 사람 위를 덮어 모두가 깔린 상태를 설명해 주었더니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자기도 똑같이 블록을 쌓고 집과 사람을 세우고

 산을 무너 뜨리는 동작을 하고선

 " 그런데 왜 산에 불이 나?" 묻는다.

 "그건~  산이 화가 나서 그래"

  "왜 화가 나?"

 "엄마가 가스불에 냄비를 올려 놓으며

 나중에 물이 끓어 오르고 김이 나지?

 그 것 처럼 산도 뜨거운불위에 놓여서 화가 나는거야"

 설명이 잘 되었나 모르겠다.

 까만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꼭 책을 4-5권 정도는 읽어주는데

 어젯밤에는 '어린 왕자'를 읽어 달랜다.

  다 읽고 나서

 " 인희야 어린 왕자가 왜 슬퍼하니?"하고  물었다.

 " 응, 자기별에 장미꽃을 두고 와서 그래'

  "나도 내 별에 장미를 두고 와서 걱정이 돼" 한다

  책을 덮으며 아이를 안았다.

 내 강아지!
 

 이렇게 예쁜딸이 있어 행복한 10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