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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가는 길 호숫가 물수...

그를 우연히 알게 된 것을 사이버세상 어느 한 귀퉁이였다.
부산에서 고교와 대학을 나온 그는 배 만드는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육신의 배 채우는 일도 버겁다는 말을 했다.
조선회사에 다니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꽤 오래 전 사표를 던졌단다.
 
그는 35년 전 ‘공의 철학’이라는 반야심경 해제를 고등학교 독서실에서 만난다.
애초에 문과 지망생이었는데 부친의 강권으로 공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그저 졸업장 쥘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배 만드는 회사에서
늘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배를 짓고 그 배를 타곤 사념의 바다를 떠다녔다는 그.
그러다보니 잠을 자도 늘 멀미를 하듯 꿈자리조차 편할 리가 없다.
 
무슨 인연인지 서로가 마음 속 이야기도 간간이 나누다 보니 통하는 데가 있었다.
곤고한 삶에, 불현듯 맞이한 인생의 늦가을, 주체할 수 없이 뜬구름 같은 마음 등.
퇴직 후 하는 일마다 어려웠고, 돈도 수월찮게 날렸다는데 무엇보다 허허로운 건
늘 쫓기듯 살아야하는 현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부동산 사무소를 열었지만 요즘 같은 부동산 경기엔
월세 벌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인연 따라 지리산엘 간다기에 나도 가고 싶다고 했다.
줄기차게 내리는 가을장마를 뚫고 서울에서 자기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왔다.
구체적 행선지나 일정도 묻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그들의 구도 길에 하릴없는 구경꾼인 나는, 남이 나락 섬 지고 장에 가는데
거름지게 지고 따라나선 덜 떨어진 농사꾼과 진배없는 격이었다.  
 
새벽 세시의 법당 종소리가 마음을 후벼낸다.
크게 울리다가 점점 잦아지더니 다시 길게 꽝꽝 내지르는 소리가
심산 어둠과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흔든다.
지천명 중반의 두 사내는 환희심과 정갈한 마음으로 눈을 부비며 법당으로 들어선다.
여든이 목전인 노스님은 목을 구부정하게 숙여 눈처럼 소복이 앉아 종을 치시고 있다.
 
대세지보살을 본존으로 정면에 앉혀 놓고 죽비를 2번 치자 반배를 하고
한번 죽비에 일배를 올린다.
간결하다. 염불은 일절 없다.
그렇게 삼배를 하자마자 죽비를 가지런히 놓고 법복을 벗으시고 노스님은 바람처럼 법당을 나가신다.
발걸음 몸 사위 하나 하나가 그저 바람이다.
 
두 사내는 앞으로 남은 생애를 돈보다 도를 구하며 배우고 닦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하며 서로의 견해를 밤늦도록 주고받았었다.
한 사내가 말했다.
 
“도를 구하는 길은 고향 가는 길이다.”
 
다른 한 사내가 맞장구를 친다.
 
“고향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고 행복한 일이다.”
 
프린트한 경전을 내밀며 확인을 한다.
원각경, 능엄경, 화엄경.
 
가톨릭인 나는 멀뚱히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고향이라.......내게도 고향이 있었지.
문득 고향 다녀온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고향과 그들의 고향은 같은 하늘 아래일까 다른 하늘 아래일까.
 
노스님은 긴 대화중에 어찌 공부하고 당신이 어떻게 했노라 는 등의 말씀이 없으시다.
대중에 거의 드러내지 않고 육십년 가까이 참선수행만 하신 스님이
두 사내에겐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신다.
시절 인연이 동하였는지 우스갯소리도 하시며 파안대소 모습을 보니 그것이 법문으로 들린다.
 
법문에 관해서는 일절 구체적 말씀은 없다.
달을 가리키는 손 정도.
‘이 뭣고’ 화두 참선하고 살림살이를 부처님 사신 대로 살아라.......하신다.
어떻게 사셨는지 인터넷으로 한번 검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친구는 어려운 경전 토론도 한다.
‘무변허공 각소현발’이 마음에 부합이 되어야 한다는.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이란 무변허공에서 각이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라
무변허공이 각의 나타난 바라는 뜻이라고 한다.
 즉, 원이 그려지는 바탕의 세계와 원을 그리고 있는 작용의 주체가 바로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이다.

깨달음은 원이 아니며 원의 시작점도 아니고 원의 테두리도 끝 점도 아닌
바로 원을 있게끔 하는 바탕의 세계와 원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나'가 함을 아는 것을 말한다.
나에게는 뭐가 뭔지 어려운 말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앉아 있었다.
스님이 묻길래 열심이진 못하지만 내 종교를 말씀 드리자,  친구가 말하길
오르는 길만 다를 뿐 정상에서는 만나는 거 아니겠냐고 한다.
스님께서도 고개를 끄덕이신다.  
묵주와 염주의 차이가 성스러움과 열반이라면 결국은 그게 그거라는 뜻이리라. 
그렇지만 나는 그 정상 근처에 결코 오르지 못할 것이다.
 
노스님은 의외로 탈레반 납치 이야기, 박근혜 이명박 이야기, 학력위조 이야기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환하시다.
긴 시간 동안 한 사내는 법문을 들을 양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지만
스님은 날씨 이야기 등 일상사 이야기뿐이다.
간간히 성철스님 모시던 일, 이름 모를 선지식의 신통력, 원로회의 추대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신 일 등.
 
식사시간이 거의 한 시간이다.
세끼 공양을 스님과 하며 매 공양마다 두 시간 무설법의 법문을 듣는 두 사내는 마음이 점점 모아지는 듯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붓고 온 계곡 물소리가 천둥소리를 내는 깊은 산속에서
두 사내는 해우소 근처에서 담배를 피운다.
서로의 눈빛만 보며 ‘담배 맛 죽인다’ 로 소통을 하는 듯.
 
비구니가 여러 해 걸쳐 주해한 묘법연화경 두툼한 책을  스님이 손수 두 사내에게 내어 주신다.
두 사람은 법을 전수 받은 듯 황망해한다.
무욕과 절제 그리고 겸손이 그대로 풍겨 나온다.
 
공양주 보살이 몇 마디 건넨다.
여즉 속내의와 양말 등은 손수 빨고 방 청소 등 소소한 일은 노스님이 손수하신다고.
그리고 요새 절에 있는 스님들 새벽 예불 사시 예불 안하는 예가 허다한데
노스님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예불을 정성으로 드리신다고 한다.
 
상좌스님이 몇 분 있는데 그런 엄격히 절제된 생활에 못 견뎌 나가 산다고 한다.
오직 재가 불자 한분이 스님 곁을 지키고 계신다.
참선수행만 하고 생식하며 공부하는 양반인데 선지식과 도량을 찾아 대처를 떠돌다가
스님을 만나 십년 전부터 여기에서 공부를 한다고.
 
한 사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듯 말한다.
35년간 법을 내려놓지 아니하고 가까이 하려고 노력했지만 늘 빈손이라고.
다른 한 사내가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깨달음에 이르는 안개 속 같은 그 과정이 돌아보면 그 구비마다
그때그때 일천한 깨침이 도처에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고향 가는 길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다.
단박에 가는 돈오(頓悟)부터 한 장 한 장 스티커 모으듯 가는 점수(漸修)까지.
허나 자신의 근기에 따라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가면 될 뿐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 하는 아이들 장난 같은 말싸움은 빙긋이 바라보고 말 일. 
 
월요일 날 5천원 주고 산, 자동으로 번호가 찍힌 로또가 한 장 내 지갑에 들어있다.
인생역전.
내 고향의 그 돈오는 왜 이다지 통속적이고 세속적인가.
내 인생에도 역전의 그날이 올까.
돈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걸까.
아내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마음 비우고 꾸준히 모아가는 점수가 더 실속이 있지 싶다.
 
다음 날, 노스님께 하직인사를 여쭈니 손수 나오셔서 배웅을 하신다.
산문을 나서며 두 사내는 '마음이 산란하면 다시 오리라'는 말을 했다.
지리산 남쪽에는 삼신산 쌍계사, 가까이에 화엄사가 있고, 지리산 북쪽에는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 근처 삼정산에 영원사가 있고 그절엔 아직 깨닫지 못하셨다는 노스님이 계신다.
환하게 웃으며 헤어진 친구의 그날 밤 꿈자리가 평안하길 빌었다.
 
 


주제 : 문화/예술/오락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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