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의 음악 명가, 하겐 집안에는 어려서부터 똘똘했던 안젤리카•베로니카•루카스•클레멘스라는 4남매가 살고 있었다. ‘튼실한 아들 11명만 낳아 축구팀 만들고싶다’는 게 철없는 아버지의 바람이라면, 이 현악 4남매를 둔 아버지에게도 나름대로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바로 집안의 성을 딴 현악 4중주단을 만드는 것이다.

하겐 현악 4중주단(이하 하겐)이 본격적으로 프로페셔널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들 대부분이 10대 중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딸 안젤리카가 의약업계로의 ‘트레이드’를 희망했고, 아버지는 흔쾌히 딸의 선택을 따랐다(현재 제2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라이너 슈미트는 안젤리카 하겐, 바네트 비크에 이어 1987년 하겐에 합류했다). 1981년 기돈 크레머의 로켄하우스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 시작한 하겐은 이듬해인 1982년 현악 4중주계의 자웅을 가리는 포츠머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98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데뷔, 1985년 도이치 그리모폰과의 전속 계약서에 사인하는 초고속 성장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포츠머스 우승 당시 제1바이올린을 맡고 있던 루카스의 나이가 겨우 20세였다. 다른 사람들이 신체적인 키만 키울 시간에(솔직히 정신적인 성장은 서른이 넘어도 못 이루지 않는가!) 하겐은 몸뿐만 아니라 음악의 키도 성인에 근접하게 자라났다.
음반에서도 남보다 빠른 성과를 이뤄 냈다. 지금까지 하겐은 코다이•베버•하이든•볼프•야나체크•드뷔시•라벨•베베른•베토벤•슈만•브람스•바르토크•쇼스타코비치•모차르트•리게티(발매순)를 가지고 DG에서 총 23장의 음반을 내놓는데, 이 중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쇼스타코비치는 여러 번 중복해서 발매했고, 올해 5월엔 그마저도 성에 안 찼는지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전곡을 녹음해 7CD로 내놓는 기염을 토했다.

1997년 10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던 하겐 현악 4중주단이 9년 만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다(9월 23일 오후 7시 LG아트센터, 하이든 ‘The Rider’ Op.74-3, 쇼스타코비치 3번, 드보르자크 13번). 하겐의 실연을 오랫동안 볼 수 없었지만, 음반을 통해 만나 온 그들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다. ‘하겐’이란 이름을 꽤 오래전부터 들어 왔지만 그들은 언제나 젊었다. 마치 홍콩 영화 속의 임청하처럼, 하겐의 음악 행로는 어찌 이리도 한결같이 ‘팽팽’할까.
내한 공연을 앞두고 제2바이올리니스트 라이너 슈미트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그게 무엇이든) 구체적으로 ‘정의’ 내려지는 걸 무척이나 꺼려했다. 슈미트의 의중에 따라, 몽상가와의 대화 같았던 인터뷰를 키워드로 정리해 본다.

- 하겐의 쇼스타코비치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제가 영어로 말한 걸, 다시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조금이라도 오류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위험한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엔 침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의사소통과는 차원이 다른 무엇입니다. 상투적이고 도식적이고 유행에 따르는 ‘느낌’, 이런 개념 너머에 있는 것이죠. 그러니 마음과 귀를 열고 그냥 들으세요. 구성적으로만 따져 보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여느 유럽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쉬워요. 그러나 메시지만은 강하니까, 쇼스타코비치를 단순하게 판단하거나 시시하게 바라보지 마십시오. (가장 예전에 쇼스타코비치를 녹음한 게 2001년이고 최근이 2006년인데) 5년 동안 쇼스타코비치를 대하는 정신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좀 더 정화되고 구체화되긴 했죠. 아니, 적어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하겐의 침묵 올해 녹음한 쇼스타코비치 3번은 1946년에 쓰여졌고, 2001년 녹음한 11번은 1966년에 작곡됐습니다. 두 작품의 차이는 너무 커서, 그걸 모두 짚고 넘어가기엔 공간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동시에 그 차이는 너무 미묘해서, 역시 공간이 부족해요. 여기서 제가 몇 가지를 지적한다고 치면, 그것만 또 엄청 중요하게 부각되겠지요. 전 그런 상황이 두렵습니다. 마치 손전등을 건네듯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라고 특정한 의견을 내놓는 건 작품에도, 청중에게도 좋을 게 없습니다.

- 하겐의 태도

포츠머스에서 우승했던 1982년과 지금, 음악을 대하는 우리의 정신엔 변함이 없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음악은 삶의 반영이고 환상이며, 동시에 실질적인 예입니다. 인생의 응축이자 동시에 과장이지요. 무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통해 음악과 인생의 밀접함을 깨닫게 됐습니다. 제발 특정한 예를 들어 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 역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음악에 대한)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동이니까요. 사람들은 언제나 (한 음악이 작곡되고 연주되는) ‘과정’을 얘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써 버리죠. 그래요, 포츠머스 콩쿠르 이후 24년이나 지났네요. 그동안 배운 것도 많고 경험한 것도 많으니, 그냥 우리의 태도가 변했다고 칩시다!

- 하겐이 못 가 본 불모지

우리는 아주 큰 열정과 의욕으로 현대음악을 대합니다. 18~20세기와 끈끈한 관계를 가진 현악 4중주단으로 비쳐지고 싶어요. 이 시기의 작품 중에는 발굴해야 할 게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아직 손도 갖다 대지 못한 귀한 작품이 너무 많죠. 하나의 예술작품은 그 창조자의 손을 떠나자마자, 독립된 존재가 돼버려요. 그렇게 해방된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함에 따라 계속해서 쉬지 않고 제 의미를 찾아가죠.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간에, 우리가 현대음악을 발굴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입니다.

- 하겐 아닌 하겐

저 혼자 하겐 가문이 아니라서 섭섭하거나 좋았던 점을 말하라고요? 너무너무 사적인 질문이네요. 개인적으로 별로 관심 없는 얘깁니다. 우리 넷은 동등한 자세로 작품을 대합니다. 물론 멤버 4명 중 3명이 남매인 경우는 드물 테니, 우리가 여느 현악 4중주단과 다르다는 데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개인적으로 불만을 느낀 적은 없어요. 현악 4중주 안에선 모든 연주자가 동등한 하중을 갖습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것을 뒤로 미룰 수도 있어야 해요. 엄청난 집중과 심사숙고를 요구하기 때문이죠. 이건 모든 현악 4중주단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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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겐 콰르텟 / Hagen Quartet

루카스 하겐 / Lukas Hagen (violin)
라이너 슈미트 / Rainer Schmidt (violin)
베로니카 하겐 / Veronika Hagen (viola)
클레멘스 하겐 / Clemens Hagen (cello)

오스트리아 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된 하겐 콰르텟은 지난 10여 년 동안 균형잡힌 프로그래밍과 뛰어난 예술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겐 콰르텟이 선정하는 레퍼토리는 오랜 전통의 음악뿐 아니라, 동시대 음악에 대한 도전까지 그 범위가 포괄적이다.

오스트리아의 현악 전통이 숨쉬는 가족의 4명의 자제들-Lukas, Angelika, Veronika, Clemens-이 결성한 하겐 콰르텟은 서로의 열정을 공유하며 각각의 주제와 악장을 표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결정한다. 이들은 정통 사중주 연주 방식에 매우 개인적인 터치를 가미하는 해석을 함으로써, 멤버교체를 겪으면서도 오늘날의 예술적 지위와 앙상블의 정신(spirit)을 유지해 가고 있다.

하겐 콰르텟의 멤버들은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바젤과 하노버의 음악학교, 그리고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서의 음악공부를 기교와 예술성 발전의 중요한 기점이었다고 말한다. 테크닉과 실내악 기술을 연마하면서 하토 베이에를, 하인리히 쉬프, 월터 레빈과 같은 대가와 동료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의 만남은 음악적 비전을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록켄하우스 체임버 뮤직 페스티벌에 하겐 콰르텟을 초청하고 있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의 우정 또한 하겐 콰르텟의 성장에 지대한 영감을 주었다.

1981년 록켄하우스에서 하겐 콰르텟은 "심사위원상(Prize of the Jury)" 과 "관객상(Audience Prize)"을 동시에 수상하였으며, 이듬해 포츠머드 현악 사중주 콩쿠르 우승에 이어 위그모어 홀에서 런던 데뷔무대를 열었다. 이때가 하겐 콰르텟의 국제적인 명성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983년 에비앙, 보르도, 밴프에서의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더욱 그 명성을 높여갔다.

하겐 콰르텟은 창단 초기부터 모국인 오스트리아의 애정어린 관심을 받았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모차르트 위크(Mozart Woche)와 더불어 잘츠부르크에서의 정기적인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이 앙상블의 예술적인 성장이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엄청난 투어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하겐 콰르텟은 그들의 스승과 여전히 교우하고 있으며 의미있는 음색과 프레이징의 자신감 있는 구현에 집중하고 있다. 로켄하우스 실내악 축제 음반과 슈베르트 “숭어” 오중주 (안드라스 쉬프-피아노), 그리고 현재 이들이 전속으로 녹음활동을 하고 있는 DG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수많은 음반을 통해서 하겐 콰르텟의 욕심없이 매진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바흐에서 리게티, 루토슬라브스키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섭렵을 읽을 수 있다.

=====기타 음반 및 공연 리뷰=====

모차르트 현악사중주 K.499, 589 & 590 음반에 대해
"하겐 콰르텟만큼 경이로운 연주력으로 이 곡들을 녹음한 예가 없을 것이다. 하겐 연주자들의 합일된 인토네이션은 완전한 콘트롤과 비브라토의 조화에 더욱 고무되어 더 이상 진실될 수 없을 만큼 완벽하다. 일치된 리듬감은 흠잡을 데가 없으며, 꼼꼼히 살리는 멜로디와 균형이 잡혀있어 매우 깔끔한 프레이징을 보여준다. 어떤 것도 조금이라도 지나치지 않다. 완벽주의가 구현된 보기드문 아주 특별한 디스크." - 스트라드紙



베토벤 현악사중주 op.127/op.132 음반에 대해
"최근에 나온 경쟁 음반에 필적하는 사려깊은 연주..
하겐은 어떤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템포 및 거의 모든 마디에서 표현방식과 추구해야 할 음색 등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연주와 지극히 섬세한 디테일 구사를 통해 베토벤의 감정 세계로 듣는 이를 끌어들이는 방식이 이 연주의 중요한 특징이다. 하겐은 이 경이로운 음악에 대한 당신의 열정을 다시 부추겨 새롭게 타오르게 할 것이다." - 그라모폰紙

"경이로움과 정교함으로 가득한 하겐 콰르텟의 연주는 그 다이내믹과 정확성 그리고 민첩함에 넋을 잃게 된다. 소름 끼치도록 감격적인 만남!" - – 위그모어 홀 리싸이틀, 베토벤(인디펜던트紙)


"슈베르트의 G장조 사중주의 안단테가 이렇게 쓸쓸하고 공허하게 들린 적이 없다. 또한 가벼운(덧없는) 스케르조가 이렇게 쾌활하게 연주된 것을 마주친 적도 없다. 베토벤 사중주(op.95)는 부분간의 완벽한 밸런스로 설득력 있게 해석되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자들간의 보기드문 친밀한 교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 – 슈베르트 & 베토벤 음반리뷰 (텔레그래프紙)

►► 하겐 콰르텟에 대한 해외언론평

영국 BBC뮤직 매거진 6월호 “이달의 실내악 음반” 선정 – 에릭 레비(Erik Levi)

"이미 쇼스타코비치의 현악사중주 4번, 11번, 14번을 녹음한 바 있는 하겐 콰르텟은 이 레퍼토리에서 어떤 것도 당연시 하며 넘어가는 법이 없다. 레퍼토리의 모든 악장들은 그들의 상세한 해석의 범주 안으로 들어와 이 작품들에 대해 알려져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감정적, 구조적 시각을 도입하였다. 특히나 러시아의 실내악 앙상블의 그것과는 더군다나 다르다. 수없이 많은 세심한 디테일이 놀라우며, 전체적으로 따스하게 조율된 이 음반은 매우 신선하고 매력이 넘치는 쇼스타코비치의 대안이다."

"러시아식 전통이라기 보다는 정통 유럽식 사고하에서 쇼스타코비치의 걸작을 누구보다도 훌륭히 소화해낸 보다 객관적인 해석을 대하게 된 것은 매우 신선하다." - BBC뮤직 매거진

"음색과 프레이징의 견고한 조절 그리고 최상의 앙상블은 하겐 콰르텟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성격이지만, 감정의 과장이나 특별한 호소없이 개성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방식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모델을 제시한다." - – 쇼스타코비치 (가디언紙)

"꼼꼼하게 균형잡혀 있는 하겐의 하이든 현악 사중주 음반을 추천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는 op.74 no.3 사중주 연주에 있다. 이 곡은 하이든의 모든 실내악 곡들 가운데 가장 심오한 작품으로, 4명의 하겐 연주자들은 1악장에서 곡의 보기드문 독창성과, 2악장 라르고의 대담한 화성변화에 표현된 감정의 깊이, 그리고 피날레의 강도 높은 활기에 효과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 그라모폰紙

"하겐 콰르텟의 집중력과 전력을 다하는 연주, 이들의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개성은 진정 비범하다… 자신들의 연주에 대해 세세히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짚어내는 음표음표 마다 빨려 들어가고 있는 필자 자신을 발견했다." - – 에든버러 페스티벌 리뷰 (바르톡, 베토벤, 하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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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일정

일시    2006.9.23. 오후 7시

장소     LG아트센타

프로그램

하이든 현악사중주 op.74 no.3
Haydn String Quartet op.74 no.3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제3번, op.72
Shostakovich String Quartet No.3 in F Major, Op.72

드보르작 현악사중주 제13번, op.106
Dvorak String Quartet No.13 in G Major, Op.106

KBS 유정아의 가정 음악실 음악회티켓  신청 (S석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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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나는 눈이 멀었다

멀어서

비로소 그대가 보인다

그러나 사랑아

나도 죄를 짓고 싶다

바람 몰래 꽃잎 만나고 오듯

참 맑은 시냇물에 봄비 설레듯

-정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