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디자인한다 6] 40대 남정네 가계부

끈끈한 핏줄연대, 신호등 앞 보쌈 사건

불황의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음산한 공황의 바람 파고드는 골목길로 자본주의 개체들은

휘청거리는 걸음 재촉하며 숨고 있는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숭고한 작업인 삶을 멈출 수 없기에

견고한 의지를 다지며 살아야 하니.

그람시가 설파했던가요?

총탄 빗발치는 모진 세월 맞서려면 진지전을 펼치라고.

이 시대 진지전의 기초단위? 끈끈한 핏줄연대?

제 핏줄연대를 소개하면...

66년생 숫말(하늘), 72년생 암쥐(이슬)

99년생 수토끼(재욱), 07년생 수퇘지(재혁)

지난 초 여름 매화

아주 싱거운 이야기로 급 반전!

가계부에 요상한 이야기를 담고

섹시컨셉 댓글로 마실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남정네,

그와 굳건한 삶의 동맹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제 아내(이슬) 사이의

청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호작업(?) 이야기라오.

1.

94년 초, 서울 본사 생활에 변화를 주고자

지방으로 보내주지 않으면 사직한다고 땡깡을 부렸다.

내 뜻이 받아들여져 정착한 곳이 마산 지점이었다.

창원에 거처를 정하고 마산으로 출퇴근하는 생활.

바람끝에 늦겨울의 알싸한 기운이 남아있던 어느 날,

출근길 신호등에서 작업전사의 사슴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청춘의 가슴은 동물적 작업감각으로 쿵쾅거렸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전사는

스스로의 작업의식을 고양하기 위하여

작업시를 되뇌며 작업현장으로 나갔다.

(옛 사람의 권농가를 권작가로 살짜쿵 바꿈. 어험~)

침실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작업 나가는 아해는 상기 아니 세웠느냐↑

재 너머 머리 긴 여인을 언제 보쌈하려 하나니.

2.

어떻게 접점을 형성할까.

난, 상투적 표현이나 접근방식을 졸라 싫어한다.

심지어 아무리 옳은 얘기라도

상투적인 단어가 자주 나오면 잘 읽히지 않는다.

비록 의무감으로 읽지만.

암튼, 철저히 내 방식으로 그녀에게 접근하고 싶었다.

거사(?)지점은 그 신호등 앞.

드디어 결단의 순간이 왔다.
전사는 거침없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리곤 명함을 꺼내, 머뭇거리는 그녀의 손에 꼬옥 쥐어주며

(바리톤 중저음으로)  "겁먹지 마오. 인연이 되면 만나겠지요."  하곤

견고하게 돌아선 후 사무실로 향했다.


사흘 연속으로 같은 장소에서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목례를 보낸 후,
처음보다 경계의 눈초리가 풀어진 그녀에게

"이제 만남의 진도를 나가야 하지 않겠소?" 하며 대뜸 물었다.

'저...오늘이요?"

"어험~ 드디어 샤프해졌구먼요!"

본격적인 만남을 가진 지 2 달째 되던 날,

또 대뜸 물었다.

"나랑 어디까지 가고 싶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끝까지..."

손가락을 따악~튕기며 "오케바리! "


그리고

우린 2년 후에 혼인했다. (31세/ 25세)

3.

장롱파 남편에게 휴일이 좋은 이유?

난,

평일에 일어나면 각시를

이불에 돌~돌 말아 장롱에 넣어두고 출근한다.

왜?

누가 훔쳐갈까봐.

퇴근 후엔

행여 다칠세라 살포시 꺼낸다.

뇌쇄적 눈빛 한 방과 뜨거운 콧김을 쏘이면

각시는 서서히 깨어난다.

휴일엔 그리 안 해도 되니 졸라 좋다.

##### 작업시인의 이야기 속에 일부 마초적 표현(보쌈, 작업 등)은

그냥 너그러이 넘어가 주세요. 이렇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생뚱맞게 나오면 곧장 데이트 신청 들어가오. ==333

싱거운 얘기 그만 집어치우고

가계부로 갑시다.

[지출]

가계부 올린 후 예산 지키려고 가장 힘들었던 달,

예산틀 안에 내 몸이 구겨 넣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임.

명절이 끼인 달에 저축률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늘 이렇게 발악해야 하는가? 아공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