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지은 집

유난히 비가 많이 지나간 여름날이 생각난다. 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천장 여기저기에서 비가 스며들어 마루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낙숫물 소리를 연상케 했고, 천장에 커다란 물주머니가 처마 밑에 왕벌 집을 생각나게 했다. 여기저기 고인 물을 퍼내느라 며칠 밤잠을 설쳤다. 집을 지을 때 좀더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대충대충 외관만 생각하고 지은 부실공사에서 생긴 일이다.

집뿐 아니다. 건물도 주저앉고 다리도 허망하게 내려앉는다. 부실공사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하늘에서는 비와 눈이 그렇게 내려앉는다. 땅 위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말이다.

땅 위에 네 기둥의 뿌리를 내린 집이란 사람이 깃들어 행복을 꿈꾸며 사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안식하고 기운을 충전하고 삶의 힘을 얻으며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곳이다. 든든한 벽과 넓은 지붕을 의지해서 비바람과 폭설을 피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 집이라는 공간이다.

작은 집도 있고 큰 집도 있다. 튼튼한 집도 있고 부실한 집도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자연의 흐름과 순리에 맞지 않는 집도 있다. 사람을 모시고 사는 집도 있고 집을 모시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집 안에는 사람들의 삶을 돕는 물건들도 함께 산다.

이렇게 사람은 유형의 집에 깃들어 무형의 집을 또 한 채 짓고 산다. 바로 마음의 집이 그것이다. 마음의 집은 재료가 무엇일까? 좋은 재료는 사랑과 용서, 인내와 나눔, 노력, 성실, 베품, 고운 말씨, 웃는 얼굴, 배려, 하심…. 그러고 보니 좋은 재료가 참 많네. 부실한 재료를 살펴볼까? 욕심, 성냄, 어리석음, 질투, 게으름, 교만, 인색함, 거친 말씨, 부드럽지 못한 표정…. 이렇게 끝도 없네. 부실한 재료는 너무 많다.

그러나 마음의 집은 유형의 재료로 짓는 집과 다른 것이 있다. 우리가 깃들어 사는 유형의 집을 짓는데 한번 부실한 재료는 큰 화를 부른다. 분명 튼튼하고 좋은 것으로 대체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의 집을 짓는 데 부실하다고 생각되는 재료들은 한 생각을 바꾸면 모두가 더 건실하고 튼튼한 재료가 된다. 그 크기와 끝을 모르는 사람의 욕심은 나누고 베푸는 마음으로 채워질 수 있고, 성내는 마음은 인내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 또 게으름은 성실하고 부지런함으로 거듭날 수 있고, 교만심은 겸손함과 하심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보통 사람들의 삶은 지난 IMF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에 마주 서야 하는 사람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만은 가끔은 그래도 수행자라고 위로받고자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스님! 왜 이렇게 세상 살기가 힘이 들까요? 금생에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있어야 합니까. 화나고 원망스럽고 세상 살기가 싫습니다.”
나는 그저 들을 뿐이다. 그런 마음에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저 그 힘든 마음을 터놓고 말할 상대가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끓어오르는 마음이 한풀 꺾였을 때 나는 긴 편지를 쓴다. 그저 잠시 자신하고 인연되어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것들에 감사하자고, 이미 내 손을 벗어난 것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직도 내 인연 안에 있는 것들에 감사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위해 그동안 소원했던 마음의 집을 튼튼하게 지어보자고 말이다.

그렇다. 잘 지어진 집에 비나 바람이 새어들지 않듯이 웃는 얼굴과 고운 말씨로 벽을 만들고 성실과 노력으로 든든한 기둥을 삼고, 겸손과 인내로 따뜻한 바닥을 삼고, 베품과 나눔으로 창문을 널찍하게 내고, 지혜와 사랑으로 마음의 지붕을 잘 이은 사람은 어떤 번뇌나 어려움도 그 마음에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한정되고 유한한 공간에 집을 크게 짓고 어리석은 부자로 살기보다 무한정의 공간에 영원한 마음의 집을 튼튼히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나뭇잎을 땅 위로 다 내려놓은 나무들이지만 다른 나무들과 이웃해 있기에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을까? 나목을 바라보며 내 속에 있는 본질과 비본질의 요소들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무엇으로 불리는 내가 아닌, 본연의 나를 알고 소유한 것 하나 없지만 당당히 자리하는 겨울나무 같은 너와 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