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시끄럽기만 한다.

 웬만한 사건에는 이제 별 반응도 없어지지만, 최근 청와대 행정관의 아내 살해는 너무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모 국회의원 성희롱이나 총리골프, 시장 테니스...뭐 이런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다가왔다.

 왜일까?

 나도 모르겠지만,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30대 후반의 남편과 30대 중반의 아내..30대와 40대는 한 사회를 받치는 기둥이다. 사회에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나름대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다져가는 중이고, 다음 사회를 이끌 아이들을 양육하고..

 그들의 사생활을 나는 모른다.

 평소 사이가 좋았는지 나빴는지,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 성격이 어땠는지..

 하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다니..

 많이 배웠다고 도덕적인 인간을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몸소 운동권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정치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모든 국가나 사회의 출발은 가정이다..

 복지의 출발도 가정이다..

 요즘 핵가족화되고 구성원이 적어지면서 가족간의 갈등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또 핵가족이 되기 때문에 배우자의 역할은 지난 세대들보다 더 중요해졌다..

  가정에서 잘 못 되면 사회가 아무리 많은 지원을 하고, 돈을 퍼 부어도 해결할 수 없다..

 또 하나..

 이건 약간 별개의 문제지만, 벼락출세나 집권은 후유증을 낳는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39살에 3급 행정관..

 물론 별정직이긴 하지만, 고시출신(5급)도 39살에 가질 수 없는 직급이다..

 그 직급과 이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청와대가 이런 것까지 예상해서 사람을 쓸 수도 없지만,

 자꾸 씁쓸해진다.. 

지난 토요일(1월 7일) 에 왕의 남자를 봤다.

보고싶던 영화였는데, 남편이 시큰둥하다 예매율 1위라는 말에 보기로 했다.

그전에 본 태풍은 정말 별로였고 - 돈은 돈대로 들이고, 배우들을 나름대로 엄청 고생하고도 별볼일없는 영화 -

킹콩은 괜찮았다. 킹콩 역시 사람 취향에 따라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영화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내가 재밌는 영화도 남이 보기엔 재미없을 수도 있고..

왕의 남자..괜찮은 영화다..그렇다고 엄청 재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연극으로 입증된 탄탄한 시나리오에 광대극이 보여주는 화려한 볼거리,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조선시대를 잘 구현한 셋트와 사극임에도 현대적인 말투를 사용해서 대사가 듣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점..등등

나에게는 '감우성'이란 배우의 재발견이었다.

정진영이 연기한 연산은 미친걸 알면서도 연민을 느끼게 하는 왕이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궁궐과 선왕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여자와 향락으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그는 왕이었기에 그런 행동들은 용납될 수 가 없었다.

이준기는..정말 여자보다 예쁜 남자..하지만 연기가 불안정한 면이 없지 않았다.

감우성은..내가 보아온 모습은 항상 지적이고 약간은 여성스러운 모습이었고, 결혼은 미친짓이다 이후 그가 나온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거미숲, 알포인트에선는 어떤 모습으로 나왔는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는 과연 엘리트 미지의 그가 천민에 남성적인 장생을 어떻게 연기할까 의아했는데 결과는 참으로 잘 소화해냈다. 탈을 쓰고, 줄도타고, 경극까지..

그리고..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다..

정치란 것, 권력이란 것은 결국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과거건, 현재건 미래건..

권력은 달콤하지만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자에게는 독이 된다.

한 나라의 문물을 정비한 왕에게 부여되는 시호인 '성종'..어느 나라건 성종의 시호를 받은 왕은 그 왕조의 태평성대를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훌륭한 왕인 성종도 아들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사실 성종시대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야기되고 있었다.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세력다툼,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친모인 폐비윤씨사이의 알력다툼(폐비윤씨의 ko패)등 왕권을 둘러쌓고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했다.

한때 사랑했던 아내에게 사약을 내리고, 어머니가 없는 아들에게 끝까지 왕위를 계승한 성종의 마음을 어떻했을까? 최선의 선택들을 한 것일까?

그가 죽고 아들이 친모의 죽음을 알게된 날, 어떤 정치적인 피바람이 불지 몰랐을까? 알았으면서도 감수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다..

물론 왕의 남자는 이런 시대 상황아래서 대부분 상상에 의해 극의 줄거리를 엮어 간다. 연산이 사냥터를 만들기 위해 도성안 백성들을 내쫓고, 사람을 활로 쏘아 죽이고, 정치와 담을 쌓고..뭐 이런 사료들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다..그가 정말 공길을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연산에 대해 알고있는 것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폐위시킨 왕이 훌륭한 왕이었다고 기록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도..그는 성격이 괴팍하고 정신병적인 증상이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아주 온전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예전에는 그냥 폭군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왜 그가 폭군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이해가 될법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연산처럼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조도 정신병적 증세가 있었지만, 정치는 잘 했다..

사극은..역사는 항상 현재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나마 요즘은 세습제가 아니니 왕이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세상이다. 사람이 하고싶은 일을 해야지..왕이 싫으면서도 왕을 해야하는 사람에겐 그것도 곤욕이었을 것 같다..그걸 알면서도 세습제를 고집했던 건..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정치제도 - 대표를 선출하는 -는 참으로 합리적인 제도다.

연산이 지금 태어났다면, 그가 정치를 하지 않아도 됐다면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