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과연 그럴까? 책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니, 10억원을 모으 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쯤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했다.

게다가, 그 10년 동안에는 인간답고 품위 있는 삶 같은 것은 아 예 포기해야 하는 듯이 보였다. 그렇다고 원하는 사람 모두가 10 억원을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터.

그렇다면, 왜 이렇게 10억원에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앞이 보이 지 않는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과 사회복지 제도의 부족 때문이라 고 생각한다. 설사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정년 때까지 벌 수 있 다는 보장만 있다면, 사람들은 몫돈 모으기에 그토록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복지 선진국처럼 실업 상태나 노후에 기댈 수 있는 사회보장 제도와 노인복지 제도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면, 그토록 많은 사람이 오늘 내 삶의 복지를 포기하면서까지 10 억원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10억원 열풍은 우리 사회가 불안정한 노동시장의 문제와 사 회복지 제도의 부족 문제를 모두 방치한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 를 하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 국민들을 위한 어떤 안전망도 쳐 놓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우리 사회는 줄에서 떨어지는 것은 자기 책임이니 혹시 줄에서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10억원쯤은 각자 알아서 마련하라고 등을 떼 미는 그런 사회다. 나는 그런 무책임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그뿐인가. 10억원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많은 것을 포기할 태세가 돼 있는 개인들의 무표정과 무관심이 너무 두렵다. 중학 생이 어머니의 시체를 옆방에 두고 여섯 달을 홀로 지내도 알아 채지 못한 이웃들을 그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이들 또한 1 0억원의 꿈을 안고 바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닌가.

그러니 이쯤 해서 10억원 모으기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을 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10억원이 내게 가져오는, 아니 어쩌면 영영 실현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편익에 비해 너무 많은 개인적 대가 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대가 가운데는 언젠가 더 나 이가 들었을 때 후회하며 눈물 흘릴 만한 것이 들어 있지는 않은 지,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사회적인 비용효과 분석이다. 지금처럼 개개인으로 하여금 10억원씩 모으도록 부추기는 사회는 당장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여 언뜻 보면 대단히 비용 절약적인 재정 운용이 이뤄지는 사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틈만 나면 영국병이 나 복지국가 위기론을 주장하면서 개인의 자조와 비용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10억원 열풍이 고맙게까지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짧고 위험한 생각이다. 개개인이 10억원을 모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정신적 불건강, 범죄나 부정 부패로 인한 비용이 결국 어디로 가겠는가. 그것은 종국에는 사 회적 비용이 될 것이며,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야 말 것이다.

국가가 국민 전부를 위해서 치는 사회안전망의 비용이 아무리 크 다 해도 10억원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며, 그 효과는 10억원을 훨 씬 넘을 것이다. 그러니 정책결정자들은 정치권의 돈 계산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서민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하루 빨리 국민들을 10억원 모으기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주 기 바란다. 국가와 사회가 튼튼하게 쳐주는 그런 안전망 위에서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

그런 사회에서 국민 개개인은 10억원 모으기보다는 좀더 자유롭 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그리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우며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복지사 회의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