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에서 10일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을 본 관객들은 격찬을 쏟아냈다. 영국 RUG가 이 작품의 첫 해외투어 프로덕션팀을 구성해 선보인 이번 공연에서 몇개월 전부터 개막공연을 예매해 관람한 한국 관객들은 대부분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며 감격했다.

시시각각 변주되며 상상력을 자랑하는 무대연출, 그들 앞에 앉아있는 사실을 감사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노래 등 ‘오페라의 유령’은 관객의 촉각을 분주하게 곤두세웠다. 보는 이를 움켜쥐듯, 관객 위를 떠돌듯 객석을 쥐락펴락하는 ‘유령’은 깊고 넓게 공간을 확장하며 미혹(迷惑)의 무대를 창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공연의 만듦새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을 20여차례 봤지만 이번 서울 공연의 완성도가 어느 때보다 높다”고 평했다. 원교수는 특히 “대개 해외투어팀을 구성할 경우 1급배우들이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캐스팅은 예외”라면서 “팬텀 역의 브래드 리틀은 월등한 원숙함을 보여주며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전했다. 다른 뮤지컬 제작사 프로듀서들이나 평론가들도 이 공연이 지금까지 본 ‘오페라의 유령’ 중 가장 탁월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태풍의 눈은 단연 팬텀 역의 브래드 리틀.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전미 투어에서 약 3년반 동안 이 역할을 맡기도 한 베테랑이다. 팬텀의 감정에 따라 때로 분출하고 때로 스며드는 그의 음성과 몸짓은, 가면 뒤 얼굴뿐 아니라 손가락 마디 끝에서까지 연기자의 표정을 살려내는 경이로움을 보여준다. 팬텀의 분노와 절망을 터뜨리는 그의 움직임은 무대를 뒤덮는 마그마이며,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을 호소하는 그의 노래는 객석을 향한 애무다.

2001년 국내 라이선스 공연과 비교할 때 우리 배우들의 공연도 큰 손색은 없었지만 주연급 배우에서 이들과 차이를 보인다는 평이 많다. 이밖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 역시 붉은 색과 금색이 조화된 객석이 파리 오페라극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 자체와 잘 맞아떨어진 점 등 이번 공연은 ‘오페라의 유령’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다만 그 유명한 ‘샹들리에 추락장면’은 공연 전부터 알려진 내용이 지나치게 기대를 부풀려, 속도감이 다소 떨어져 실망을 불렀다는 반응이다.

한국 관객의 호응에 주연 배우들도 힘이 나는 표정이다. 브래드 리틀은 개막공연 후 “지금껏 공연하며 이처럼 뜨거운 반응은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기뻐했고 크리스틴 역의 마니 랍도 “한국 관객들이 한순간 한순간을 우리와 함께했다”며 “이로부터 배우 모두가 에너지를 얻었다”고 즐거워했다.

이 공연은 8월말까지 계속되며, 지금까지 팔려나간 티켓은 12일 현재 9만8천여장. 6월 공연분 좌석은 이미 90% 이상 판매됐고 7월분 티켓 예매율도 70%를 넘어섰다.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 무대예술의 극치 보여주는 명장면 5

전세계 1억명 이상이 관람했다는 공연인 만큼 놀라게 하는 명장면들이 가득하다. 자막을 놓치더라도 이 장면들에서만큼은 눈에 힘을 주자.

1도입부 여주인공의 독창무대. 극장 경영진 앞에서 시험삼아 노래를 부르던 크리스틴이 순식간에 파리 오페라극장의 주인공으로 탈바꿈하며 극중 시간을 압축한다. 노래가 끝나면 무대는 절묘하게 막후로 전환돼 대기중인 무용수들의 공간으로 변화한다.

2크리스틴의 분장실. 처음 등장하는 팬텀은 마치 실제 유령인 듯 거울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교묘한 각도로 기울어진 거울은 앞쪽의 크리스틴과 뒤쪽의 팬텀을 함께 비추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3삿대를 젓는 팬텀. 크리스틴을 지하 미궁으로 끌고 가는 팬텀의 배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무대장치지만 팬텀의 삿대에 의해 흘러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촛불들이 드라이아이스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은 깊숙한 미궁의 느낌을 더한다.

4화려한 가면무도회. 관객들이 큰 감탄사를 내보내는 장면이다. 배우 37명이 총출동해 꾸미는 이 대목은 순간순간이 한폭의 그림이다.

5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틴을 떠나보낸 팬텀은 자신의 의자에 앉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가면만 자리에 남는다. 무대 옥상, 묘지 구조물 등에서 번개처럼 나타나는 팬텀과 심지어 객석 뒤에서 울리는 ‘유령’의 목소리 등 극 전반에 그의 신비스러움이 이어진다.

# 이왕이면 제대로 즐기자

큰맘 먹고 보는 고가의 공연인 만큼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전문가나 마니아들이 우선적으로 권하는 것은 대본을 미리 읽어두는 것. 자막 전광판이 무대 양쪽에 설치돼 있는데 시선을 돌려 읽으려다보면 아까운 장면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DVD·비디오로 출시된 영화를 미리 보는 것도 손쉬운 예습방법이다. OST 가사라도 익숙하도록 듣고 관람하면 한결 편안하게 공연을 볼 수 있다. 대본 등 자료는 공식 팬카페(cafe.naver.com/phanphile.cafe)에서 구할 수 있다.VIP석 뒤쪽부터는 R석이어도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과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공연장 입구에서 3,000원에 대여하는 오페라글래스를 챙기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공연장은 냉방이 강한 편이어서 여성의 경우 가벼운 긴팔옷을 준비하는 게 마음이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