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매체가 빈약했던 옛날에는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구전이었다. 적을 수가 없으니 일일이 외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아마 기억력이 현대인보다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기억력을 발달시키기보다는 보조 기억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에게 한 기자가 찾아왔다. 그 기자는 아인슈타인의 실험실을 꼭 보고 싶다고 졸랐다. 그는 세계적인 과학자의 실험실이 아주 굉장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당황해하는 기자에게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나는 일상 생활을 하다 머리에 뭔가가 떠오르면 잊어 버리지 않도록 만년필로 메모를 하고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러니 연구를 위해 따로 잘 차려진 실험실이 필요하진 않지요. 단지 내겐 그것을 적고 계산할 수 있는 만년필과, 필요 없는 메모지를 버릴 수 있는 휴지통만 있으면 됩니다.”

메모를 하는 목적은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함이면서, 동시에 그 아이디어를 놓치고서 기억하고자 애쓰는 데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다. 아이디어를 일단 도망갈 수 없도록 메모지에 붙들어 매고 나면 우리는 안심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단지 메모지만 잘 간수하면 된다. 메모를 하지 않는다면, 모든 아이디어를 일일이 기억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될 것이다.

1000만 원이라고 쓰인 돈 봉투를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의 시선때문에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다른 생각은 나지 않고, 오로지 돈을 무사히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은행에 넣어 두면 그만인 것인데 말이다. 메모는 그와 같은 것이다. 머리에 넣어 두면 잊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 하고,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거리에서 돈을 강탈당하듯이 아이디어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된다

메모에는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때 그때 떠오르는 것을 기록하면 된다. 예쁜 글씨로 쓸 필요도 없다. 평소 꼼꼼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예쁜 글씨로 깔끔하게 적으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함정이다. 메모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본인만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

메모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기본이다. 메모하겠다고 결심하고도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은, 메모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하는 형식적인 일부터 시작하라. 메모를 하기 위해서는 일단 주머니에 휴대할 수 있는 수첩과 즉시 꺼낼 수 있는 필기 도구만 있으면 된다. 수첩은 절대로 가방 속에 넣지 않도록 한다. 혹시 넣어 둔다고 하더라도, 필요할 때 즉시 꺼낼 수 있도록 바깥쪽 주머니에 넣는다. 가방을 열고 수첩을 찾고 꺼내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게 되면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기 어렵다. 필기 도구 역시 즉시 꺼낼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메모는 속도가 생명이다. 머뭇거리고 꾸물대는 동안 순간적인 발상은 사라져 버린다.

메모 도구는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과 목적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첩은 문방구나 사무용품 전문 매장에 가서 직접 만져 보고 느낌이 좋은 상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일단 사용하기 시작했으면 가능한 한 바꾸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수첩은 일원화하여 메모를 여러 곳에 분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다이어리, 작은 수첩, 회의용 대학 노트 등 몇 가지로 나누어 사용하면, 어디에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필요한 때에 빨리 찾지 못한다.

적는 것이 귀찮은 사람은 디지털 레코더를 쓸 수도 있다. 일단 테이프에 녹음한 후 나중에 확인한다. 요새는 음질이 좋고 저장 용량도 큰 소형 디지털 레코더가 다양하게 나와 있다. 더구나 단순히 음성 녹음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카메라가 달려 있기도 해 멀티미디어로 메모할 수 있다. 요새 나오는 휴대폰은 성능이 워낙 좋아서 디지털 레코더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필기가 느리다면 주제어만 나열해도 된다. 또 반드시 글자만 쓰라는 법도 없다. 기호와 암호를 적절히 사용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요점 정리라는 메모의 기본 요령도 익힐 수 있다. 주요 단어를 늘어놓고 선으로 연결한 지도 형식의 메모도 좋다. 지도 형식의 메모는 전체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인맥을 메모할 때는 명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명함에 이름과 직함, 날짜, 만난 장소, 소개한 사람과 상대방의 특징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런데 명함을 교환하는 자리에서 명함에 메모하는 것은 실례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 유형별 메모법

메모하는 단계에서 공사(公私)를 구분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분류는 메모를 마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메모할 때는 오로지 쓰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기본이다. 또한 메모는 간단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되 중요한 말에는 밑줄을 긋고, 좀 더 중요한 말에는 동그라미를 그리면, 나중에 정리할 때 도움이 된다. 키워드에는 삼색 볼펜을 사용해 강조하고, 중요한 내용은 다른 페이지에 별도의 항목으로 요약해 눈에 잘 띄게 한다.

메모는 한 번 한 것으로 끝내지 말고 다시 읽어 보는 것이 필수다.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메모를 활용할 수도, 사장시킬 수도 있다. 메모한 아이디어의 가치는 다 똑같지 않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면 나중에 꼭 메모지를 들춰보겠지만, 시시한 것은 아예 메모지를 들여다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다른 아이디어를 파생시키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일단 메모한 것은 꼭 나중에 확인하여, 사장될 위험에 처한 아이디어를 구하도록 해야 한다. 메모한 항목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메모하는 성향도 다른데, 자신의 성향을 잘 파악하면 메모에 크게 도움이 된다.

●꼼꼼한 타입 : 이런 사람은 메모를 하지만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도록 작은 수첩을 휴대하는 것이 좋다. 메모한 내용을 활용할 수 있도록 ‘처리할 일’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체크해 보라.

●감성적인 타입 :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만 그것을 적절하게 축적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하는 유형이다. 이런 사람은 언제든지 메모할 수 있도록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그리고 사용한 후에는 주제별로 메모를 정리하여 노트에 옮겨 적는다. 데이터 베이스화하기 위해서다.

●지성적인 타입 : 이런 사람은 이론적이며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다른 정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진을 찍어 나중에 보면서 감상을 이야기하거나, 잡지 기사 등을 오려 붙여 시각적으로 데이터 베이스화하면 감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

●변덕스런 타입 : 이런 사람은 아예 메모를 하지 않거나, 혹시 하더라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메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이어리를 구입해도 그 때만 잠깐 사용할 뿐 금방 잊어 버린다. 따라서 휴대 전화나 최신 기기를 사용하거나, 집안 곳곳에 메모지를 두어 먼저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 메모는 낚시다

수첩은 각종 정보의 집합체이므로, 잃어 버리면 당장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 일년에 한두 번은 메모 내용이나 주소록 등의 자료 전체를 복사하여 보관한다. 그러면 만약의 경우 수첩을 잃어 버렸을 때를 대비할 수 있다. 자료를 복사해 둘 때는 가능한 한 동일한 규격의 용지를 쓰면 좋다. 정리하거나 검색하는 데 편하다.

메모하는 습관이 생기면 전보다 많은 일이 눈에 들어오고,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메모는 사소한 낙서에서 시작한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경중을 구분하지 말고 일단 메모지에 적어 보자. 사실 알고 보면 아무리 바쁜 사람도 중간중간 시간의 틈이 난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 경우, 또 출퇴근할 때 등등. 이럴 때 메모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언제라도 메모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것은 바닷가에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피라미가 낚일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월척이 묵직하게 낚싯줄을 당기는 때가 오는 것이다. 물론 낚싯줄을 드리운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글_조원기(wk@successpartner.co.kr)

참고 도서 : 메모의 기술(사카토 켄지 지음, 해바라기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