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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배낭여행기 16] 1992년 보스니아 내전...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다큐

뉴스여행
 "사람에게 이럴수가" 끝모를 폭음, 기억이 끊겼다
[불혹 배낭여행기 16] 1992년 보스니아 내전...역사에서 무엇을 배워야할까
 
13.02.02 19:49l  최종 업데이트 13.02.02 19:49l  홍성식(poet6)



▲  돌로 만들어진 건물 중 '지구 위에서 가장 매혹적'이란 평가를 받는 캄보디아 앙코르사원. 하지만, 이 아름다움 뒤에 자리한 '크메르 루즈 대학살'의 전모를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 서영진 제공 관련사진보기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거나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단어를 치고 엔터키만 누르면 줄줄이 검색되는 정보를 혼자 아는 척 길게 인용할 필요는 없다. 짤막하게 요약하자.

먼저 1980년 광주항쟁.

18년 장기독재를 지속하던 박정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 측근 중의 측근으로 불리던 김재규의 총탄에 비명에 간 것이다. 이어진 12·12쿠데타. 전두환과 노태우, 박준병과 정호용 등 권력을 잡은 육군사관학교 동기들. '신군부'로 약칭되던 이들에겐 국민을 겁주는 동시에 휘어잡은 헤게모니를 공고히 할 '희생양'이 필요했다.

광주가 피를 흘렸다. 수백 명이 죽었다 하고, 수천 명이 다쳤다 한다. 제 나라 군인이 쏜 총탄에 자국민이 비명 쏟으며 쓰러졌다. 아이러니. 그로부터 33년의 세월. 아직도 5월이 되면 광주엔 정신병원을 찾는 환자가 다른 달보다 많다고 한다. 1988년. 경악하며 페이지를 들추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간 <광주항쟁 사진집>은 내 인생의 적지 않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다음 1976년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캄보디아 대학살.

1975년.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에 경도된 일군의 프랑스 유학생 출신 게릴라들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장악한다.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원시적 공산체제를 꿈꾸었던 이들은 인류 역사상 손가락에 꼽히는 무지막지한 개혁(?)을 단행한다. 지식인과 유산계급의 씨를 말리려 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았다고,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안경을 썼다고, 심지어 이 사람들의 자식까지 마구잡이로 죽였다. 폴 포트, 따목, 카잉 구엑 에바브 등이 주도한 학살이었다. 4년에 미치지 못하는 크메르 루즈 집권기간 동안 캄보디아 인구 800만 명 중 150만 명이 살해됐다.


▲  빽빽하게 들어찬 하얀 비석들. 사라예보의 공동묘지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부르는 공간이다. 
ⓒ 홍성식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1992년 보스니아 내전.

1990년대 초. 소련 연방 붕괴 후 동유럽 전역은 독립과 자치를 요구하는 서로 다른 인종들의 목소리로 뜨거웠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던 보스니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민투표를 통해 연방 탈퇴를 기정사실화 한 것은 1992년.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스니아 국민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세르비아계 사람들은 그들과 종교가 다른 무슬림이 보스니아의 패권을 쥐는 걸 두려워하며, 저지했다.

유고 연방의 주도국이었던 세르비아의 지원 하에 학살자들이 보스니아에 들어왔다. 당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의 최고 정치지도자와 군사령관이 합세해 수도 사라예보를 포함한 보스니아 전역에서 '인간 도살'을 시작한다.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일이 수년 간 일상처럼 벌어졌다. 20만 명 이상이 죽고, 250만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했다.

여섯 살 계집아이와 여든 먹은 할아버지까지 이마에 조준사격을 해 죽였다. 수천, 수만의 무슬림 여성들이 강간당했고, 그로 인해 생긴 아이들을 낙태시키지 못하게 격리했다. '야만의 시간'이었다. 이 여행기 14편 서두에 언급된 이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가 주도면밀하게 진행한 제노사이드였다.

하얀 비석을 뒤로 하고 내려와 정신 잃도록 폭음



▲  공동묘지에서 개에게 위협당하는 나를 구해준(?) 보스니아의 꼬마들. 이 친구들이 살아갈 세상은 인종과 종교에 의한 비극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 홍성식 관련사진보기
 

햇살과 그 아래 새하얀 비석이 아프게 눈을 찔러오던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공동묘지. 사나운 개를 쫓아준 꼬마들은 또래다운 호기심으로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하지만 그날 어떤 질문을 들었고, 무슨 대답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증발한 시간과 휘발된 기억. 그건 단지 나와 그 아이들의 힘겨웠던 의사소통 탓만은 아니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꼬마들이 산을 내려가고도 한참동안 더 묘지에 앉아 있었다. 시든 장미와 암녹색 이끼와 해독할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비석을 앞에 두고. 참담함이라고 해야 할까, 향하는 곳 분명치 않은 분노라고 불러야 할까. 당시의 심정을 아직도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어둠이 산과 묘지를 온전히 뒤덮은 다음에야 벗어놓은 슬리퍼를 찾아 꿰고 도심으로 내려왔다. 무엇을 해야 할까? 뒤집혀진 마음으론 술 마시는 것 외엔 할 게 없었다.

술을 팔지 않는 무슬림 구역을 지나 숙소에서 먼 거리에 있는 가톨릭 구역으로 허위허위 걸었다. 곁으로 '학살의 그날' 새겨진 총탄 자국 선명한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보스니아 내전 기간 동안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 군인과 민병대에 포위돼 있었고, 식량이나 물을 구하러 거리로 나온 배고픈 아이와 노인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생이 꺾이곤 했다.

사라예보 시내 한복판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담은 조형물이 있다. 그건 내전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이고, 총탄 자국이 흉한 건물을 리모델링 하지 않는 이유는 '그날의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됐다.

마침내 도착한 가톨릭 구역. 시끌벅적한 술집의 구석자리를 잡고 술을 마셨다. 싸구려 위스키로 시작해 보드카와 맥주, 나중에는 알코올 도수가 60%에 가까운 홈메이드 보스니아 라키아(유럽산 자두나 청포도를 증류한 투명한 술)까지. 끝 모를 폭음이었다.

저녁도 거른 채 거칠게 마신 술은 엉망의 취기를 불러왔다. 주위에 앉은 보스니아 사람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윙윙거리더니 한순간 사라졌고, 술집 앞거리가 흔들리는 환시가 보였다. 나중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가… 사람이 사람에게 그럴 수가…"라는 혼잣말까지 지껄였던 것 같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기억의 회로가 끊겼다.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지 않을까.

일그러진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영화 <인 더 랜드 오브 블러드 앤 허니>(In The Land Of Blood and Honey)의 한 장면. 안젤리나 졸리가 연출을 맡아 화제가 됐다. 이 작품 외에도 보스니아 학살과 인간성 상실을 주제로 한 영화는 많다. <그르바비차> <웰컴 투 사라예보> 등. 동유럽 현대사에 사람들은 DVD를 사도 좋을 듯하다. 
ⓒ 영화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날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였다. 지갑과 여권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침대 머리맡 조그만 가방에 그대로 들어있었다. 어떻게 숙소까지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술값을 제대로 지불했는지조차 가물가물했다.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직원을 찾았다.

다행히 도착한 날부터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가 건네는 말에 친절하게 대꾸해주던 금발의 여성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 단도직입 물었다.

"내가 언제 들어왔죠?"
"새벽 2시쯤? 엄청나게 취했던데요."
"혹시, 결례를 하진 않았나요?"
"아뇨. 오자마자 쓰러져 자던 걸요."

그쯤이면 다행이다 싶었다. 내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거나, 신파조의 슬픔을 무기 삼아 주위를 괴롭히는 건 마흔 살이나 먹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않나.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들려온 그녀의 질문.

"어젯밤에 친구랑 거리를 지나다가 술집에서 당신을 봤어요.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이던데 왜 그랬어요? 사라예보가 싫어요?"

이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사라예보는 좋아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싫죠."


▲  참혹한 현대사를 겪었지만, 그 슬픔의 역사와는 별개로 옛 유고 연방의 나라들은 모두 아름답다.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사진은 2006년 유고 연방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독립한 몬테네그로. 
ⓒ 류태규 제공 관련사진보기
 

주제넘게 철학자 흉내를 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대체 인간이란 뭔가'라는 자문을 해보곤 한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지독하다. 그러나 자신 하나의 생존과 행복이 아닌 다른 존재의 행복과 생존을 위해 제 목숨을 버리는 것도 인간이다. 위대한 희생.

양립되기 힘들어 보이는 극단을 오가는 인간. 바로 그 인간들이 만들어온 것이 역사다. 쉽게 이해되고 수긍할 수 있는 역사가 있다면, 불가해하고 일그러진 역사의 시간 역시 분명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일그러진 역사로부터 인간은 무엇을 배워야할까? 이미 오래 전 지상에서 사라진 철학자는 말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간에겐 미래가 없다"고.

보스니아와 캄보디아는 내전과 학살의 아픈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2013년 오늘. 우리 한국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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