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부자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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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사는 법 일상

 

 

 

"안 온 듯이 다녀가"

 

그 남자의 집에 들어서면

처마밑에 있는 이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자연의 품이 그리워

찾아오는 이들 끊임없으니

삶이 그렇듯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이야기런가.   

 

그 남자,

 

산이 좋아 산과 결혼한 후
이산저산 산지기를 하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리산에 둥지를 틀었다.
주민의 대다수가 도시로 떠나버린
울울창창한 지리산 하동의 깊은 산골마을
빈집 하나 골라.

 

그를 안지 30년 넘은 지인들조차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른다
그저 그의 이름은 털보.
아이들에겐 맘씨좋은 털보아저씨일 뿐.

 

북한산에서 그를 본후
꼭 4년만에 지리산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한달 생활비가 고작하니
2만원 안팎이라는 그.

티브이. 컴퓨터는 고사하고
전기제품일랑 일체 쓰지 않으며
지인들이 이따금 가져다주는 찬이 있건만
그의 찬은 장아찌와 그가 뒷곁에 심은 고추가 전부.

간혹 지인들이 가져온 찬을 먹기도 하지만
육식은 하지 않는다.

 

육식을 하는 날엔,
동물과 곤충들이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피한다고 한다.
즉,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면
마당을 쓰는 일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하늘 천장에 달과 별이 켜지기 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내리면 잠자리에 드는,
하루를 온전히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니

전깃불이 소용할리 만무하다. 

 

으슥한 밤,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전등불이 없으니
눈빛이 초롱해지고 귀가 밝아진단다.
그러면 그는 자연스레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어
대화를 나눈단다.

 

초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는 그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로라 하는 여느 한의사보다
해박한 한의학적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일과중
절반은 산에서 약초를 캐고
절반은 관련된 고서들을 읽는다.
동의보감만 벌써 네번을 읽었다고 하니
그의 해박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러나 그는
그가 산에서 얻어 손질한 약재들을
절대로 돈을 받고 팔지 않는다.
그저 지인들이 아프거나 하면 나누어줄 뿐.
돈을 위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어쩌다 돈이 필요하면
사찰에서 일을 봐주고 
돈을 번다.

 

3일간 친구네와 그의 집에 머물며
나는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을 부른다는
쇼팬 하우어의 말이 아니더라도
돈은 돈을 부르고
욕심은 욕심을 부르고
편리함은 편리함을,
도시는 도시를 부른다.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면
일체무념의 평화외에 아무 것도 부르지 않는다.

 

그의 집앞에
아름다운 계곡이 있다.
그 계곡 바위에 누워 있으면
싯푸른 맛있는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폭포소리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나는 자연으로 녹아든다.

 

참으로 감사하게,
자연은 사악하고 불편한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

 

오는 길에,
병약한 나를 위해
간에 좋다는 귀한 겨우살이 차와
염증에 좋다는 꾸찌뽕차를 잊지않고 챙겨주시며
뽕나무 상황버섯과 위장에 효험있는 약재를 구해놓겠다며

찬바람 불기전에 꼭 한번 다시 들르라는 말을 덧붙인다.

소박하지만 깊은 털보아저씨의 나눔의 정에

그저 고맙고 황송할 따름이다.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싯푸른 하늘,
솜사탕처럼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흰구름들,
그리고 어느 음악보다 아름다운
뒷곁 대나무밭의 대숲소리와 폭포소리,

병풍처럼 둘러싸인 겹겹의 산과

산허리를 넉넉히 두르고 있는 

이른 아침의 우윳빛 운무들
무엇보다 그 모두의 심중에 있는 

넉넉한 대자연의 하나인 그,
털보 아저씨.

 

세속의 눈으로 보면

터무니 없이 가난하나,

내게는 최고로 풍요로웠던,

 

 

그 곳,

그곳이 눈에 밟힌다.

  

 

2007.8.21
      
 

 



주제 : 여가/생활/IT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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