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경쟁 속에서 질서를 위반하는 반칙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을 갖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의지를 보여달라."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공정거래위원회 창립 30주년 기념식.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의 축사는 어느 때보다도 카랑카랑했다. 축사는 어느새 더욱 강한 공정위가 돼 달라는 `채찍`으로 바뀌었다. 하루 전날인 지난달 31일. 이명박 대통령은 백 실장과 함께 개청 이래 처음으로 국세청을 공식 방문했다.

이날 `2차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는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과세 방침이 발표됐다. 대기업 사주ㆍ친인척 관련 역외탈세와 국외 은닉재산 추적 강화 방침도 함께 하달됐다. 작년 8ㆍ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 구현`을 내세울 때만 해도 분위기는 대기업 협조를 끌어내자는 쪽이었다. 소위 경제잉여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넘치게 하자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게 정부 속내다. 겉으로만 하는 척이지 실제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게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느끼는 서운함이다. 8개월 정도가 흐른 지금 정부의 대기업 압박이 전방위로 몰아칠 조짐을 보이는 까닭이다.

◆ 경제검찰 전방위 압박

= 총대는 경제검찰들이 멨다.

작년 8월 공정위는 태광그룹 내 9개사에 대한 부당자금지원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태광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기 두 달 전이다. 결국 태광그룹은 지난 3일 계열사에 대한 부당 자금지원 행위로 46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기업 계열사에 대한 불법 일감 몰아주기 조사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공정위는 이와 동시에 삼성전자를 포함해 ITㆍ자동차ㆍ조선 등 하도급이 많은 업종별로 40개 대형 제조업체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부당 단가인하, 발주 취소 등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였다.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이 중 20여 개 업체에 대한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상반기에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하도급법 위반으로 대기업이 무더기로 제재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국세청이 움직인 것도 때를 같이한다. 역외탈세 방지를 중점 추진과제로 선정하고 세무조사 방식을 바꾸면서 연쇄적인 대기업 세무조사를 펼쳤다. 대기업 사주는 물론 친인척까지 차명계좌 자료를 축적하고 국외로 빼돌린 자금 추적에 나섰다.

목표를 1조원으로 세웠지만 이미 지난달까지 4600억원이나 추징했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지난 1분기에 이미 4600억원의 역외탈세를 추징했으며, 2분기부터는 국외 세정전문요원을 파견해 역외탈세 추징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무조사도 방식을 확 바꿨다. 기업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현재 정기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삼성그룹, SK그룹,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등도 바뀐 세무조사 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아무리 정기세무조사라도 조사에 투입된 인력이나 조사 방법, 조사 강도에서 특별세무조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기세무조사라도 탈루 혐의가 상당할 경우 금융조사, 거래처ㆍ관련 기업 동시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세 혐의가 높은 기업은 사주 일가ㆍ거래처 동시조사를 통해 변칙 증여ㆍ상속은 물론 기업자금 불법 유출 혐의도 함께 조사한다.

◆ 옥죄기는 계속된다

= 올해 들어 정부의 대기업 옥죄기는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개사에 대한 직권 조사에 착수했다.

또 지난 5일 참여연대가 이동통신 3사에 대해 스마트폰 요금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공정위는 즉각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공정위 직원들은 6일 SK텔레콤을 방문해 스마트폰 요금제 세부 내용과 결정 근거 등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미 공정위는 스마트폰 단말기 출고가에 대해 삼성전자 등 단말기 제조업체 현장 조사를 마친 상태다.

공정위는 정유 4개사의 원적지관리행위 조사도 마치고 보고서를 작성해 업체에 소명 기회를 주는 절차를 밟고 있다. 업계에서는 SK에너지, GS칼텍스 등 정유 4개사에 조단위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공정위가 이 문제를 담합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또 공정위는 다음달부터 제조업 분야 6만여 개 하도급사업자를 대상으로 불공정행위 서면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이번에는 1차 하도급업체뿐만 아니라 2, 3차 업체까지로 조사 대상을 확대하고 조사 방식도 심층조사로 바꿨다.

국세청은 지난달 9일 `체납정리 특별전담반`에 174명을 배치하고 본격적으로 대기업 총수나 친인척들이 국외에 숨겨놓은 부당한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을 진행 중이다.

조세연구원은 최근 전경련 관계자라고 밝힌 남자의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정부가 대기업의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과세를 한다는데 용역을 받았는지, 어떤 방식을 검토하는지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대기업으로서는 아주 민감한 부분이라는 방증이다.

[전병득 기자 / 김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