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 정감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속정이 깊다고는 했지만, 겉정은 냉정한 편이었지요.

종손이던 나를 그리도 귀여이 하신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영정 앞에서도 그리 실감을 하지 못 했더랬지요.

사촌기를 키워 주시다 하신 외할머님의 영정 앞에서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지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내가 이제서야 어머니의 자식 사랑에 대한 그 깊이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고공공포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주도도 두 세차례 밖에 다녀오시질 못 하셨지요.

그러하신 어머니가 이번에 아이 출산에 맞추어 미국에 오신다고 하셧고,

예정일 전 짧은 여행을 겸한 방문일정이었지만, 갑작스런 아이의 출산에 따라 일정을 바꾸어 입국을 하셨습니다.

도착후 어머니는 장시간 비행과 피로로 말미암아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으셨습니다.

약을 드셔도 그리 차도가 없는 와중에도 입에 마스크를 쓰시고 수건을 감싸시고는 손수 손주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짧은 한주가 가고, 두주가 지나서 한달 예정으로 오신 어머니께서 귀국을 결정하셨습니다.

주위여건이 그리 편하지가 못 하신 까닭이었지요. 한국의 가족도 걱정이 되구요...

귀국편을 예약하고서 가시기 전 하루 이틀 정도를 어머니를 모시고 관광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쁜 학기 중이었지만, 그래도 자식된 도리로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은 낼 수 있었지만 극구 말리시더군요.

귀국 이틀 전이었습니다.

제 머리를 보시더니 가위를 드셨습니다.

아마도 제 머리가 길 것을 예상하고 가위를 가지고 오셨나 봅니다.

어릴 적 이발소도 가고 이후 미장원도 가곤 했지만,

지금껏 아버지나 나의 머리는 어머니가 손질하신 적이 많습니다.

밖에서 깎고 와도 항시 성에 차지 않으신지 가위를 드시곤 하시지요.

한 쪽을 깎고서 비례해서 다른 한 쪽을 깎다 보니 결국은 머리가 영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명 바가지 머리라고도 하지요. 유독 이마쪽이 짧음을 느끼 보지만, 그리 어색하진 않습니다.

이번에도 한 쪽 귀 볼이 살짝 가위끝에 닿으며 소름끼침을 느껴보고

내 어머니가 내 옆에 있음을 몸으로 느껴봅니다. 하루가 그리도 빨리 가더군요.

귀국 전일에는 마켓에 가자며 채근하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김치를 담구고 밑반찬을 만드셔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잠시 헐리우드라도 구경하고 장 보자고 수차례 우겼지만 장 보고 구경하신다는 말씀에 마켓으로 먼저 갔습니다.

결국 장만 보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할 일이 많은데, 무슨 구경이냐는 말씀에 지고 만 것이지요.

그렇게 내 어머닌 저녁 내 배추 숨 죽이고, 김치를 담구셨습니다. 여러 밑반찬도 함께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내 어머닌 마지막 날까지 자식만을 생각하셨더랬습니다.

공항 배웅을 가면서 내내 속으로 울었습니다.

티켓팅을 하고서 출국장 앞에서 결국 참던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리 서럽던지요...

여지껏 난 내 생각만 앞섰는데...미국으로 공부하러 오면서도 내 생각만 앞섰는데...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집사람 앞에서도 흐르는 눈시울을 감출 수가 없더군요.

처음 보는 광경에 집사람도 좀 놀랐나 봅니다.

난 내 자식에게 그리 할 수 있을까 한 번 되돌아 보았습니다.

올 여름 귀국땐 가족 모두 여행을 갈까 합니다.

어머니가 한국에 가신 지 벌써 두 주가 지났습니다.

제법 자란 머리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에서 영구같다고 하는군요!

내 어머니가 깎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귀국할 때까지 안 깎으렵니다.

매일 거울에 비친 머리를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