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넷 투기예찬님 글입니다~

알아도 수를 내지 않는다.

창호의 전성기는 이미 예전에 지나갔다.

십 여년전... 창호가 막강하던 그 시절에

기사들 사이에선 이미 창호의 정확한 수읽기와

컴퓨터보다도 정밀한 형세판단 실력은 익히 소문이 나 있었다.

대국이 끝나고... 서봉수 구단이 창호에게 물었다.

"여기에 이런 이런 수가 있었는데 못 보았어? 그 수 면 끝인데..."

창호는 주루륵 수순을 놓아보이며 들릴듯 말듯 한마디를 했다.

"...... 알지만... 잘못하면 실수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말하자면... 알고는 있지만

혹 모를 변수나 실수 걱정에 그 수를 두지않고

자기가 아는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길로 승부를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서봉수 구단은 차후 다른 기사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건 어린애가 뱃속에 할아버지가 들었거나 아니면 구렁이가 몇마리 있는것 같아...(편자주) 쩝..."

과거 일본의 명인을 지냈던 임해봉의 별명은 이중허리였다.

이중허리란... 일본 속담으로 허리를 베면 보통 죽는 것인데

임해봉은 하도 끈질기고 지독해서 허리를 베어도

다른 허리가 하나 더 남아있는 것 같다는 비유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그후 임해봉에게 본인방전에서 4-3 역전승리를 거둔 조치훈이

그 별명을 업그레이드해서 물려 받있다.  ... 이른바 삼중허리....

임해봉을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임해봉은 돌다리도 두둘겨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있다.    ...고

조치훈은 임해봉과는 좀 다르다. 그에겐 질긴 면과 신중함... 그리고 용기가 있다.

조치훈도 신중하긴 하지만 그는 돌다리를 한번 두들겨보곤는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가 "에잇!" 하고는 그것을 단숨에 뛰어넘어 버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창호는 어떨까....?

창호는 그들보다도 더욱 한 수 위이다.

돌다리를 조용히 두들겨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를 서너번...

창호는 옆에 있는 튼튼한 철교다리로 건너는 아이(?... 옛날에) 였다.

"수가 있음을 알고도 그 수를 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