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걷는 데, 제법 가을 같다고

느껴졌다. 거기다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내리고 아스팔트에 얇은 빗방울 표면층에 달리는

차에 띵겨지며 가을 소리 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한 손에는 삼겹살 3인분을 한 손에는 또

상추 깻잎 양념 등을 가지고 광장으로 향하고 있었던지라 가을이 온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비가 많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 뿐, 그저 속보로 가을로 들어갔다.

바다가 보이는 광장에 도착해 얼마 지났을까 비는 더 이상 오지 않고 반가운 선배가 지나

가는 관광객 사이로 오고 있다.

"와 형 인줄 몰랐어요. 옷 색깔이 완전 가을 냄새나는 데요." 반팔 체크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얼굴은 서경석 인 선배가 엉 가을남자? 라고 하는 거 같다. 애니웨이 선배 차에 버너랑 불판

이랑 놓아두어서 차로가 가져와 자리를 잡으려 하니 비가 조금씩 다시 와서 지붕이 있는

차 몇 대 없는 주장장 쪽에 자리를 깔았다. 본래 바다가 보며 파도소리 듣고 지나가는 관광

객들 사람들 구경하며 구어 먹으려 했는데, 인기 없는 주차장을 풍경으로 나 선배 그리고

비를 피해 온 길고양이 한마리만 자리를 잡았다. 선배와 난 꽤 공통의 화제가 많았다. 가령

주차 된 미니버스를 보고 내가 "저런 차타고 여행 다녔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면 "그래 캠핑

카 멋있잖아." 난 "아뇨 갬핑카는 너무 비싸고 저 차를 개조해서 타고 다녀도 되요. 전에

KBS 인간극장 프로에 저런 차 개조해서 애들이랑 부인이랑 전국일주하 던 데..."

"아! 그 부인이 선생이고 남자는 목수인가 형도 그거 봤는 데..." 이런 식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며 삼겹살에 소주한잔씩 마시는 맛이 무척 괜찮다.

"안나한테 전화 왔는 데, 못 받고 오전에 문자 보냈는데, 답장이 안와요!" 안나는 지난

일요일에 러시아 우즈백 등 외국인 접대부가 있는 주점에서 만난 러시아 여자이다.

"당연하지 걔가 우리말로 문자 보낼 줄 알겠어? " 그것은 맞는 말 이다.

주점에 갔었다. 선배 파트너는 우즈백인데 아주 예뻣다. 한국여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외국인같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러시아 여자로 웨이터한테 부탁해 안나가 들어왔는 데

그녀는 100% 외국인 같다. 짧은 스커트에 심플한 블라우스 촉감의 셔츠를 입었는 데,

왠지 그 셔츠 3번 째 단추에 안경만 꽃는다면 더욱 커리우먼 같아 보일 듯 했다. 어쩜 자기

나라에서는 고학력일지 모르고 당당한 커리우먼 이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날 재미

있어 해 주었고 그 날 그녀가 가게를 마치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난 취해서 주점에

나오자말자 바로 집에 가서 자버렸다.

가끔씩 한 점씩 던져주는 삼겹살 때문인지, 주차장 지붕 밖은 비가 내려서 인지 불러도 오지

않는 도도한 고양이는 그저 자리만 지키고 앉아 우리의 대화를 경청할 뿐이다.

"형 거기 얼마 나왔어요?"

"30만원" 내 몫은 15만원이다. 자꾸 얻어먹는 거 같아 반은 내가 주기로 했었다.

"형 이번 주에 술 값만 얼마나 쓴 거에요? 지지난주에 나이트 롬에 들어가서 많이 나온 거

같고 저 안 나간 날 두 번이나 롬에 갔다면 서요. 갑부집 아들도 아니고..." 라고 말하자

잔을 들고는 "그러게 지난 주 이번 주 사이에 정말 많이 썻네." 라고 말하고 소주가 쓴지

돈 쓴게 쓴지 엉렁 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이 쓴 거 같다고 생각 했다. 다른 일행들

이랑 어울려서 몇 번이나 갔다는 걸 알고 형이 다 계산한 것 이다.

"형 월급이 엉첨 많은 거 아냐? 전 못 따라가겠어요."

선배는 자기도 월급에 대부분을 술 마시는 데 지출 되는 것이 고쳐야 할 점이라고 이야기 했다.

타지에 직장 때문에 혼자 와 있는 선배는 많이 외로운가 보다 그 외로움을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술로 채워가고 있다. 그래서 나도 여자 없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것도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긴 외로움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다고 위로 했다. 그리고 선배에게 앞으로 우리 모임에

(타지에서 온 사람들의 모임) 술 마시는 총각인 사람 형 나 또 솔로 형 한명이랑 세 명이서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며 비용을 부담하고 나이트를 가자고 했다. 그럼 한 달에 세 번 나이트를

가는 것이고 형 성격에 여자가 안 생길 리 없을 것이고 형의 돈 쓰는 문제도 해결 되니 그렇게

하고 추석 전 주말에 내가 먼저 살거라고 하고 얼큰하게 취해 남은 고기는 끝까지 자리해준

고양이 한테 다 건네주고 자리를 깨끗이 치우고 일어나 "다음 주 나이트 갈 생각으로 참고

집에 가서 푹 자요" 하고 헤어져 집에 오니 전화가 왔다. 잘 들어갔냐고 집이라고 그리고 또

다시 바로 전화가 와 고기 잘 먹었다고 한다. 많이 위로가 된 거 같다.

나도 기분 좋게 바로 잠이 들었다가 몇시인지 몰라도 추워서 잠에서 깨어

일어나 창문을 닫고 문득 아까보다 가을이, 밤이 깊어있고 텅 빈 방에 혼자 있는 나를 보고

잠시 동안 잠 못 들었다. 나도 외롭긴 마찬가지군. 비 때문에 인사도 못한 가을에게 그때서야

인사했다.

"왔어요. 이번 가을에는 당신에게 물들지 않을 겁니다."

봄에는 다들 가지각색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싹과 꽃으로 물들지만 가을이 되면 모두 같은

색이 된다. 이번에는 동참하기 싫다. 올 해 가을만큼은 틀려야지 벌써 하얀 색깔에 눈이 이쁜

안나도 있고 같이 동행 할 나만큼 외로운 지인도 있으니 올 가을은 가을 거리의 늙은 청소부가

낙엽을 긁어모아 쓰레기로 버려지는 낙엽 중에 하나가 되지 말아야지 늦가을 아스팔트에

나뒹구는 낙엽이 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