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에는 세 부류가 있네."

스승의 대답이었다.

"연금술의 언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 채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해는 하지만 연금술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 또한 알기에 마침내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이 있지."

"그럼 세번째 부류는요?"

"연금술이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연금술의 비밀을 얻고,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자의 돌'을 발견해낸 사람들일세."

아마도 스승은 스스로를 두번째 부류에 놓고 있는 듯했다....(중략)

스승이 세번째 부류의 연금술사를 설명하며 내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옮긴다.

성모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수도원을 찾으셨다. 사제들이 길게 줄을 서서 성모께 경배를 드렸다. 어떤 이는 성서를 그림으로 옮겨 보여드렸다. 성인들의 이름을 외우는 사제도 있었다. 줄 맨 끝에 있던 사제는 볼품없는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곡마단에서 일하던 아버지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기술을 배운 게 고작이었다.

다른 사제들은 수도원의 인상을 흐려놓을까 봐 그가 경배드리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진심으로 아기 예수와 성모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고 싶어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오렌지 몇 개를 꺼내더니 공중에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그가 보여드릴 수 있는 유일한 재주였다.

아기 예수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성모께서는 그 사제에게만 아기 예수를 안아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중에서>

-----------------------------------------------------------------------------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란 소설입니다.

주인공 "산티아고"가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입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똑같은 내용의 글을 읽고 그 책에 담겨진 함의를 해석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일 겁니다. 독자의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처해진 환경에 따라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재해석되어 독자의 가슴에 꽂히게 되지요.

30대 초반에 제가 이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사회 초년생의 패기가 남아있었던 시기라서 그런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다짐을 하고 마음을 다잡던 생각이 납니다. 굴곡은 있었습니다만 초심을 잊지않도록 노력하며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예전에 비해 분명 살림살이는 많이 좋아졌고, 전반적인 생활 역시 안정감을 찾았습니다만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 과연 나아졌는가? 하는 물음에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습니다.

작년 이맘때 이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지나온 시간만큼의 경험과 가치관이 덪칠 되었고 현재 처해진 환경이 달라진 탓이겠지만 책장을 덮으면서의 느낌은 예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산티아고"가 사막을 가로지를 때 동행하는 영국인이 등장합니다. 이 영국인은 수 많은 책과 실험등을 하며 연금술사가 되기위해 참 많은 세월을 견디고 수련을 쌓아오던 사람입니다만 연금술사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름대로 충실하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고, 소설에 등장하는 영국인의 캐릭터가 이때의 제 삶에 오버랩되어 있었습니다.

"투자"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위험을 감수하고 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행위"를 투자라고 정의한다면 투자에 발을 담근지도 제법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냉정히 제 자신을 평가한다면 투자성과가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폴더에 쌓인 각종 증권 관련 자격증과 책장 한구석을 빽빽히 채우고 있는 수백권의 투자관련 서적들..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승률을 높여보려는 눈물겨운(?) 몸부림이었지만, 지난 세월의 결과를 나타내주는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꽤 오래전 어떤 책에서 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떤 검객이 죽음의 승부를 앞두고, 마음을 잡지 못합니다. 그 스승은 검객에게 "부동심(不動心)" 강조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눈을 감고 호수와 같이 잔잔한 너의 마음을 응시하라..그리고 상대와 너의 기(氣)를 느껴라. 그  팽팽한 기(氣)의 균형이 깨질 때 너의 검을 지긋이 앞으로 밀어넣어라."

결전의 날..죽음의 승부를 앞두고, 그 검객은 마음을 비웁니다. 눈으로 파악하고, 조건반사적으로 몸으로 반응하는 방식을 버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내면을 응시합니다. 기의 균형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때 천천히 밀어넣듯 검을 내밉니다.

이것으로 승부는 끝이 납니다. 검객이 눈을 떴을 때 이미 상대는 칼을 맞고 쓰러진 이후였습니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유유히 먼길을 떠나는 검객이 저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안타깝께도 칼맞고 쓰러진 상대검객이 저인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이야기의 결말과 다른 점이라면 상처가 깊지않아 몸을 추스리고 난 후에 새로운 검술을 익히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는 점일 겁니다.

실력없는 사람이 연장을 탓한다고 참으로 많은 검을 수집했습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장의 모습에 대응하기 위해 실체를 분석한 후 등에 찬 수많은 검중에 하나를 뽑아들려고 더듬다가 여지없이 상대의 칼을 맞고 쓰러지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투자방법이 신념이 되었고, 경우에 따라 다른 투자방법은 또 다른 선택적 대안이 되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많이 맞다보면 맺집도 느나 봅니다.동료의 피를 먹고 자라난다는 험란한 주식판에 아직까지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 펀드의 상당부분과 주식을 모두 팔아 현금화 하였습니다. 기존에 적립식으로 불입하던 펀드들은 계속 불입하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변동성에 따라 평가액이 달라지는 투자자산들은 꽤 많이 덜어냈습니다. 향후 시장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충격과는 무관하게 제 스스로 묵신한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할 필요성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어렵게 보면 한도 끝도 없고, 반대로 쉽게 생각하면 크게 어렵지도 않고 그렇지요. 작년까지 제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졌으니 이번에는 "투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씨름해 볼까 합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고요, 편안한 저녁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