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턴 이어받기는 아침부터 시작된다.

엄마는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며 다섯살된 남자 아이를 선생님에게 넘겨준다. 그곳에서 아이는 점심을 먹고 차에서 내려 놀이방 선생님에게 넘겨진다. 웃을 때도 있지만 언제부터 무표정한 얼굴이 먼저 떠오르는 아이는 서슴없이 따라나선다. 엄마가 일찍 나갈 때에는 아침 일찍 놀이방에 먼저 맞겨지고 다시 어린이집 놀이방으로 이어진다.  누가 재워주지 않아도 아이는 자야된다고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는지 이불만 깔아주면 혼자서 눈을 감는다. 일어나서 간식을 먹고 조금 있으니 원장님은 모임이 있다며 남편에게 다시 아이를 넘겨준다. 남편은 아이의 엄마에게 다시 넘겨준다. 쉬는 날도 엄마는 어김없이 일을 나간다. 그러면 그 아이는 멀리있는 할머니에게 맡겨지고 아빠는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온다. 아이가 거쳐가야하는 곳에 이제는 이력이 났는지 그냥 자신의 팔을 내어준다. 실낱같은 저항도 없이.

아이는 넘겨질 때마다 마음이 끊어지는 아픔을 울지도 않고 혼자 감당해내고 있었다. 감당해

야할 무게가 점점 쌓이고 쌓여 버틸 재간이 없을 때 아이는 중심을 잃고 가야할 곳도 모르고

헤매지나 않을까?

어느날 그 아이가 선생님께 물을 달라고 했다. 물을 좀 먹다가 다른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선생님께서 보고 몰을 쏟을까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의 발걸음을 멈추려고 했는데 조금있으니까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사랑이 많은 아이인데 그 사랑을 퍼 줄곳을 못 찾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 아이의 마음을 열려고 선생인 나는 시간만 나면 안아 주곤 한다. 특히 울 때 잘 안아준다. 잘 했건 잘못했건. 처음엔 그치는 시간이 길더니만 점점 짧아졌다. 난  습관적으로 무심히 안아준 날이 있었는데  나를 꽉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 그 아이.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 아이는 자기를 힘센아이라 한다.

  어린이집을 출근한 뒤 한 달이 좀 지났다. 주로 4살 아이들이 많은 그 곳에는 상상의 마술이 통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의 세계에 빠지면 나도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하고 푹 빠지곤 한다.

  어느날 가영이라는 아이가 화장실에 앉아서 나의 양말을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서 나올때 좀 헤어진 부분이 터진 것이다. 난 부끄러워서 손으로 살짝 가렸더니 그아이 하는 말

  " 선생님도 엄마한테 해 달라고 하세요."

  "  나는요 엄마한테 뭐든지 해달라고 하면 다 해줘요."

 선생님의 엄마는 할머니라는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래 엄마다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엄마, 그 아이가 생각하는 엄마는 뭐든지 다 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도와주려 하는 맘이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을 한 그 여자아이. 아직도 씩 웃으며 했던 그 말이 생각난다. 

  나의 엄마, 아직도 약간은 엄마를 원망하는 점이 조금은 남아있기에 가끔 친정에 가면 엄마에게 날 왜 맏이에게 시집을 보내가지고 엄마도 맏이면서 내가 시집살이가 이런줄 어떻게 알았겠어 엄마가 미리 여러가지 알아봤어야지 난 그때 엄마만 믿었는데. 나의 이런 투정을 받아주시는 엄마가 아직 살아있어서 좋다. 참 속도 많이 썩혔는데. 오늘 저녁 내 딸 호정이는 내가 바르는 로션을 똑 같이 바르고 잔다.

 한 때는 흩어진 옷들을 가지런히 놓고 싶어 몸부림치고 눈물을 억수처럼 쏟아야 했다. 걸음은 비틀거렸고 흔들리는 길위에 내 마음을 놓아 보았다. 못 견딜 만큼 누구를 붙잡을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사이로 술이 친구로 남았다. 내 마음을 그로 인해 보여줄 수 있었고 그는 위로 할 친구들을 모아주었다. 마음은 아팠으나 나에게 솔직했고 나의 모습을 보았으며 친구들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기도 했다. 이기의 탈을 하나씩 벗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로 인해 시를 쓴 것은 아니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표현해 보고만 싶었다. 그랬었다. 그 때는 서툰 것도 몰랐다. 그냥 내 생활의 일부라고나 할까? 그런것 이었다.

 이제는 옷들을 가지런히 놓았고 단추도 제자리에 끼우니. 행복이 찾아 왔다. 하지만 나의 감성은 점점 메말라지고 친구에 대한 그리움도 주춤해 졌다. 한동안 술이 필요 없었고 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여유롭게 지내고 있다.

 시장의 떨이 굴을 사다가 풀어 놓고 보니 남편이 냄새를 맡고 냉장고에 술이 있냐고 물었다. 굴을 초장에 찍어먹으며 나의 몸이 서서히 풀리고 단추가 죄어옴을 그제서야 느꼈다. 나의 감성이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느 유명한 시인은 술을 좋아 했다고 했나. 이제야 좀 알것 같다. 슬픔과 기쁨의 감성에 젖은 때를 그리며 한잔 한잔 술은 늘어갔을 것이다. 누구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한 친구가 생각난다. 술을 그렇게 마시는 친구는 감성을 일깨우고 싶은 간절함에 마셨고 말린 친구는 실속을 차리라하고 술을 그만 마시라고 하더니만 시는 잡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행복의 안정된 자리는 시가 가지는 감성의 풍부함에 고개를 숙여야 함을  조금씩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