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간동에 위치하고 있는 갤러리 현대에서 7월4일까지 김종학 화백의 '설악의 사계'전이 열리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금호 미술관에서는 김화백이 평생동안 수집하며 조형적 안목을 얻었던 고가구와 민예품을 전시하고 있다

뉴욕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동경미술대학교수를 지냈던 그가 세상을 등지고 설악산에 들어간지가 올해로 25년이 되었다

1980년경에 삶과 작품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생을 포기하고자 설악산 폭포 위에 섰다가 설악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거기에서 둥지를 틀었다

젊은시절에 앵포르멜과 팝아트에 심취하여 추상화를 했으나 설악산에 정착하고 부터는 지금까지 자연과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구상으로 회귀하였다

그의 그림은 설악산과 주변의 풍경을 대상으로 하여 그 속에서 숨쉬며 살고 있는 산새들과 풀벌레,이름모를 들꽃에 이르기 까지 강력한 원색과 힘찬 붓질로 원시적인 건강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설악의 사계절을 담은 이번 전시회에 40여점의 작품이 출품 되었는데 설악의 숲과 계곡에 피어난 꽃과 들풀,그 사이를 누비는 나비와 새들,눈부시도록 깨끗한 설원과 산 아래로 멀리 펼쳐지는 쪽빛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벚꽃만개나 개나리 같은 작품은 꽃모양의 무수한 반복을 통하여 추상적 조형미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호박꽃이나 할미꽃,엉겅퀴꽃을 보면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그림의 맛이 무엇인지를 잘 느낄 수 있다

김종학 화백의 그림은 약간은 거칠고 화려하면서도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1점을 구입해서 거실에 걸어두면 집안 분위기를 바꿀 수 있고 긴장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인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 때문인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인데 내가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동안에도 80세가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며느리와 딸,손주며느리 까지 함께 와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다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현대 옆에 있는 금호 미술관에서는 김화백이 인사동이나 장안평등을 다니며 오랫동안 수집해온 목기와 민예품 70여점을 선 보이고 있다

나무로 만든 고가구에서 세월의 연륜과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아름답고 다양한 무늬와 천연의 원색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모양을 만들어 내는 민예품들 속에서 조형의식과 미적감각을 찿아내고 키웠다고 한다

김환기 화백은 백자,송영방 화백은 석물,김종학 화백은 목기와 민예품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고미술을 통하여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민족의 미의식과 전통을 탐구하고 이어 받고자 하는 그 정신을 높이 살 수 있을 것이다

성북동에 가면 성북초등학교 정문옆에 간송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서울 한 복판에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었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고 숲속의 왼편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미술관 주변은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와 토종풀이 자라고 있다

이 곳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의 두 차례에 걸쳐서 소장미술품을 중심으로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나는 지금까지 10년이상 빠지지 않고 전시회에 가 보았는데 갈 때마다 주옥같은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고 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고 있다

이달 16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1백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겸재 정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겸재전'이다

전시회가 열리는 첫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우리 가족은 아침 일찍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서 갈 수가 없다는 중3인 아들을 겨우 달래서 간송미술관으로 향했다

18세기 정조대왕 시대의 문예부흥기의 중심에 자리 잡고있는 겸재는 사의적인 중국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산수를 직접 찿아가서 보고 그리는 진경산수 시대를 열었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 미술이 가야할 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바위산과 토산의 조화로운 배치,필묘와 묵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아름다운 우리의 산천을 개성있게 표현하였는데 그림은 생명력이 넘치고 속필을 사용한 작품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으며 깊은 사유와 철학이 담겨있다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대표적인 산수화 뿐만 아니라 작지만 세밀하게 그린 화조및 서을 근경의 경치를 그린 그림이 많이 출품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겸재 그림속의 사물의 배치나 원근법을 보면 실경 보다도 그림이 더 아름다울 수 있슴을 보여주며 그 기법 자체도 상당히 현대적임을 느낄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일제시대에 종로일대의 상권을 장악한 10만석 부호가의 재산을 물려 받은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그 많은 재산을 탕진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까지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일본이나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되찿아 와서 모아 놓은 수십점의 국보와 보물급을 포함하여 1만여점의 서화와 3천여점의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이자 최대인 사립미술관이다

간송은 1934년에 성북동에 1만여평의 땅을 사들여 북단장을 개설하고 그 안에 193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워서 엄청난 질과 양의 문화재를 보관하였는데 그것이 오늘날 간송미술관이 되었다

1962년에 간송이 타계하자 후손과 후학들은 1966년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고 보화각을 간송미술관으로 바꿔 축적된 자료를 토대로 하여 전시회 때마다 '澗松文華'를 발간하고 짧게 깍은 머리에 항상 두루마기를 입은 최완수 선생님이 학예연구실장을 맡아 우리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는 간송학파를 이루고 있다

재산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재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으며 모은 돈을 제대로 쓴 경우가 드물고 어려운 법인데 간송 선생님 이야말로 일제치하의  그 어려운 시기에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자 가장 가치있게 돈을 쓰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은 프랑스의 규장각 도서에 대한 처리 과정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역사는  문화를 보존하고 가꾼 시대와 사람을 가장 위대하게 기억한다

우리 역사에 등장한 수 많은 인물을 평가할 때 여러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간송 선생님은 더욱 소중하고 높이 평가 되어야 할 분인데 우리가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

화창한 봄날 혹은 낙엽지는 가을날에 아이들 손을 잡고 간송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가보자

거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가슴 뿌듯한 자신감을 얻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한국화가 고 박생광 (1904~1985)화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박생광 화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기인 70대 후반에 이르러서 우리민족의 전통에 기반을 둔 채색화를 살리면서 현대적인 조형양식으로 발전시켜 새로운 예술세계를 구축하신 분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생애을 돌아보며 작품세계를 재조명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space*c(547-9177)에서 6월12일 까지 일정으로 채색화를 중심으로 50여점을 전시하는 색,그대로 박생광전을 열고 있으며 경기도 수원에 있는 이영미술관도 금년 하반기에 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전이라는 대규모 회고전을 계획하고 있다

박생광 화백은 그의 놀라운 예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가 27여년을 일본에서 보냈고 동양화가 이면서 수묵 중심에서 탈피하여 화려한 채색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되어진다 

박화백은 화가로서의 교육과 수련을 일본에서 받았고 1974년에는 일본미술원의 원우로 추대 되는등 일본화단에서 확고히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일본화가가 되지 않았고 조국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작가 정신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유불선 사상에서 무속신앙에 이르기 까지 빨강,노랑,파랑,검정,흰색의 오방색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진채화를 성립시켰으며 고구려 벽화와 불교의 단청,무속의 화려한 옷과 도구등을 형상화 시켜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미를 거침없이 표현하였다

표현방법도 민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대담한 필치와 굵은선을 사용하여 추상적인 경향을 도입하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눈빛은 삶의 고단함과 왠지모를 쓸쓸함과 회한이 서려 있으면서도 강인한 끈기와 단아함이 엿보이는 생명력을 느낄수 있다

그의 나이 78세인 1981년에 열린 백상기념관에서의 개인전은 그때 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뛰어 넘어 어떻게 저토록 철저하게 작품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우리민족만의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팔순을 넘게 사셨으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늘 고적하고 가난함 속에서 살면서 끝없이 도전하면서 구도자적인 정신세계와 이국적인 장식성을 결합하여 새롭고 개성 넘치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해 낸 것이다

박생광 화백은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은 그 민족의 전통위에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우리 그림의 정체성이 고민되고 많은 화가들이 서구에서 유행되는 화법이나 기법을 뒷북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도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화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족적 자부심과 긍지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

탁월한 창조성과 변화를 시도했던 피카소도 말년에는 젊은날의 반복수준을 넘어 서지는 못했다

나는 오랜시간 동안 전시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80년대 이후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사물의 형상과 배치,색채를 구사하는 품격,작품에 담긴 정신성은 사람이 아닌 신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게 만든다

홍대에서 함께 강의를 한 적이 있는 천경자 화백은 박생광 선생님 곁에만 있으면 항상 마음이 포근하고 따사로우며 나이가 드실수록 동심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아서 감격스러웠다고 술회한다

돌아가시기 직전인 85년에 열린 파리 그랑팔레의 한국현대미술전은 박생광 화백의 특별코너를 마련하여 서구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작년에 열린 스페인 유고전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남는 큰 아쉬움은 80의 노년에야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작품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 기간이 너무나 짧고 더구나 후두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기에 계획했던 '안중근과 항일 운동사''단군신화도'등을 남기지 못한 점이다

박생광 화백은 이미 20년전에 돌아가셨지만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서 진정한 우리것이 무엇인지 찿아내서 그림을 그리되 그 예술혼을 최후까지 불살라서 작품을 남겨 놓아 후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마음의 살을 찌워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