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다시 집값 오르는 것 아니야?”

요즘 이런 질문을 하는 동료 기자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집값이 좀 떨어지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질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연말쯤이면 집 가진 사람들이 눈물을 쏙 뺄 상황이 올 것이니 내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사실 단정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오만과 착각일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미래 예측은 신의 영역일 것입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세계적인 집값 하락을 경고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잡지의 권위에 눌려 감짝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를 자주 본 독자라면 비웃음을 흘릴 것입니다. “또 거짓말 하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미 2~3년 전부터 주택 버블론(論)에 관한 기사를 수시로 썼고 그 결론은 집값은 곧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각종 수치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동원해 준엄한 경고를 하지만, 상당수 이코노미스트 독자들에게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 타령으로 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 전망은 어렵고 맞출 확률이 낮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감히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를 수 있는 요인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 정책의 ‘눈사태 효과’가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2년 사이에 쏟아져 나온 정책은 줄잡아 50여개가 넘습니다. 대부분의 정책이 유예기간이라는 게 있다 보니 정책을 발표해도 당장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정책의 타임래그 효과라고나 할까요. 오히려 상승세는 정부의 대책이라는 게 호재로도 해석됩니다. 가령, 재건축 규제가 강화되니까 규제를 빗겨가는 재건축 단지는 오히려 가격 호재라는 식으로 해석이 됐습니다. 이때문에 정부는 좀 더 강도가 센 정책들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별로 효과를 내지 못했던 정책들이 이제 유예기간을 지나 서서히 효과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다가 종합부동산세 도입, 부동산 실거래가 과세 제도 등의 제도도 내년이면 도입됩니다. 정책들이 본격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때가 머지 않았습니다. 상류에 쏟아졌던 소나기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 않지만 빗물이 하류에 모이면 홍수가 돼 둑을 무너뜨릴 수도 습니다.

둘째, 투자심리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2~3년간 ‘1보 후퇴·2보 전진’의 집값 상승패턴에 대한 강렬한 기억 때문에 아직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집값 하락세, 침체가 6개월이상 계속된다면 집값 상승에 대한 기억은 망각될 것입니다. 오히려 집값 침체 혹은 집값 하락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지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락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면 빚을 내서 집을 샀던 사람들이 투매에 나설 가능성이높습니다. 물론 투매는 이른바 단독·연립과 같은 주변부 상품과 비인기지역에서 시작되겠지만 그것은 인기지역·인기 상품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셋째, 정부가 부동산가격을 잡겠다는 의지가 과거의 어느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사실 김대중 정부만해도 집값을 잡겠다고 앞으로는 큰 소리를 쳤지만 뒤로는 다른 정책을 폈습니다. 당시 주택관련 관료들은 “주택경기가 우리 경제의 성장의 마지막 엔진”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고 부동산 안정대책이라면서 한편으로는 부동산 투기촉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일부 관료들은 부동산 가격 급락이 가져올 부작용 때문에 규제완화를 염두에 두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정책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나 지지 기반을 고려한다면 그런 정책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무주택자들이 집값 하락을 염원하고 있고 이는 정책에 반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넷째, 공급물량 과다 현상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서 새로 입주한 아파트 10가구 중 3~4가구는 비어 있고, 전국에서 팔리지 않은 미분양 주택도 5만여 가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른바 연립·오피스텔·다가구주택등 틈새 상품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경매에 넘겨지는 다가구 주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틈새상품의 급락은 결국 주류 상품인 아파트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다섯째, 통계의 착시 현상이 탄력적인 정책운영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고 아우성이지만 정부 통계로는 별로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가 현장에서 집값이 급등할 때는 별로 오르지 않는 것처럼 나타납니다.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탄력적으로 정책을 펼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이 버블 붕괴기의 일본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당시 일본 정부는 양도세 인상, 토지거래 감시구역제도 등 각종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이라는게 타임래그가 있어 이를 비웃듯이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더 커졌습니다. 상승장에서는 악재도 호재로 해석됩니다. 각종 대책에도 집값이 계속 올라 국민의 불만이 비등하자 일본 정부는 1990년 3월에는 부동산 대출을 규제하는 ‘부동산 관련 융자의 총량규제’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 제도를 도입을 주도했던 사람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왔던 여러 대책과 맞물리면서 몇달 지나지 않아 부동산 버블이 붕괴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