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학교다. 엄마는 선생님이 된다. 사교육 열풍 속에서 엄마들이 찾아낸 대안은 홈스쿨링이다. 학원도, 걸핏하면 등수를 매기는 수많은 평가도, 그 흔한 인증시험도 훌훌 털어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실력은 쑥쑥 늘었다. 엄마 선생님들은 어느새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고수 맘'이 됐다. 홈스쿨링의 달인들이 전하는 노하우.

독서·역사논술 홈스쿨링 노주원씨 

정진호(송파초1) 어린이는 학교에서 유명한 책벌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4~5권은 기본,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니 담임교사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송파초등학교는 '독서인증제'를 실시 중인데 1년에 75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면 '특급' 인증을 받는다. 진호는 당연히 특급. 75권이 아니라 올해에만 130여 편의 독후감을 썼다. 진호는 동네에서 '글 잘 쓰는 아이'로 통한다. 독서퀴즈대회, 독서감상화 그리기 등 책 읽기와 관련된 상은 유치원 때부터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요즘에는 역사에 부쩍 관심이 늘었다. 진호의 손에는 한국 역사는 물론 세계사와 관련한 도서가 떠나질 않는다. 언제부턴가는 직접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보지 않고도 세계지도를 뚝딱 그려낸다.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도 장난감 대신 사회과부도를 들고 나간다니 말 다했다. 독서량이 많다보니 배경지식과 어휘력이 풍부해진 것은 당연지사.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요약하는 실력이 또래에 비해 뛰어나다. 다섯 살배기 동생 서윤이도 책벌레이긴 마찬가지다. 그림책을 하루에 10여 권씩 읽어낸다.

책읽기로 논술과 역사교육을 잡아낸 엄마 노주원(35·송파구 송파동)씨는 진호가 여섯 살 때 직장을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니 책을 읽혀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아무리 사다 꽂아둬도 아이들이 읽지를 않았다"는 게 엄마가 직접 책읽기를 가르치게 된 계기다.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노씨는 지난 2005년 한우리독서논술에서 진행하는 6개월간의 독서지도사 과정을 마쳤다. 처음에는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책은 한우리에서 선정하는 우수 도서 목록과 인터넷 육아 사이트를 통해 골랐다. 우수도서 목록도 좋지만 우선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책을 고르란 것이 노씨의 조언이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거나 중고 전집 매장에 들러 직접 구입하기도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잠자기 전 머리맡에서 매일 책을 읽어주자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진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본격적인 독서교육을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으면 반드시 독후 활동을 하게 했다. 낱말사전을 만들어 찾기 게임을 하거나 책 내용을 역할극으로 표현해보기도 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고 찾은 단어로는 반드시 짧은 글짓기를 하게 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시간 배분을 적절히 하고 독후활동은 되도록 아이가 특별히 재밌어하는 책을 사용해 흥미를 잃지 않게 했다. 요즘은 1주일에 한 번 동네 친구들 몇몇이 진호네 모여 책읽기와 독후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 노씨는 "책의 주제를 알려주기보다는 아이들이 생각하고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주제를 유추해가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초등 저학년 수준에 필요한 지식은 책 속에 다 있었다. 진호는 일찌감치 학원교육을 시작한 아이들과 비교해도 학업에 뒤처짐이 없다. 역사는 진호가 좋아하는 전쟁 이야기를 활용했다. 전쟁사를 중심으로 책을 읽히고 지도를 그렸다. 진호는 지도 위에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를 공격했는지 화살표를 그려가며 자연스레 역사를 익혔다. 고구려, 백제, 신라, 소련 등 지금은 없는 생소한 나라 이름을 볼 때마다 질문이 이어졌다. 수학은 엄마와 가베 놀이를 하며 숫자와 공간 개념을 익혔다. 영어는 학습지와 스토리북을 활용했다. 학원 한번 가본 적 없지만 진호는 튼튼영어의 주니어 평가인 LATT에서 일곱 살에 7급 85점, 여덟 살에 6급 74점을 받았다. 전국 평균을 웃도는 점수에 보통 2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치르는 수준의 시험이었다.

노씨는 "초등 저학년까지는 독서만으로도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에 충분하고 사교육의 필요성을 전혀 못 느낀다"며 "아이들을 학원 몇 곳에 보내는 것으로 '뭔가 하고 있다'며 안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마가 함께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오디오북 영어 홈스쿨링 권희정씨 

김영찬(푸른별온누리초4) 어린이는 외국 경험도, 학원 한번 다닌 적도 없지만 영어실력이 뛰어나다. 일상 회화는 물론이고 CNN이나 미국의 토크쇼 프로그램을 듣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 해리포터 시리즈 등 또래에 인기 있는 책은 대부분 원서로 읽었다. 영찬이의 영어실력을 키워준 선생님은 엄마 권희정(44·일산동구 백석동)씨다.

동시통역사로 일하는 권씨는 애당초 학원이 미덥지 못했다. "커리큘럼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 원어민 교사도 얘기를 나눠보면 교수 실력을 검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이에 권씨가 결정한 것이 홈스쿨링이다. 주변의 또래 아이들이 하나같이 영어 학원을 다녔지만 권씨는 '조급할 필요 없이 차근차근 가자'고 결심했다. 언어는 음성이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판단에 처음 선택한 것은 DVD였다. 영찬이는 여섯 살 때부터 DVD 만화, 영화와 디즈니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에 2~3시간씩,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아이가 어느 정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으면 중간 중간 화면을 멈추고 "방금 주인공이 뭐라고 했지? 한번 따라 해볼까?" 하며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대답을 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이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권씨는 "굳이 학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재밌어하는 것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게 좋다"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는 오디오북을 들려줬다. 화면에 익숙한 영찬이가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꾸준히 오디오북을 틀어줬다. 굳이 집중해 듣지 않더라도, 다른 것을 하며 놀더라도 영찬이의 주변에선 배경 음악처럼 오디오북이 하루에 2~3시간씩 꼭 틀어져 있었다. 어느 날인가, 오디오북을 끄자 레고를 갖고 놀던 영찬이가 "듣고 있는데 왜 끄냐"고 했다. 성공이었다. 오디오북에 재미를 들인 영찬이에게 MP3 플레이어는 최고의 장난감이 됐다. 70기가 용량의 플레이어에는 오디오북이 꽉 찼다. 영찬이는 자투리 시간만 나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게 습관이 됐다. 하루에 3~4시간은 기본이다. 지금껏 영찬이가 들은 오디오북은 600여 권.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오디오북은 죄다 섭렵했고 지금은 아마존을 이용해 외국에서 구해 조달한다.

읽기와 쓰기는 3학년이 되면서 시작했다. 영찬이가 알파벳을 처음 접한 것도 이때다. 읽기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자 원서와 함께 오디오북을 듣게 했다. 듣기를 더 좋아하는 영찬이였지만 "함께 보면서 들어야 듣게 해준다"는 엄마의 불호령에 책과 함께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다. 3~4개월 만에 읽기가 익숙해졌다. '듣기'라는 탄탄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찬이에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읽기 위한 도구였다.

유행처럼 치르는 영어 인증시험 공부는 일부러 시키지 않았다. 권씨는 "시험을 치르기 위한 영어 공부는 아이들이 언어를 익히는 잠재력을 죽이는 최악의 공부법"이라며 "인증시험은 원하는 능력을 고루 갖춘 후 필요할 때 몇 달만 공부하면 충분히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증시험을 치르는 대신 내년쯤에는 PSAT(미국의 진학 적성 예비시험)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중학교를 미국으로 보낼까 고려 중이기 때문이다.

권씨는 "주변 엄마들을 보면 불안감에 너도나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빠른 성과를 기대하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경우는 드물다"며 "오디오북을 활용한 홈스쿨링은 더디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영어 공부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디오북을 고를 때는 "되도록 미국에서 직접 만들고 녹음한 것, 페이지를 넘기라는 지시 등이 없는 순수하게 오디오북으로만 제작된 것"을 선택하라는 게 권씨의 조언이다. 권씨는 현재 자신의 영어 홈스쿨링 노하우를 전하기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fluently.kr)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