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wi님의 부자마을 입니다.

부제목이 없습니다.



  • today
  • 2
  • total
  • 86986
  • 답글
  • 4782
  • 스크랩
  • 133

블로그 구독하기



미국에 와서 아메리카 인디언을 말하다.

 

미국에 와서 아메리카 인디언을 말하다.

2000년 11월 17일 뉴욕 불광사 초청법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

 

 

가을을 흔히 수확의 계절 혹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합니다. 일찍이 뿌리고 가꾼 자만이 거둘 수 있습니다. 수확의 계절에 여기 오신 분들은 무엇을 수확하십니까? 수확할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살펴보십시오. 뿌리고 가꾸지 않은 사람은 가을이 와도 거두어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수확이나 결실의 표현은 어디까지나 인간 본위입니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거두는 일이 아니고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여름날 뜨거운 햇볕 아래서 가꾼 이삭과 열매와 잎과 뿌리를 전부 나누어 줍니다. 곡식과 과일과 채소를 무상으로 다 나누어 줍니다. 자연이 돈을 받거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열매를 곁에서 거든 사람들이 받는 것이지, 자연 자체는 아무 대가없이 그냥 나누어 줄 뿐입니다.

이와 같은 자연의 은덕을 노자는 다음과 같은 시로써 표현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생성하고 양육하지만

자신의 소유로 삼지 않고,

스스로 이룬 바 있어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며,

온갖 것을 길러 주었으면서도

아무것도 거느리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현묘의 덕玄德이라 한다.

 

다 나누어 줄 뿐 아무것도 차지하거나 거느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결코 뽐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덕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우리는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위대한 교사라고 일컫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경험한 일입니다. 잘 아는 분의 병문안을 갔다가 오는 길이었는데, 공터에 잔디가 있고 토끼풀이 많이 돋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여섯 살 된 남자아이가 토끼풀을 뜯어서 한 손에 가지런히 들고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주려고 그렇게 토끼풀을 뜯었는가 물었더니 “여자친구에게 주려고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 같았습니다.

아이가 귀여워서 저도 그 아이 곁에서 “나도 여자 친구 주어야겠다.” 하며 한참 토끼풀을 뜯다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뜯은 토끼풀에는 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자기가 뜯은 토끼풀에서 꽃을 세 송이 골라 저에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근래에 제가 사람을 통해서 가장 감동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눔이란 이와 같이 이름을 드러내거나 생색을 내지 않고 사소한 일로써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나눔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현대의 문명과 문화는 본질적으로 물질적이고 감각적입니다. 그리고 매우 표피적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벌어들이는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예쁘고 잘났는가 하는 것이 성공의 척도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물건과 재산, 잘생긴 얼굴만으로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북인도 라다크 지방은 인도에서도 인구가 가장 적은 오지입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입니다. 티베트에 가깝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티베트 문화를 수용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서구인들이 라다크로 몰려들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헬레나노르베리 호지가 쓴<오래된 미래>라는 책도 나왔습니다.

서방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 라다크 노인이 말합니다. 물론 가난하게 사는 노인입니다.

“나는 바깥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식탁과 의자와 카펫을 갖고 편안하게 산다고 들었다. 나는 쌀과 설탕 등,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보리떡과 죽밖에는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가 다 빠져서 많이 먹을 수도 없다. 당신들은 좋은 옷을 입었지만 보다시피 내 옷은 다 해진 누더기다. 그런데도 바깥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있다고 나는 들었다.”

기자가 노인에게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노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기도하고 배우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오.”

노인은 불행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움찔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메시지입니다. 물질에 혼을 다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자질구레한 도구들에 혼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조용히 기도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 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이것을 한 노인의 이야기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반문해야 합니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내가 행복한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지위나 많은 재산의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간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 얼마큼 하나를 이루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핵심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입니다.

일찍이 이 땅에서 살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는, 그 본질이 지극히 영적이고 정신적입니다. 현대인들의 문화와 문명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인디언들의 정신세계는 본질적으로 영적이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이웃들에게 얼마나 봉사를 했는가, 또 얼마나 많이 나누어 주었는가가 인디언들의 성공 척도입니다.

한국에도 인디언들의 사상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소개하고 있는데, 젊은 증에서 특히 인디언들의 사상에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왜 21세기에 인디언들의 정신을 읽어야 하는가? 외부에서 침입한 백인들이 평화롭게 살던 원주민드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죽여서, 이제는 그 부족들이 거의 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디언들의 사상이 오늘날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는가?

인디언들은 누군가에 선물을 줄 때, 전혀 생색내지 않고 상대방의 눈에 뜨는 곳에 말없이 놓아두고 간다고 합니다.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을 전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교적인 표현을 빌리면 ‘무주상보시無主相布施’입니다. 베푼다는 생각 없이 베푸는 것입니다.

그들은 또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나이 든 노인, 홀로된 부인과 고아들 누구보다도 먼저 돌보는 것이 부족의 전통입니다. 주거지인 야영지를 옮길 때는 일손이 모자란 사람들의 천막부터 먼저 옮겨 세워 줍니다.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더라도 먹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제한합니다. 왜냐하면 지기들뿐 아니라 자손들 까지도 먹어야 하고,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씨를 말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살생하기 전에 반드시 “미안하다. 내가 부득이하게 너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한다. 양해해 달라.”라고 이야기를 한 뒤 사냥을 합니다. 그리고 사냥을 한 후에는,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가장 필요를 하는 집 문 앞에 슬쩍 놓아두고 갑니다.

인디언들에게는 열 가지 계율이 있는데, 그중 아홉 번째 계율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큰 부를 얻으려고 탐욕을 부리지 말라. 부족 중에 궁핍한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친 부를 소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인디언들은 많은 재산이 쌓이면 어떤 행사를 통하여 다 나누어 주는 부족 간의 질서가 있습니다. 또 마지막 열두 번째 계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의 인생을 사랑하고 완성하라. 그대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라. 지금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그리고 그대의 이웃에게 많이 봉사하기를 힘쓰라.”

이것이 이 사람들의 계율입니다. 생활 규범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미개인이고 야만인일 수 있습니까? 백인들의 우월의식, 또 미 대륙에 침입한 선교사들의 독선에 의해서 비롯된 오해입니다. 인디언들 자신은 더없이 선량하고, 자연 친화적이며, 가장 건강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았던 부족입니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영화들이 인디언들의 실체를 그런 식으로 왜곡했습니다. 모든 영화가 인디언들을 머리 가죽이나 벗기는 미개하고 잔인한 종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침략자인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사실 머리 가죽은 잔혹한 유럽인들이 벗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위 인종청소라는 말은 백인 사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그런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기독교 문명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백인들의 우월주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유럽에서 넘어와서 남의 땅을 점령한 것으로도 모자라 원주민들에게 온갖 박해를 가해 인종청소를 한 것입니다.

미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이야말로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물질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순수한 원주민들입니다. 여기서 원주민이라는 것은 때 묻지 않은, 바로 그 터전의 온전한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대문명은 완전히 중심을 잃었습니다. 유럽과 미국 할 것 없이 마찬가지입니다. 또 지구가 못 살겠다고 계속 털어 냅니다. 21세기, 새로운 세기의 벽두부터 미래에 대한 인류의 불안이 싹트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 무엇인가 변화가 있습니다.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편리하게 살면서도 현재가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비행기 타고 여행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울을 떠나서 유럽 쪽으로 가면 옛날과 달리 코스가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중국 상하이를 거쳐, 베이징 상공과 몽골의 수도 을란바토르를 지나서, 고비 사막을 넘어 러시아의 황량한 동토를 거쳐 갑니다. 그래서 우랄 산맥을 넘고 볼가 강을 지나서 갑니다. 한국에서 두 시간도 채 못 가서 몽골의 사막이 나옵니다. 무척 황량한 사막입니다. 몇 시간을 가도 사막입니다.

저는 그것을 내려다볼 때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 지구가 다 초토화되어 사막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 지구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잘못 길들여진 생활 습관을 고치지 않고 이대로 살아간다면, 몇 세기 안 가서 지구가 완전히 사막으로 변해 버리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열대우림과 숲이 다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흙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력입니다. 미세한 생물들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우리가 흙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무생물이 아닙니다. 무기물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농약이나 제초제 간은 독한 화학물질을 뿌리기 때문에 그 토양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이 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토양이 산성화된다는 것은 죽어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제가 절에 들어오기 전에 할머니한테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흙에다가 침을 뱉는 수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벌 받는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흙은 신성한 것인데, 추한 것을 흙에다 버리면 벌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좋은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얼마나 함부로 흙을 짓밟고 허물고 그럽니까? 소위 산업화되고 도시화되었다는 게 무엇입니까? 흙을 대지를 학대한다는 뜻 아닙니까?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자연의 거룩함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연의 존재에 대해서 지상의 어떤 종족보다도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만일 백인들이 침략하지 않고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이 지구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았을 것이고 끝없이 소모시키는 잘못된 산업구조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이 아름다운 땅,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땅이 주인을 잘못 만나 이 대륙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그 나쁜 영향권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현대문명은 크게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삶의 의미를 모릅니다. 또 대지와의 관계도 단절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뒤늦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들의 지혜에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디언들은 원래 몽고 계통이라고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느낀 것인데, 한번은 인디언 촌에서 자고 아침에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식당 종업원 아주머리늘 보고 그만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사람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골 아주머니들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아기들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이 인디언 아기들에게도 있다합니다. 그리고 언어도 몽고어에서 파생된 것 같은 유사한 말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근감이 느껴졌습니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인디언 기도문> 한 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위대한 가족에게 드리는 기도문’입니다.

 

 

밤과 낮을 쉬지 않고 항해하는 어머니 지구에게

다른 별에는 없는 온갖 거름을 지닌

부드러움을 지닌 흙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소

 

해를 향하고 서서 빝을 변화시키는 잎사귀들과

머리카락처럼 섬세한 뿌리를 지닌 식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비비람 속에 묵묵히 서서

작은 열매들을 매달고 물결처럼 춤을 춥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하늘을 쏘는 칼새와

새벽에 말 없는 올빼미의 날개를 지탱해 주는

공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노래의 호흡이 되어 주고

맑은 정신을 가져다주는 바람에게.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소.

 

우리의 형제자매인 야생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연의 비밀과

자유와 여러 길들을 보여 주고

그들의 젖을 우리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들은 스스로 완전하며 용감하고 늘 깨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물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구름과 호수와 강과 얼음산에게,

우리 모두의 몸을 지나 소금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눈부신 빛으로 나무둥치들과 인개를 통과해

곰과 뱀들이 잠자는 동굴을 덥혀 주고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수억의 별들,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별들을 담고

모든 힘과 생각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또한 우리 안에 있기도 한 위대한 하늘,

할아버지인 우주 공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어떤 종족이 이렇듯 고마움을 전하겠습니까? 그저 기회만 있으면 허물고 착취하면서 수탈해 가려고 하지, 우리를 담고 있는 그릇인 이 자연에 대해서 인디언들처럼 이렇듯 고마움을 느끼는 종족이 없었습니다.

존재의 배후에 대해서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합니다. 현상은 나무로 치면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현상을 이루고 있는 배우를 생각하면, 우리가 함부로 허물거나 파괴할 수 없습니다.

쇼니족 추장 태쿰세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생활의 즐거움에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 잘못이다.”

나눔은 고마움에서 비롯됩니다. 나눔은 곧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상相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가.”라고 곳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 언제 누구를 도와주었다는 생각이 있다면 순수한 나누어 가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이, 그저 자신이 하는 일에 무심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의 자취를 불교 용어로 ‘상’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각의 자취와 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부처입니다. 한문으로 하면 ‘이일체상 증명제불離一切相 證明諸佛’입니다. 모든 상과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고 남과 기꺼이 나누어 가질 때, 내 마음이 뿌듯하고 흐뭇할 때, 그 마음이 상대방에게도 메아리칩니다.

서산 스님은 <선가귀감>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가 와서 달라고 하거든 분수에 따라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게 여김이 참 보시이다.

또 대승경전 가운데 <화염경>의 논리를 빌리면 이렇습니다. 누가 와서 나눔을 청할 때 이렇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내 복을 쌓는 밭이고 선지식이다. 내가 일부러 찾아 나서지오 않았는데, 나에게 복과 덕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고 있구나.”

다시 말해, 내 인간적인 기량과 그릇을 키워 주기 위해 나한테 찾아온 선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가르침을 만났을 때 우리 삶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불교만이 아닙니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바른 신앙생활을 하면, 그 사람 자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종교는 자기 변화의 길입니다.

주고받음은 우주의 리듬이자 흐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 대지와 공기와 햇빛과 바람, 나무와 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무상의 은혜와 보살핌을 받아 왔습니다. 지금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이 없으면 우리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통해서 채소를 가꾸고 농사를 짓는다고 해서, 어떤 대가를 크게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마실 때 물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운반하고, 배달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지, 물에게 직접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햇빛, 나무, 공기, 다 그렇습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무상으로 주지 않습니까?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의식주 모두 자연의 혜택 아닌 것이 없습니다.

특히 미국에서 풍요롭게 사시는 분들은 이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미국처럼 세상 사람이 다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동안 이런 은혜와 보살핌에 대해서 나누는 일로써 보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지구에 몸담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인간적인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하루에 한 가지라도 선한 마음으로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사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삶에 의미와 가치가 실리기 때문입니다.

                                                             

 

 

 

 

 



주제 : 여가/생활/IT > 책읽기

▲top


지금 있는 바로 그자리...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

 

석 달 동안 수행 잘 하셨습니까? 지난 결제일에 저는 이 자리에서 도량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곧은 마음, 직심(直心)이 곧 도량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디에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 정직한 마음, 분별과 집착을 떠난 평온한 마음이 도량입니다.

원래 도량道場 이라는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를 이룬 인도 보드가야의 ‘보리도량’에서 나운 것으로, 깨달음을 얻은 장소, 도를 이룬 장소를 가리킵니다. 흔히들 어떤 특정한 장소에 집착하여 꼭 그곳을 찾아가야만 기도와 수행이 이루어진다고 착각합니다. 이는 도량의 본래 뜻에서 벗어난, 비본질적인 관념임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면 가장 이상적인 도량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해인사 장경각의 법보전 양쪽 주련(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에는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원각도량하처, 원각도량이 어느 곳인가, 원만하게 깨달은 부처님이 계신 도량이 어딘가 하는 물음입니다. 현금생사즉시. 오늘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숨 쉬고 행동하는 이 현실 자체가 부처님 세계라는 응답입니다. 바로 그곳이 원각도량입니다. 즉 극락세계가 어디 먼데 있는 아니라, 2500년 전 인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몸담아 사는 그 자리가 곧 더없이 훌륭한 도량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절에 가면 보게 되는 주련 글귀들이 다 훌륭한 법문입니다. 부처님 경전에서 인용한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건성으로 구경하거나 장식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 내용의 의미를 알아 법문으로서 받아들이면 살아가는 데 치침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경험한 도량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0년 전 제가 처음 인도에 갔을 때 겪은 일입니다.

산치 탑을 참배하고 나서 아잔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산치 탑으로 가려면 뉴델리에서 급행열차로 14시간30분이 걸립니다. 그리고 다시 산치에서 아잔타까지는 보팔에서 뭄바이 행 열차를 타야 합니다. 보팔은 제가 그곳에 가기 5년 전(1984) 미국 기업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독가스 공장이 폭발하여, 2,500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도시입니다.

보팔에서 밤기차를 타야 하는데, 승차권은 있어도 좌석이 없다고 했습니다. 입석입니다. 그 다음 날도 좌석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하기에 하는 수 없이 그 기차를 타야만 했습니다. 인도는 단체가 아닌 개인이 여행하기에 교통수단이 아주 열악한 곳입니다. 20년 전의 사정이 그러했습니다.

겨우 열차에 올랐지만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습니다. 통로까지 사람이 꽉 들어차 다들 바닥에 앉거나 누워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살피다 보니 화장실 옆 통로 한쪽에 겨우 한 사람이 않을 만한 틈새가 눈에 띄었습니다. 인도의 열차는 객차와 객차 사이가 막혀 있고 창문마다 철책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자리 잡은 곳은 좌우로 두 개의 화장실이, 소위 인도식과 서양식이 마주하고 있는 출입구였습니다.

어쩔수 없이 바닥에 숄을 깔고 앉았습니다. 두 화장실 틈바구니에서 밤을 새울 걸 생각하니 무척 난감했습니다. 오기로 버티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때마다 역겨운 지린내를 맡아야 하고 배설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나는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계속해야 하나?’

처음에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정이 되자 문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부처님의 성지를 순례하러 나선 수행자가 아닌가. 옛날 구법승들은 오로지 두 발로 걸어서 그 험난하고 위험한 열사의 사막길을 건너 왔는데, 그래도 나는 항공기와 열차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승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먼지 바닥을 주저앉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한다. 똑같은 인간인 내가 저들이 견디는 일을 견딜 수 없다면, 나는 저들과 같은 인간 대열에도 낄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겪는 일을 나라고 못할 게 무엇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관념의 차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순간부터 화도 불만도 사라지고 마음이 더없이 평온해졌습니다.

그토록 혼잡한 열차 안이었지만, 그날 밤에는 당시 인도 여행 중에서 가장 맑고 투명한 의식 상태를 지닐 수 있었습니다. 그 화장실 앞에서 어떤 성지에서보다도 평온하고 순수한 의식 상태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6시 아잔타 석굴에서 가장 가까운 60킬로미터 거리의 잘가온 역에 도착할 때까지 저는 지극히 평온한 선열禪悅(선정에 들어 느낀 기쁨)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선정삼매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전날 14시간 반이나 기차를 탔고, 지난밤에도 8시간 반을 그 틈새에서 지냈는데 전혀 피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 화장실 앞 틈바구니가 저에게는 고마운 도량이었습니다. 그 어떤 선원이나 명당보다도 고마운 도량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지옥이 천당으로 변할 수 있고, 천당이 지옥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기도하고 수행하는 도량을 어떤 특정한 장소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도량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일터가 진정한 도량이 되어야 합니다.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도량이 없으면 세상의 물결에 휩쓸려 버립니다. 분별과 집착을 떠나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는 깨달음을 얻는 곳이 곧 도량입니다. 좌청룡, 우백호 다 갖춘 명당에 있어도 직심이 없으면 진정한 도량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도량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그대가 있는 바로 그 자리!

 

 

 

※ 2007년 3월 4일 법정스님의 "일기일회" 중에서

 



주제 : 여가/생활/IT > 책읽기

▲top


인연/ 피천득

 

인 연 / 피 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이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자근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의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마,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셀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 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이 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주제 : 문화/예술/오락 > 문학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