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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엘도라도를 꿈꾼다… ‘자박마니’ 3인의 도전4.기본적...

한국에서 엘도라도를 꿈꾼다… ‘자박마니’ 3인의 도전

국민일보 | 기사전송 2010/01/14 17:54



최창학- 1940년대 서울에서 가장 호화롭던 개인저택 ‘경교장’(종로구 평동)의 원주인.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 요청을 거절하다 광복이 되자 불이익을 피하려 이 집을 김구 선생에게 기증했다.

문명기- 1935년 사비로 전투기 2대를 구입해 조선총독부에 헌납한 인물. 일제는 이 전투기를 ‘문명기호’라 명명했다.

정명선- 1954년 당선된 제3대 자유당 국회의원. 국회에 금을 기부하며 “의원 배지를 금으로 만들자”고 제안해 금배지를 탄생시켰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일제시대 금광재벌들이다.

노다지, 그들은 아직 금빛 꿈을 꾼다 1930년대 한반도는 ‘엘도라도’였다. 국제 금값이 폭등하자 일제는 산금(産金) 장려 정책을 폈다. 남북한 전역에 금광이 3000개가 넘었다. 평북 운산광산은 40년간 금 80여t을 생산하며 세계 3대 금광에 꼽혔다. 일본이 당시 세계 5위 금 생산국이 된 것도 한반도 금광 덕이다.

평북 삼성금광(최창학), 경북 영덕금광(문명기), 강원 대명광산(정명선) 등 금광 개발로 세 사람이 엄청난 부를 누린 지 70여년. 국내에 남아 있는 금광은 사실상 1곳뿐이다. 전남 해남 은산광산이 연간 160㎏가량 생산한다. 이밖에 산금(山金)광 6곳, 사금(砂金)광 7곳이 있지만 연간 0.1∼3.3㎏을 캐는 탐광 수준이다. 한반도의 그 많던 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금은 있는데 돈 되는 금이 없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 자본과 광산 기술자들이 떠났다. 전체 광산의 90% 이상인 일본인 명의 광업권이 미 군정에 귀속되면서 대다수 금광은 휴광 상태에 놓인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한국 정부는 부산에서 ‘금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하며 금 생산을 장려했다.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광업 지원금이 들어온 것도 이 무렵부터다.

금광 재개발에 나선 이가 정명선. 남한 최대라던 충북 음성 무극광산과 충남 청양 구봉광산을 인수해 1952년 문을 열었다. 최고 월 60∼80㎏씩 생산하다 1972년과 1971년 나란히 폐광했다. 갱도 붕괴 사고, 광부 임금 인상, 금값 하락이 겹쳐 수지를 맞출 수 없었다. 1984년 영풍산업이 무극광산을 다시 열어 명맥을 유지했지만 1997년 역시 채산성 악화로 폐광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06년 경북 봉화군 금정광산 탐사를 접은 뒤 금광에서 손을 뗐다. 지난해 11월 은산광산을 인수한 대우조선해양 자회사 대우조선해양E&R 측은 “해외 금광 개발을 위한 기술과 노하우 확보 차원”이라고 인수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금이 남아 있는 곳은 많지만 엄청난 재개발 비용만큼 수익을 기대할 곳은 없다는 게 광산업계 중론이 됐다.

그러나 화려한 금빛은 여전히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땅 속 어딘가에 노다지가 있다고 믿는 이들은 국내 금 매장량이 40t(국내 1년치 금 소비량 수준)에 불과하다는 공식 집계(한국지질자원연구원 ‘2008 광산물 수급현황’)쯤 가볍게 웃어넘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는 금이 함유됐는지 알아보려 어디선가 채취한 광석과 모래를 가져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험분석 담당자는 “월 10여건씩 개인과 중소업체에서 분석 의뢰가 들어온다”고 했다. 금광 광업권 출원도 2006년 483건에서 2008년 1520건으로 급증세다.

지난해 국제 금 시세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국내 순금도 한 돈에 20만원을 넘어섰다. 1930년대에 버금가는 엘도라도의 조건이 갖춰지자 21세기 금광재벌을 꿈꾸며 금맥을 찾는 ‘자박마니’들이 분주해졌다. 자박마니, 정련하기 전의 생금(生金)을 뜻하는 우리말 ‘자박’에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 ‘마니’가 붙은 ‘금 캐는 사람’이다.

권용일 국회 도서관을 연구실 삼아 출퇴근하는 권용일(48)씨는 옛 문헌에서 금을 찾는다. 한국과 일본 장서가(藏書家)를 수소문하고 여러 도서관을 뒤져 수집한 금 관련 자료가 자택 대형 캐비닛 2개에 가득하다. 일제시대 광산 주소록, 총독부가 작성한 광산 현황, 금광별 채굴 일지와 갱내도 등이다.

-기록을 읽으면 금이 보이나요? “금맥은 위성과 항공 촬영으로 위치를 추정한 뒤 시추해 찾습니다. 200조원대라는 몽골 오유톨고이 광산은 100차례 넘게 시추했을 때 금이 나왔어요. 엄청난 돈이 들죠. 제가 찾는 금은 일제시대 캐다 남은 것이에요. 그러니 과거 기록만큼 좋은 자료가 없죠.” -지금은 다 폐광인데 금이 나올까요? “일제시대 그 많던 금광이 광복 후 일제히 문을 닫았어요. 수천개 금맥이 동시에 고갈됐을까요? 채광 자본과 기술이 없었던 거죠. 70년대 무극과 구봉광산도 채산성 때문에 닫았고요. 금은 캐던 곳에 있어요.” 문헌에서 지금도 금이 나오리라 판단되는 광산을 발견하면 구글 위성사진부터 열어본다. 이미 도시로 변하진 않았는지, 지형이 일제시대 보고서와 일치하는지 살핀다. 그리곤 작은 망치를 들고 찾아간다. 노두(지표에 노출된 광맥)로 추정되는 암석을 채취하고, 마을 노인들에게 폐광 전 얘기를 듣고, 관청에 들러 향후 개발 가능성을 묻는다.

이렇게 6년간 작업해 도전해볼 금광 리스트를 20개로 압축했다고 한다. 비교적 채굴이 쉬운 지형이라 적은 돈으로 덤벼들 수 있고, 따라서 실패해도 크게 망하지 않고, 성공하면 대형 금광에 뛰어들 자본금 정도 마련되리라 생각되는 곳들이다. 어디냐고 묻자 “주로 남쪽이죠, 강원도도 있고…”라며 얼버무렸다.

2001년 권씨는 경기도 시흥에서 컴퓨터 판매점을 운영했다. 중고 컴퓨터를 사고팔던 어느 날 컴퓨터 회로에 미량의 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금은 전기 전도율이 가장 높은 금속이다. 컴퓨터에서 금을 뽑아 보기로 했다.

못쓰게 된 컴퓨터를 분해할 때마다 이런 저런 약품을 사용하며 금 추출을 시도했다. 방법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 금에 관한 책을 읽었다. 컴퓨터를 100대쯤 분해했을 때 대당 금 0.5∼0.7g을 뽑을 수 있게 됐다. 신형 컴퓨터보다 구형 486PC에 많은 금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얻은 금으로 약 1돈(3.75g)짜리 손톱만한 금괴를 만든 게 2004년. 여기까지 금은 취미였다. 몽골인 친구에게 이 금괴를 보여주면서 취미는 인생역전의 꿈이 됐다. 친구는 그를 샤린골이란 몽골 사금광산으로 끌고 갔다.

-사금을 캤나요? “몽골 사금광은 비중선별법을 씁니다. 모래를 물에 흘려 무거운 금을 가라앉히죠. 그런데 아주 작은 금가루는 모래와 함께 흘러가버려요. 샤린골에서 선별기를 거친 모래 샘플을 가져다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에 분석을 맡겼더니 모래 1t당 1∼2㎏ 꼴로 금이 남아있다는 거예요.” -그래서요? “컴퓨터 가게를 접었죠. 사금광에서 선별하고 남은 모래를 사다가 금을 추출하려 했는데… 자금이 부족해 실패했어요. 그 뒤로 국내 금광 문헌조사를 시작한 겁니다.” 4년 전 구봉광산 답사 때 전직 광부 박모씨를 만났다. 폐광일 마지막까지 갱도에 있었다는 그는 “내가 파던 갱도 벽에서 콩알만 한 자연금이 촘촘히 드러났어. 덕대(광산 주인에게서 특정 갱도의 채굴권을 산 도급업자)에게 저것만 파고 나가자 했는데 사장이 (배수펌프) 스위치를 내리는(광산 문 닫는 마지막 조치) 통에 할 수 없이 그냥 두고 왔지”라고 했다. 권씨가 폐광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수영 인터넷 카페 ‘금 직접 캐보자’에서 필명 ‘금망치’로 활동하는 이수영(61)씨는 석유 시추 전문가였다. 1982년까지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 채탄 기술자로 일하다 정부 투자기업 코데코에너지에 발탁돼 인도네시아 마두라유전 시추선을 탔다.

한국의 해외자원개발 1호 현장에서 석유를 찾던 그에게 최계월 당시 코데코에너지 사장이 금 얘기를 꺼냈다. 인근 금광에서 광석 1t당 금 500g이 함유된 금맥이 나왔으니 칼리만탄에 가서 금을 찾아보라는 지시였다. 보르네오섬 남부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은 코데코에너지의 벌목사업 현장이었다.

1996년 칼리만탄에는 이미 13개 금광이 있었다. 광업권이 출원되지 않은 새 금맥을 찾아 조차지 30만㏊를 뒤졌다. 6개월 만에 가능성이 보이는 4곳을 보고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금광 투자 계획이 보류됐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네시아 금맥을 찾아다니다 2003년 귀국해 국내 금광에 눈을 돌렸다.

-폐광을 다시 개발하려는 건가요? “1984년 영풍산업이 무극광산을 다시 열 때 어땠는지 아세요? 폐광 후 12년이 지났으니 갱도에 물이 가득 차올랐을 것 아닙니까. 물 퍼내는 데만 3년, 펌프 전기료만 몇 억원 들었어요. 내가 찾는 건 완전히 새로운 금맥입니다.” 일제시대 이후 새로 찾아낸 금광은 은산광산뿐이다. 1995년 캐나다 광산업체 아이반호마인스가 우리나라 전역을 항공촬영해 이 금맥을 찾았고, 시추로 경제성이 확인돼 2002년부터 채굴했다. 이씨는 이곳이 기존 화강암 금광과 달리 국내 유일의 천열수(淺熱水) 금광이란 사실에 주목한다.

“천열수 금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됩니다. 일본 금광이 대부분 천열수예요. 국내 기존 금광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거죠. 화강암 금보다 품위(금의 순도)는 낮지만 더 지표에 가깝고, 더 넓게 분포됩니다. 경남·전남에 은산광산과 비슷한 지질환경이 많아요. 아직 발견 못한 천열수 금광이 분명히 더 있습니다. 그걸 찾는 거예요.” 심 사장 이씨가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 ‘금 직접 캐보자’의 회원은 5500명이 넘는다. 권씨가 운영하는 카페 ‘금광개발컨설팅’도 500명 이상 가입돼 있다. 이 자박마니들에게 ‘심 사장’으로 통하는 이가 있다. 그는 금맥 찾기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광업권 거래에서 노다지를 찾는다.

2006년 캐나다 다국적 광산업체 오리엔탈미네랄즈가 국내 법인을 설립하며 대대적 금광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무극광산, 전남 가사도광산 등 다수 금광의 광업권을 사들였다. 이 회사가 매입한 광업권은 대부분 심 사장 소유였다. 아이반호마인스가 개발한 은산광산도 그가 미리 광업권을 출원해 놓은 곳이었다.

광업권은 ‘광구’ 단위로 출원한다. 한 광구 면적은 대략 1㎞×2.5㎞. 광산 한 곳에 여러 개 광구가 있다. 광업권은 출원 뒤 2년마다 실제 개발 중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소멸된다. 토지 소유권과 달라 수백만원이면 적어도 2년 간 권리를 갖는다.

심 사장은 이런 광업권을 전국에 400개 이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광을 비롯해 개발할 만한 광산을 찾아 광업권을 출원한 뒤 개발자가 나타나면 권리를 판매한다. 오리엔탈미네랄즈의 금광 개발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부닥쳐 지지부진하지만 심 사장은 거액을 만졌다. 새로운 형태의 자박마니다.

3인의 도전 금을 연구한 지 근 10년, 생업을 접고 금을 찾아 나선 지 6년. 권씨는 “이제 준비가 끝났다”고 했다. 이달 중 강원도 한 금광의 광업권을 출원할 계획이다. 일제시대 미쓰비시사(社)가 채광하던 곳이라고만 할 뿐 역시 구체적 위치는 알려주지 않는다. 전라도의 한 사금광 발굴도 준비 중이다. 한번도 개발된 적 없는 처녀광산인데, 사금 퇴적에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지난해 11월 한 달간 몽골 고비사막을 돌아다녔다. 몽골에서 유연탄 캐는 국내 업체의 개발본부장을 맡아 탐광 및 시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에 머물 땐 주말마다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금맥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 유연탄은 생계고 금은 목표다. 심 사장은 광업회사 법인을 갖고 있다. 소문은 그가 예전에 광산 개발을 하다 크게 실패한 적이 있으며 언젠가 다시 금광에 뛰어들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엘도라도를 향한 믿음이 맞는지 틀리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이 도전이 언제 끝날지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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