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면 한 평 남짓한 초소에서 꼬박 12시간을 보내야 한다. 규정상 초소 반경 15m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출근준비가

번거롭다. 그나마 야간근무일 때는 좀 이르게 저녁식사를 하고 출근하기 때문에 좀 낫지만 낮근무일 때는 준비할 게 많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여섯시면 집을 나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시간에 아침을 먹고 온다고 하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새벽에 식사하는게 잘 안된다. 출근해서 아침,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준비할 것이 점심 도시락이다. 식사를 시켜서 먹을

수가 없다. 초소에 따라 가능한 초소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부대내에 초소가 있어서 불가능하다. 다음으로 아침식사거리인

데, 도시락을 두 개를 싸기는 좀 버겁기 때문에 주로 컵라면을 준비한다. 최근에는 아내가 매일 컵라면만 먹는것이 안쓰럽다며

일회용 국수를 사다 두었다. 그리고 간식으로 먹을 과일이나 과자류, 커피 등을 챙겨야 한다. 12시간을 혼자 보내려면 소일거리

가 필요한데, 대개는 노트북이나 DMB를 가지고 오지만 최근에는 갤럭시탭이란걸 가지고 오는 사람이 늘었다. 내 경우는 방통

대 교재와 전자사전이다. 가끔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 때는 일시적으로 일반 소설류를 가져가기도 한다.

   내 생활이 그래서인지 군겆질을 곧잘 하게되고 그 때문에 집에서 간식거리를 놓고 아이들과 다툼을 벌이는 일도 자주 있다.

우선 나와 아이들의 선호도가 달라 다툼이 없는 것으로는 빵과 에이스가 있는데, 아이들이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이다. 그

래서 어떤 때는 학교에서 받은 빵을 가져와 내게 주기도 한다. 반면에 아이들이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은... 없다.

  며칠전에 홈플러스에서 양갱 한 묶음을 사왔다. 열 개가 들었는데 밤양갱과 연양갱이 섞여있었다. 오후에 연수하고 둘이 있

을 때 입이 궁금해서 양갱을 먹기로 하였다.

"연수야, 양갱 하나 먹을래?"

"응, 난 이거!" 하며 밤양갱을 집어 들었다.

"에이, 나도 그걸 더 좋아하는데, 연수야! 너는 그냥 연양갱 먹어라, 이거도 맛있어!"

"싫어, 이게 더 맛있다구! 맛있는건 아빠가 드세요."

그렇게 밤양갱과 그냥 연양갱이 섞여서 10개가 있는 중에 밤양갱을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다음날엔가 보니 연양갱만 세 개가

달랑 남아 있었다. 치사한 녀석이 밤양갱은 다 먹었구나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늘 하던대로 아침으로 먹을 컵라면(일회용 국수)을 챙기려고 보니 이렇게 돼 있었다.

   나는 마흔아홉 살이고 연수는 초등학교 4학년, 우리는 부녀간이고 군겆질거리로 다투는 사이이다.
 

며칠전에 아내가 연수 친구인 영주네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그 내용은 연수가 선생님께 영주가 욕을 했다고 고자질해서 영주가 선생님한테 혼이 났고 그게 분해서 집에 와서도 한참을 울었다는 것이다.

"연수야!!" 아내가 연수를 불렀다.

"왜요?"

"오늘 영주가 욕했어?"

"어, 증인도 여섯명이나 돼!!"

"영주가 왜 연수한테 욕을 했지?"

"아니, 나한테 한게 아니라 자기 혼자서 교실로 들어오면서 씨~ 라고 했어."

"씨! 한게 욕이야?"

"아니~ 씨~"

"그래, 씨"

"아, 진짜! 씨하고 다음에 그 ~"

"아~ 알았어!!"

학교에서 욕한 애가 있으면 칠판에 적도록 돼있는데, 그걸 적는 친구가 영주이름을 빼고 적으니까 연수가 왜 영주는 안적느냐고 이의를 제기해서 영주의 이름도 적게 됐고 그걸 본 선생님이 영주를 혼냈다는 것이 사건의 전모였다.

아내는 연수에게 영주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얘기하며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처사가 옳은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은 다르기 때문이다. 연수의 행위가 해서는 안되는 고자질일까?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못된 고자질쟁이와 연수는 어울리지 않는다.

연수는 그냥 선생님의 지시를 정직하게 따랐을 뿐이다. 욕을 하는것은 나쁘다고 배웠기 때문에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며 영주가 한 욕을 인용할 때도 씨발이라고 못하고 씨~ 라고 하는 녀석인데 욕을 한 영주를 못본체하는것은 녀석에게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연수와 함께 마을로 걸어오다보니 마을 입구에 있는 택배회사 담장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다.

'담장에 주차하면 견인하겠습니다. -주민일동-'

"아빠, 견인이 뭐예요?"

"끌고 가는거야"

"왜요?"

"여기 차를 세워두면 불편하고 위험하기도 하니까, 너희들도 전에  차랑 부딪칠뻔 했다며!"

"아, 그랬지. 그런데 왜 견인 안해요?"

"어? 글쎄...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가?..."

아직은 연수는 그런 원칙속에 살고있다. 견인하겠다고 했으면 견인하는 세상에...

빨래를 걷다가 애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나서 거실로 나가보니 연수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진흙투성이라 어디 논에라도 빠졌나 싶은데,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오늘 완전이야, 아 완전히 진흙탕 속에 빠졌어"

"아니, 어쩌다가?"

현빈이가 대신 당시 상황을 얘기해서 들어보니 이랬다.

동네로 들어오는 길이 대략 직선 거리로 300미터 정도 되는데 길옆으로는 주로 논이 있고, 일부는 과수원이 있다. 반대편에는 미군 관련 시설이 있어서 담장이 쳐져 있다.

연수가 빠진 진흙탕은 논이었다. 도로가 논에 비해 높은 곳은 1미터 가량 높고 낮은 곳이라고 해도 30여 센티 정도는 높다. 그 때문에 안전을 생각해서인지 도로와 논의 경계에는 대략 30센티 높이의 시멘트 턱을 설치해 놓았다.

연수가 한눈을 팔다가 도로 밖으로 돌진을 했는데 바로 그 도로의 턱에 자전거가 걸려서 자전거는 멈추고 달리던 관성으로 연수는 도로 밖 논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었다.

"그래, 기분이 어떻더냐?"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참, 애들 생각 알 수가 없다. 저런 어린 녀석이 그 순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는게 상상이나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