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내용은 급한 일 처리 때문에 야근을 해야하니 아이들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학교가 종일돌봄 시범 학교로 지정되어, 지난 달부터 매일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다가 중간에 보호자가 데리러 오면 보내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7시에 돌려보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마침 아이들이 나오고 있어서 일부러 모른 체하며 아이들 앞을 지나쳐 오니 연수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아빠~ 왜 모른척해~"

"어, 연수 아니냐? 우연히 만났네~"

"에이~ 다 알고 있어, 아빠 우리 데리러 온 거쟎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언니는?"

"언니는 어떤 오빠가 자전거 빌려달라 그래서 지금 코사마트 쪽으로 갔어"

   연수와 함께 언니가 갔다는 방향으로 가보니 어떤 남자 아이가 현빈이의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고 현빈이는 그 뒤를 따라 뛰고 있었다. 조금 가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는지 남자 아이가 내리고 현빈이가 자전거를 타고 오려는데 그 남자 아이가 다시 자전거 바퀴를 잡고 뭐라하는게 보였다. 그 때 연수가

"언니, 아빠 왔어~ 이제 집에 가야돼~"

하니 남자 아이는 슬그머니 내빼고 현빈이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걸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와서 현빈이를 불러 앉히고 얘기를 했다.

"너는 네 것을 지킬 줄 모르니 앞으로 걸어다니든지 버스를 타고 다녀"

"아니, 다 그냥 좀 타자 그러면 타라 그래요~"

"친구한테 자전거를 못타게 하라는게 아니라, 네가 주인으로서 허락하는거 하고 친구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하는거 하고는 다르다는 걸 얘기하는 거야"

어쩌면 사소한 일이고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이지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을 두고 현빈이와 얘기를 하다보니 옛날 일들과 대비되면서 한 번은 틀을 깨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금광동 살 때 현빈이 친구 중에 연주란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자신의 뜻대로 현빈이가 따르면 아주 친하게 대해주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을 내면 사납게 대하던 아이였다. 그 때 현빈이에게 연주와 한 번 싸우라고 했는데, 결국 싸우지 못했고,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데, 어떤 덩치 큰 아이는 현빈이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시키기도 해서 돈을 가져가려는 현빈이에게 그 애와 한 번 붙으라고 했지만 역시 붙지 못했다.

   이쪽으로 전학을 오면서 현빈이가 자신감이 생긴것 같고 전에 비해서는 활발해 보여서 여기서는 좀 다른가 했더니 역시 이미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피동적으로 대하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내일 가면 무조건 걔하고 한 판 붙어. 맞고 오든지 때리고 오든지."

"예~"

그래놓고 어제 근무를 하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다. 공연히 학교 생활 잘 하는 아이를 이상한 성격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고, 별 문제 아닌 것을 나혼자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아이에게 반발심만 키우게 될 것도 같고...

처음 취학 통지서 나왔을 때 1년 뒤에 보냈으면 애가 동급생들보다 작지도 않았을테고, 그랬으면 어린이집에서처럼 학교 생활도 잘 했을텐데 하는 자책도 되고...

12시 반경에 현빈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무서는 곳이 전파를 잘 못 받아서 제대로 통화를 하진 못했지만 띄엄띄엄 들리는 말로는 그 남자애한테 싸울려고 했는데 그 남자애가 사과를 해서 싱겁게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집에 올 때 일부러 비를 맞아 가면서 모란까지 가서 베스킨라빈스31 가장 큰 걸 20,600원이나 주고 사와서 먹게 하고 얘기를 들어 보았다.

"그래, 자, 아빠가 그 남자애다. 어떻게 했어?"

"학교에 갈 때부터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계단을 올라갈 때도 싸울까, 그냥 말까, 그러다가 한 번 싸우기로 하고 걔를 찾아 두리번거렸어요. 아이들이 여러명 있었는데 걔는 저 쪽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 쪽으로 가서 어깨를 짚으면서 야,"

"어, 무슨 일이야?"

"아니예요, 아 뭐야~ 하면서 짜증냈어요~"

"아, 그래. 아 뭐야~"

"야, 너 때문에 내가 어제 우리 아빠한테 얼마나 혼나고 잔소리 들었는 줄 알아?"

"그랬더니?"

"그랬더니 뭐, 아 그랬냐? 미안하다. 다시는 안그럴께. 그러는 거야, 그래서 뭐 계속 싸우자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싱겁게 끝났지 뭐. 사실 난 한 판 붙을 생각이었거든."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는 싱거웠다고 했지만 내가 듣기에 전혀 싱겁지 않은 얘기였다. 집에서 나설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 얼마나 가슴이 두방망이질 했겠는가. 현빈아 고맙다~ 그리고 그 남자애도 고맙다 남자답게 사과해줘서, 근데 네가 실제로 붙었으면 현빈이한테 안됐을 거다. 현빈이는 권투를 1년 가까이 했거든...

   현빈이가 어제 문자를 해서 친구들과 스케이트장을 가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이 스케이트장 입장료

가 5,500원이라고 하였다.

시에서 청내에 설치한 스케이트장이 있는데 거기는 입장료와 장비 대

여료를 합쳐서 1,000원인데 5,500원이라니까 처음에는 믿어지질 않아서

현빈이가 1,500원을 잘못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친구에게 전

화를 해서 알아본 현빈이의 말은 확실히 5,500원이라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등교하는 현빈이에게, 그러면 친구들이 시에 설치한 스케

이트장을 몰라서 그런 것 같으니 현빈이가 아침에 친구들에게 시에서

설치한 스케이트장이 있는데 거긴 1,000원밖에 안하니까 거기로 가자고

하라고 하고, 현빈이에게 5,000원, 언니를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연수에

게 3,000원을 주어 학교를 보냈다. 내 생각에 아이들의 선택에 이의가

있을리가 없었고 당연히 1,000원짜리 스케이트장을 택할 것이었지만 그

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시에서 설치한 스케이트장의

시설을 둘러봤더니 넓기도 하고 휴게실이나 물품 보관소 등 아주 말끔

하게 정돈이 돼있었다. 만족스런 마음으로 현빈이에게 학교에서 스케

이트장으로 오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들

려왔다. 아이들이 모두 5,500원짜리 스케이트장으로 간다고 해서 현빈

이만 혼자 연수 데리고 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1,000

원 짜리는 실외 스케이트장이고, 5,500원짜리는 실내 스케이트장인데

오늘 날씨도 춥고 그래서 실내 스케이트장으로 가기로 했단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부모들과 내가 얼마나

다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실감이 되었다. 요즘 부모들은 그렇구나,

하긴 다들 나보다는 젊었을테니 나와 좀 다른게 당연하지, 그래도 차이

나야 얼마나 난다고...

5,500원짜리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옆에 비슷한 제품이 1,000원에 팔리

고  있으면 당연히 1,000원짜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평소에 합

리적인 소비에 대해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가르치는 나로서는 좀 난감

했다. 그리고 이런 난관은 아직 부딪혀보지 못한 것이다. 현빈이가 이렇

게 친구들과 놀러가겠다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좀 다른 사고를 가진 아

빠 때문에 친구들과 혼자 떨어져서 놀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

은데 한 시간여 후에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 돈 2천원을 빌려줄테니 같

이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내 소신에 회의가 일던터라 그러라

고 하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온 현빈이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이 엄마, 아빠와 있는 것보다 재미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된 모

양이다. 저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은 좋지만 이왕이면 친구들과 같이

1,000원짜리 스케이트장에서 놀고 덕분에 4,500원을 절약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젠 점점 자신도 없어지고 아이들에 대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약해진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텐데 그 때마다 갈

등을 해야하나?

저녁을 먹다가 무슨 얘기 끝에 현빈이가 저는 놀이기구 탈 때는 겁이 없는데 높은데 올라가서 내려다보거나 할 때는 아찔하다는 말을 하였다.

이에 대해 내가 그건 당연한 현상이고, 현빈이도 겁이 없는게 아니라 단지 놀이기구를 잘 타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는데..... 녀석이 발끈했다.

"아빠, 저는 겁 없어요"

"네가 진짜 무서운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래"

"그게 뭔데요?"

"밤에 혼자 저 산에 갔다올 수 있겠냐?"

"예!"

너무 쉽게 나오는 대답에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아, 요놈새끼, 혼을 좀 내줘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는

"그럼 저녁먹고 한 번 해볼까? 현빈이가 혼자 다녀오면 현빈이 소원 뭐든지 하나 들어주마"

"검단산 꼭대기까지 갔다와요?"

"아니, 전에 햄스터 놓아준 곳에서 등산객들 다니는 등산로까지만 다녀오거라"

그렇게 하고 집을 나섰는데, 혹시 녀석이 너무 무서워서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까만 걱정이었지 무사히 다녀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않고있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아마 아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순간부터 눈앞에 엄습하는 어둠과 온갖 귀신, 도깨비, 괴물들이 저를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등뒤에서 뭔가가 목덜미를 움켜쥘것 같은 느낌... 으... 아마 바로 뛰어내려올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들고간 후레쉬 불빛은 점점 산위로 멀어지다가 급기야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한참을 서있다가 이제는 다른 걱정으로 따라온 연수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거의 목적한 곳에 다달았을 때야 내려오는 녀석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뭐 저런 놈이 다있나.

오늘 달빛이 너무 밝았다. 아니면 내가 무서운 얘기를 평소에 너무 안해줬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