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시대다. 모두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이 생존과 번영의 길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프로가 된다는 것은 종종 창의성에 위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로의 삶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의사는 프로다.  맹장 수술을 하러 갔는데 의사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내 배를 가르고 맹장을 잘라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실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수없이 많이 해봐서 검증된 방법으로 그렇게 숙달된 솜씨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자동차를 수리하러 가서 수리공이 창조적이고 혁신적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부품을 바꾸어 갈아 끼워 차를 정상화 시켜주면 된다.

프로정신은 이처럼 새로운 한계를 넘어 서기를 주저한다.  한계를 넘는 것은 실패에 노출되는 것이고, 프로는 본능적으로 실패를 회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가 지나치게 창의적이거나 혁신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일상적 반증이다. 그러나 지금은 또한 창의성과 상상력의 시대다. 그러므로 프로의 시대이면서 또한 반(反) 프로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말은 우리가 패러독스와 딜레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리스크를 줄이는 프로이어야 하지만 새로운 방법과 실험을 추구하는 적극적 실험자이기도 해야하는 것이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직업 역시 패러독스와 딜레마를 풀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숙달된 전문가로 성장해 갈 수 있을까?

전문가는 반복과 숙달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 훈련 없이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 나는 작가다. 10년 동안 14권의 책을 썼다. 나는 매일 조금씩 쓴다. 하루라도 쓰지 않고 지나는 날은 거의 없다. 작가가 영감을 기다리고 앉아 있지는 않다. 영감이란 매일 오는 것이 아니다.  일년 중 무엇인가 꿈 속에서 얻은 멋진 영감을 가지고 잠에서 깨는 날은 별로 많지 않다. 영감과 우연한 아이디어를 기다린다면 작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화가는 매일 그리고, 음악가는 매일 연습한다. 훈련이 전문가를 만든다. 프로는 그렇게 만들어 진다. 그러므로 매일 숙련할 수 없으면 정신이 극한을 추구하지 못하고 손이 무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정말 꿈 속에서 찾아 오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책이 창조성을 작동시켜준다. 또 어떤 사람은 아이디어를 찾아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언제나 기막힌 아이디어가 자신을 찾아 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프로들은 도대체 어떻게 창조성을 배워 새로운 차원의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꽤 괜찮은 창조성 습득에 대한 조언이 있으니 참고하여 익혀둘 만하다. 

척 클로스(Chuck Close)라는 화가는 우리사회가 지나치게 문제의 해결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흥미로운 것은 문제의 창조라고 주장한다. 누군가 정말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누구의 답도 들어 맞지 않을 때, 그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자신의 길을 걸을 때 가장 창조적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수많은 무리 중에서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때 그는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나는 '문제의 창조'가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창조적이 되는 또 다른 길은 독서다. 책은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누구나 쉽게 뒤져 볼 수 있는 방대한 보고다. 그곳에 가기 위해 무슨 보물지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생명을 건 모험의 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독서는 개인과 다른 세대의 누군가가 거쳐온 수많은 세월을 기록해 둔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생각 속에 수 천 수만 가지 아이디어의 원천이 숨어 반짝인다. 그러므로 읽을 수 있다면 읽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들을 수 있으면 들어야 하고 볼 수 있으면 봐야 한다. 음악과 미술 역시 그 속에 새로운 것으로 가는 길들이 깔려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이 창조적인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째서 마케팅의 예술가로 자신을 만들지 않고, 회계의 달인이 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또 어째서 창의적인 복리후생 전문가가 되고, 변화경영 예술가가 되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왜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으려는 열의로 가득차지 않는지 모르겠다.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아니다. 삶 때문에 일하는 것이다. 일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명예로운 삶의 가치로 빛나려면 매일 새로운 시도로 다른 차원의 직업인이 되기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조적이 되려면 쉬운 길을 버려야 한다.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 영원한 아마추어, 똥폼을 버리고 훨씬 강력한 무언가와 드잡이를 하고 씨름꾼, 진심으로 작업대 앞에서 숨을 거두고 싶어하는 직업인, 나는 이것이 진정한 창조적 프로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더 높은 차원을 추구하는 프로만이 최초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정진한다. 그래서 구도자들에게도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최초의 마음을 가진 자, 처음 입문한 자, 똥끝까지 긴장하는 자, 그들이 바로 초심자다. 나는 영원한 프로는 영원한 초보의 마음을 가진 자라고 생각한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 실패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거듭나는 자, 그들이야 말로 자신의 잠재력을 다 쓴 자들이다. 직장은 우리가 자신을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현장이다.

지금 하는 일은 지금 나에게 허락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매일 숙련하고 어제 보다 더 좋은 방법을 찾자. 끊임없이 가장 나다운 방식이 무엇인지 질문하자. 차별성은 어디서 오는 지 내가 남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질문하자.  그 속에 '내가 들어 있는 일'을 만들어 내자.

[사보에서 발췌 - 구본형(변화경영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