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에서 살아온 수도승

해인사 장경각 뒷산 잣나무숲에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 다니듯 하며 잣을 따던 수도승이 자칫 실수하여 나무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마침 그 밑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몸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놀랜 충격이었는지 완전히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수도승은 자기가 죽은 것을 알지 못했답니다.

다만 그 순간 어머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일어났고, 그 생각이 일어나자 그는 이미 본가의 집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길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어머니와 함께 길쌈을 하던 누나가 갑자기 펄펄 뛰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거였습니다.

누나가 아프다고 하자 면목이 없어진 그는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풋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는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 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네 이놈 악귀야, 어서 먹고 물러가라."

그는 깜짝 놀라 뛰어나오며 투덜거렸습니다.

"에잇, 빌어먹을 집, 내 생전에 다시 찾아오나 봐라! 그래, 나도 참 별놈이지, 중이 된 몸으로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하는 집에는 무엇 하러 왔나?

가자. 나의 진짜 집 해인사로."

그리고는 해인사를 향하여 열심히 돌아 가고 있는데, 길 옆 꽃밭에서 청춘 남녀가 화려한 옷을 입고 풍악을 올리며 신나게 놀고 있던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와서 옷자락을 당기며 유혹하였습니다.

"스님, 우리 랑 함께 놀다 가세요."

그러나 그 수도승은

"중이 어찌 이런 곳에서 놀 수 있겠 소?"

이렇게 사양을 하고 돌아서는 그를 보고 여인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에잇, 그 놈의 중! 간이 적어서 평생 중질 밖에 못해 먹겠다."

욕을 하든 말든 다시 해인사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예쁘게 생긴 여인이 길가에 서 있다가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억지로 뿌리치고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십 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아 잡은 노루를 구워 먹으면서 함께 먹을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뿌리치고 절에 도착하니, 재(齋)가 있는지 염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소리가 이상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들어보니, 목탁을 두드리는 한 동료스님은 '은행나무 바리때' 뚝딱, 뚝딱 '은행나무 바리때' 뚝딱, 뚝딱 하고 있고, 요령을 흔드는 스님은 '제경행상' 딸랑, 딸랑 '제경행상' 딸랑, 딸랑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염불도 다 한다.'고 생각하면서 열반 당(涅槃堂) 간병실로 가보니 자기와 꼭 닮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발로 툭 건드려 보는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집에서 보았던 누나와 어머니는 물론 여러 조객들이 자기를 앞에 놓고 통곡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던 그는 살아난 자신을 보고 기절초풍을 하는 어머니에게 여쭈었습니다.

"어머니, 왜 여기 와서 울고 계십니까?"

이에 어머니는

"네 놈이 산에 잣을 따러 갔다가 죽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초상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집에서 누나가 아픈 일이 있었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죽는다고 하여 밥을 바가지에 풀어서 버렸더니 다시 살아났단다."

그는 다시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던 동료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내가 들으니 너는 ‘은행나무 바리때’만 찾고 너는 ‘제경행상’만을 찾던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리 냐?"

이에 은행나무 바리때를 외우던 동료 스님은

"나는 전부터 은행나무로 만든 너의 바리때를 매우 갖고 싶었어. 너의 유품 중에서 그것만은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어찌나 강하게 나던지...... 너를 위해 염불을 하면서도 '은행나무 바리때'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하네."

이 말은 듣고 있던 또 다른 동료 스님도 역시

"나도 역시 그랬다 네. 자네가 평소에 아끼던 <제경행상(諸經行相)>이라는 책이 하도 탐이 나서...”

하며 말 끝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수도승은 그 말을 듣고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무인들이 노루 고기를 먹던 장소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자취는 없고 큰 벌집만 하나 있었습니다.

꿀을 따는 벌들이 열심히 그 집을 드나들고 있을 뿐....

다시 미모의 여인이 붙잡고 매달리던 곳으로 가보니 굵직한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으며, 청춘 남녀가 풍악을 울리며 놀던 곳에는 비단개구리들이 모여 울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승 안도의 숨을 내 쉬며 하는 독백은

"휴~! 내가 만일 청춘 남녀나 무사, 미녀의 유혹에 빠졌다면 분명 개구리, 뱀, 벌 중 하나로 태어났을 것이 아닌가?" 였답니다.

출처: https://blog.naver.com/eksim/222788808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