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무서워~"

"무섭긴 뭐가 무서워?

아빠가 이렇게 꼭 잡고 있는데..."

"그래도 무서워...

말등이 너무 높아 꼭 지붕위에 올라온것 같단 말이야!"

"자식이 장난은 디게 심하면서 겁은 많네!

연지야! 저기 엄마 보이지? 우리 엄마옆으로 바짝 쫓아가자!"

처음엔 무서워서 말에서 내리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치던 연지도 어느새 신이 났는지 좀 더

빨리 달리라고 아빠를 채근하고 있었다. 

가을 단풍이 산밑까지 곱게 물들어 나무마다 그 자색을 뽐내며 서있었고 길가엔 벌써 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현태와 연지 그리고 민주를 태운 말 두마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나란히 가을이

물든 그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 여기쯤이지...말이 천둥소리에 놀라 질주하기 시작한 지점이?"

현태의 말에 민주가 옛날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듯 일순 어두운 표정을 짓더니 이어 뭐가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마 아찔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베옷을 입었던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모양이였다.  

경문목장에서 나들이 삼아 승마를 즐긴 후 현태와 민주, 그리고 그들의 딸 연지는 한센촌

가까이 있는 자신들의 집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연지 몇살?"

"다섯살!

삼촌은 머리가 나쁜가봐!

왜 연지 나이 매일 까먹어?"

"쿡~ 그래! 삼촌은 돌머리다."

태식은 껄껄 웃으며 연지를 번쩍 안아 볼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앗 따가워!

삼촌, 수염 좀 깎아!" 

"그래, 하하하하...."

현태의 생일을 맞아 오랬만에 날을 잡은 저녁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태식은 현태의 집으로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태식과 현태는 집뒷쪽에 나있는 오솔길을 걸었고 그 뒤로 머리를 두갈래로 땋고 멜빵청바지를

입은 연지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장난 치며 그들을 표시안나게 쫓아가고있었다.

"태식아!

경문 형님은?"

"응, 좀 있어야 오실거야! 형수님이랑 같이...

그리고 김필수 의원도 오신다고 했어!

내가 현태 너한테 할말이 있어서 조금 일찍 서둘러서 왔는데, 너 정말 이 생활에 만족하냐?

우리랑 다시 일해볼 생각 없냐구?

예전에 숙적이였던 김의원쪽과도 공존관계가 이루어져서 우리조직은 그야말로 탄탄대로

인거 너도 알잖아!"

"쉿!

민주 들으면 큰일나!

난 이대로가 좋아, 그동안 부모님께 불효를 너무 많이 해서 지금부터라도 옆에 살면서 효도를 좀 하고싶어!

연지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따르고...

나도 조그만 회계사무실 하나 운영하면서 부족하지만 그냥 조용히 살고싶어!

민주도 그걸 원하고...

집도 이만하면 아담하고 좋잖아

서울 근교라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자연하고 벗하며 사는게 연지나 민주에게 좋을것 같아!"

"쯧쯧!

자식이 사랑에 한번 빠지더니 출세고 야망이고 다 집어던졌구만!"

"우리가 지금보다 젊은 날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밤을 잠못 이루고 갈팡질팡하면서도

앞만 보고 달린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난 제자리를 맴돌았던것 같아...

사람 사는거 다 거기서 거기야, 무엇을 위해 우리가 젊음을 바쳐야 하는거지?

우리가 정말 목숨을 바쳐 뜻을 이룰만큼 가치있는 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   

두사람이 서있는  눈앞으로 곱게 물든 낙엽 하나가 바람에 떨어지며 그걸 쳐다보는 태식의 입가에도 낙엽만큼이나 쓸쓸한 미소가 잠시 스쳐갔다. 

근처에서 낙엽을 줏어모으던 연지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그 두사람을 이상한듯 쳐다보았다.

"아빠랑 삼촌이랑 싸웠어?

왜 표정들이 그래?

아참, 엄마가 기다리겠다. 이제 집에 가자!

빨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