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

"아,예...근데 누구?"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으며 "나 몰라?"하고 묻자 그제서야 그가 아는 체를 한다.

그는 삼천리 자전거 체인점을 운영하고있다.

체인점 바로 옆엔 전통 찻집이 있는데 그의 부인이 사장이다.

예전 학창 시절 우리는 같은 자유교양반 멤버였는데 그는 내게 1년 후배다.

세월이 흐르고 돌고 돌아 옛사람을 다시 만나는 건 기분을 좀 묘하게 만든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군에서 제대하고 나는 전우 여러 명을 우연히 정말 우연히 사회에서 만난 기억이 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다.

피하고 싶은 악연도 신의 섭리 아래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게 인생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괜히 다신 안 볼 것 처럼 남에게 원한을 심어주면 안 될 것이다.

다행히 나의 재회는 전부 반가운 만남이였다.

날씨가 좋아 하이킹이라도 하려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더니 뒷 바퀴가 펑크가 나 있었다.

그래서 찾은 데가 바로 이 곳이다.

나와는 달리 그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가라앉은 시간 위에서 지난 날의 관계는 다시 예전 처럼 이어지니 그것도 참 아이러니다. 

무슨 얘기중에 그가 말했다.

"그런 모자 말고 자전거 헬멧 쓰세요."

"아, 헬멧 안 쓰면 벌금 무나?"

"벌금 이전에 안전을 위해서죠."

"자전거를 매일 타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전용도로에서만 타는데....."

헬멧이 집에 있긴하지만 귀찮기도 해서 안썼는데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고 말하고 가뿐하게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코스를 경춘선 쪽으로 정했다.

예전 경춘선 구 철로 옆에는 새로이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겼다.

한강변과는 달리 이 쪽은  제법 한산한 편이라서 더 좋다.

적당한 햇살, 적당한 바람 그리고 가을의 냄새가 공기중에 퍼져있다.

길옆에는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있고 고개를 조금 높이 들면 밤송이들이 커져가는게 보인다.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지나고 개울이 이어지고 반짝이는 물살이 만드는 음악에 맞춰 은빛 물고기들이 트위스트를 춘다. 

나무 옆 그늘진 벤취에 앉아 카스테라와 캔  커피를 마신다.

DMB에서는 이어폰을 통해 음악이 흐른다.

잡고 싶은 계절의 시간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