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사납지 않은 찔레순 . . 
찔레는 찌른다. 찌르니까 찔레다.
가시로는 제 곁에 오는 짐승의 살을 찌르고, 꽃으로는 제 곁에 오는 사람의 마음을 찌른다.
그러나 우리의 봄은 찔레 가시를 가만가만 피해
찔레순을 하나 꺾어 입에 넣었을 때 비로소 시작이 되었다.
그건 대지가 뽑아 올린 봄의 맛이었다. 새로 돋는 어린 순들의 연하디 연한 맛이었다.
살짝 비리고 조금 달고 약간 떫었다. 찔레순은 굵기가 손가락만 했다.
겉껍질을 살짝 벗겨 내면 연듯빛 속살이 드러났고 베어물면 아삭 소리를 내었다.
열 대궁쯤 꺾어 양손에 가득 움켜쥐면 제법 배가 불렀다.
찔레는 인간에게 유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쑥과 냉이도 사람의 먹을 거리가 됐는데 그토록 흔하고 그토록 생명력이 왕성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온 찔레가 식용도 관상용도 되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수수께끼다.
찔레순을 아스파라거스처럼 데쳐 먹을 수는 없었을까.
샐러리처럼 마요네즈에 버무려 먹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고운대나 고구마 줄기까지 요리할 줄 아는 민족인데 어이해서 살찐 찔레순을 그냥 내버려 뒀을까.
찔레는 오랜 세월 거기 방치된 채 덤불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우린 찔레 덤불 곁을 그냥 지나가진 못한다. 꽃이 필 때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찔레의 서정, 찔레의 비애, 찔레의 생명력, 찔레의 미학에 우리 모두는 딱히 이유를 모르는 채로 공감한다.
배고프던 춘궁기에 마치 쌀밥처럼 하얗게 피던 꽃이었기 때문일까.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좋지'.라는 구슬픈 노랫가락 때문일까.
척박한 땅에 하도 흔하게 피어 끈질기게 흔들렸기 때문일까.
경음을 자주 쓰면 국민 정서가 사나워 진다고 '짜장면' 을 '자장면' 으로 고친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찔레는 '질레' 로 강등되지 않고 살아 남았다.
찔레는 암만 경음을 써도, 암만 가시가 찔러도 도무지 사납지가 않은 이름인 것을!
- 김서령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의 시〈그 꽃〉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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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四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