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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포탕.. 요리

집 나간 입맛 되찾아주는 초여름 별미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어느새 턱밑까지 밀고 올라온 여름.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듣고 있자니 벌써부터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자칫 입맛까지 잃어버리기 쉬운 계절, 충남 태안으로 떠나는 여름 별미 여행을 제안한다.


 

태안 별미, 박속밀국낙지탕 태안 별미, 박속밀국낙지탕



 

태안반도 최북단 이원면과 원북면

태안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는 안면도다. 멋진 휴양림과 예쁜 펜션, 시원한 해수욕장과 싱싱한 해산물, 게다가 아름다운 일몰까지! 여행지가 지녀야 할 미덕을 두루 갖추었으니 인기를 누리는 건 당연지사. 최근엔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 50선'에 꽃지해수욕장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여러 차례 태안을 방문한 여행자들조차 여간해선 안면도 권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태안=안면도'는 이제 공식이 된 듯하다. 하지만 태안 땅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안면도뿐이랴. 안면도 위쪽, 즉 태안반도 북단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잘 몰랐던, 하지만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매력적인 여행지가 또 있다. 여름철 낙지요리로 유명한, 그래서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이원면과 원북면이다. 한적하고 아늑한 해변과 푸근하고 정겨운 포구가 있는 이원, 원북 일대는 6월에서 9월 사이에 찾는 것이 정답이다.


 

태안 수산시장 풍경 태안 수산시장



 

박속을 파내고 그 안에 낙지를 넣어 끓인 음식?

이름이 박속밀국낙지탕이다 보니 처음 접하는 사람들 중엔 이렇게 상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박속밀국낙지탕은 박을 파내고 그 안에 낙지를 넣어 끓인 탕이 아니라 하얀 박속을 썰어 넣고 끓인 태안의 향토음식이다. 무 대신 박인 셈인데, 얼핏 보아선 무인지 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가 말캉한 데 반해 박은 무보다는 쫄깃하다는 느낌이다. 개운한 국물 맛을 내는 주인공이자 숙취 해소의 일등공신이 바로 박속이다. 가을철에 수확한 박은 냉동 보관 해두고 다음해까지 사용한다.
6월 말부터 9월 사이에 태안에서 잡히는 한입 크기의 작은 낙지, 일명 세발낙지는 맛이 뛰어나고 식감이 부드럽다. 여름 내내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세발낙지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발이 세 개라서 세발낙지'라는 것인데, 세발의 '세'는 '가늘다'는 뜻의 한자어다. 즉 발이 세 개여서가 아니라(모든 낙지발은 무조건 8개다!) 발이 가늘어서 세발낙지인 것이다.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세발낙지는 10월 이후엔 구경하기 어렵다. 그럼 10월 이후로는 박속밀국낙지탕을 먹을 수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때부터는 세발낙지 대신 일반 낙지를 쓴다.


 

팔팔 끓는 육수에 데쳐지는 낙지 [왼쪽/오른쪽]육수가 팔팔 끓을 때 낙지 투하 / 살짝 데쳐야 맛있다.



 

깔끔하고 개운한 국물 맛과 탱탱한 낙지의 식감이 일품

이원, 원북 일대에는 박속밀국낙지탕 전문점이 많다. 어느 집을 가든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면 맑은 육수에 나박썰기를 한 박속과 파, 마늘, 양파를 넣은 냄비를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육수가 팔팔 끓어오르면 꿈틀대는 산낙지를 통째로 투하, 살짝만 데쳐낸 후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데, 야들야들하고 탱탱한 식감이 과연 별미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한입거리밖에 안 되는 어린 낙지라면 상관없지만, 혹 큰 낙지를 먹게 된다면 다리부터 먼저 잘라 먹고 머리는 끓는 육수에 다시 넣어 좀더 익혀 먹는 것이 좋겠다. 가위로 다리를 자를 때 낙지 머리를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흘러나온 먹물로 까맣게 변해버린 육수에 칼국수를 끓여먹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낙지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 일품



 

칼국수와 수제비로 든든하게 마무리

박속낙지탕이 아니라 박속밀국낙지탕인 이유는 낙지를 모두 건져 먹은 후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기 때문이다. 박속밀국낙지탕은 빈곤했던 시절, 칼국수와 수제비에 흔한 낙지를 몇 마리씩 넣어 먹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다.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이 지역에서는 밀국이라고 불렀다. 어려운 시절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역사가 담긴 음식인 셈이다. 수제비는 직접 반죽해 일일이 손으로 뜯어 살짝 데친 후 테이블에 내오는데, 두툼하면서도 탄성이 있어 배가 불러도 끝까지 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칼국수와 수제비 칼국수와 수제비로 마무리



 

게국지와 꽃게장도 있어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먹던 거친 음식이 세월이 흘러 대표적인 향토요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박속밀국낙지탕은 게국지와 많이 닮았다. 게국지는 여름내 게장을 담가 먹고 남은 간장에 김장철 허접한 무시래기, 배춧잎, 호박 등을 넣고 잘 버무려 두었다가 겨우내 꺼내 먹었던 태안, 서산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아궁이 위 커다란 무쇠솥에 쌀을 안치고 한쪽 구석에 게국지 뚝배기를 올려 끓여 먹던 기억을 이 지역의 60~70대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랬던 게국지가 지금은 커다란 꽃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푸짐한 음식으로 변신해 객지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꽃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 태안에 간다면 박속밀국낙지탕과 함께 꽃게장도 맛보길 바란다. 알이 꽉 찬 암게는 이달 말까지가 성어기다. 7월에 접어들면 산란기라 잡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살이 얼마 없어 맛도 떨어진다. 요즘은 계절 구분 없이 1년 내내 먹는 것이 간장게장이라지만, 역시 지금이 최상의 간장게장을 맛볼 수 있는 막바지 철이다.


 

꽃게장과 꽃게장 1인 상차림 [왼쪽/오른쪽]꽃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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